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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호   (200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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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해돋이를 보며

새해 소망 빌어본 삼각산 일출 산행

김현서 (기사입력: 2005/01/03 23:57)  

해가 지고 해가 뜨는 그 오래된 일상이 왜 유독 새해 첫날에는 그리도 유별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그 마음의 정체는 아마도 끊임없이 새롭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일 터이다.

무언가 새롭게 삶의 원을 세우고 그걸 위해 마음을 모으고 몸을 움직인다. 그러다가, 그 욕망이 슬슬 닳아지고 지쳐갈 무렵이면 해가 바뀌어 또 다른 시작을 하게 해준다. 그러니 새해는 사람을, 삶을 거듭나게 해 주는 그럴 듯한 통과의례인 셈이다.

오래전, 지리산에서 새해 첫날 일출을 맞이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몸이 아니라 머리로 삶을 살았던 때, 지리산을 가는 데에도 제법 그럴 듯한 의미를 부여했던 때였다. 하지만, 오늘의 해돋이 산행은····, 조금 이른 산행을 한다는 정도이다.

수유리 4.19탑 앞에서 출발한 시간이 새벽 다섯 시 오십분쯤. 산행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발을 동동거리면서 모여 있다. 삼,사십 명은 족히 될 듯, 보통 때의 산행과는 다른, 기대 섞인 달뜬 분위기가 느껴진다. 나도 슬그머니 그 분위기에 전염되어 이른 산행을 시작한다.
장인선 산악 대장과 그 가족이 동행이 되어주었다. 어린 한산이, 고은이도 새벽산행에 당당히 합류를 한다. 세 번째 해돋이 산행이란다.

이건 거의 고문이야, 고문!
아홉 살 한산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중얼거린다. 그러면서도 싫은 기색은 없다. 대신 배낭은 매지 않겠단다. 나름대로의 깜찍한 의사표현인 셈인데. 제 몫의 짐은 자기가 지고 가야 한다는 부모와 새벽산행을 따라온 걸로 내 몫은 다했다는 어린 한산이의 실랑이가 한동안 이어졌다.

산행 초입에서 관리소측이 마련한 따듯한 차로 몸을 풀고 본격적인 산행 준비를 한다.
어둑한 산길을 올라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숨소리가 앞에서, 뒤에서 이어진다. 머리 위에서 둥그런 달이 하늘 가득하지만 새벽 산길을 밝히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아쉬운 대로 머리 위의 별도 한몫을 한다. 새해 첫날, 해맞이 길에 나선 사람들에게 우주는 달과 별의 존재를 내려보내 길을 밝혀준다. 그들은 그렇게 낮밤 따라, 계절 따라 자리바꿈을 하면서 우주의 운행을 완성하는가 보다.

앞 사람, 혹은 뒷사람의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걸음을 옮긴다. 진달래 능선에 올라 하늘을 본다. 아직은 해돋이의 기운이 막연하지만 하늘과 지상을 가르는 불빛의 테두리가 점차 붉어진다. 새싹이 움트기 전의 움찔거리는 땅의 기운. 해돋이를 준비하는 하늘의 움찔거림이 슬슬 느껴지는 시간이다. 내내 흐릿한 빛으로 발길을 돋우던 달도 해에게 자리를 내 줄 채비를 하는 듯, 하늘로 묻혀진다.

능선을 오를수록 합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여기저기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도 보인다.

좋은 아침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함께 새벽산길을 올라온 그들의 인사말이 정겹다. 그러면서도 몸이 헉헉거려지면서, 꼭 이렇게 유별나게 해돋이 산행을 해야 하는가, 마음에 못마땅함이 인다. 이것 또한 욕심일 거라고, 해돋이를 보겠다고 꾸역꾸역 새벽산을 오르는 이것 또한 마음의 욕심일 거라고. 하지만 그 욕심이 있어 한동안은 마음이 그득하리라는 생각도 한다.

흐읍, 몸을 떨게 하는 계곡의 차가운 바람이 올라오면서 잠시 이런저런 생각들이 찾아들었던 듯. ······그러는 동안, 주위가 제법 환해진다.

대동문에 이르자 바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망루에 올라 동쪽 하늘에 눈을 모으고 있다. 하늘이 환해질수록 저 아래 도시의 불빛들은 존재감이 옅어진다. 대동문 안쪽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성곽을 따라 길을 오르고 있다. 우리는 그 중간쯤 되는 지점, 성곽에 기대어 해돋이를 기다린다.

갑자기 커다란 울림이 새벽공기를 가른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군인들이다. 상관과 부대원들이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 광경이 힘차다. 아마 부근에서 복무를 하는 군인들일 터, 그들도 해맞이를 만나러 새벽을 달려온 길인가 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꽤나 춥다. 올라올 때는 그리 춥다는 생각을 못했으나, 멈추어 서서 기다리는 동안의 추위가 꽤나 매섭다. 동트기 전의 어둠이 가장 짙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동트기 전의 기온이 혹시 가장 낮은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발을 동동거리면서 말한다.
이렇게 날씨가 춥고 매서우니, 아마 해가 굉장히 선명할 거라고.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고 붉어지면서 사람들의 얼굴빛도 해맞이에 대한 기대로 점점 붉어진다. 그리고····, 선명한 하늘빛을 뚫고 작은 씨앗 하나가 움트듯 해가 솟구친다. 그 씨앗은 점점 커져서 이윽고 붉고 둥근 태양 하나를 하늘에 띄워올린다.

2005년, 새해 첫날의 태양이다.
함성과, 동쪽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과 붉은 해에 눈을 고정시킨 사람들의 모습들. 시간은 대략 7시 46, 47분쯤이겠다. 아닌 게 아니라, 차갑고 낮은 기온만큼이나 해의 선명함이 더하다.

여기저기에서 소원을 말하는 목소리들이 크게, 혹은 자그마하게 들려온다. 태양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치든, 자신에게만 내밀하게 속삭이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욕망하는 지극한 마음들은 똑같을 터이다.

인연을 만나게 해달라고, 살림 좀 피게 해달라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소원한다. 혹은 나라 경제가 좀 나아지기를, 남북관계의 진전이 있기를, 강대국의 횡포에 시달리는 나라들의 아픔이 덜어지기를, 사람들 사이의 불화가 치유되기를 소원한다.

소원의 크기나 밀도가 아니라 무언가를 진정으로 원하고 그걸 위해 마음을 모으리라는 다짐들이 있어 새해 첫날은 기껍고 기쁘다.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것, 혹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소원이라는 이름으로 맘껏 다잡아지고 껴안아지니 이것 또한 새해 첫날에만 가능한 일은 아닐지. 일상의 삶에서 항상 갖는 원과 욕망들임에도 새해 첫날에는 유독 그 지극함이 더해진다.

올해는 을유년, 닭의 해이다. 닭은 어둠에서 밝음으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처음 만나는 존재, 아니, 어둠을 밀어내고 밝음을 불러오는 존재. 하여 새해 첫날에 가장 어울리는 존재인 듯 하다. 그래서 건국설화나 천지개벽의 설화에 새로운 시작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리라.

그렇듯, 어둠과 혼돈을 몰아내고 밝음과 조화의 모습으로 나아가기를, 빌어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밝음과 어두움이 선명하게 분별되고 혼돈과 조화가 대치되어 존재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둠 속에는 밝음을 불러오는 기운이 머물러있고, 혼돈 속에는 조화를 향해가는 에너지가 머물러있는 것. 그러니 어쩌면 새해라 하여 묵은 것을 밀어내고 새것만을 고집하기보다는 묵은 것 속에서 새것의 씨앗을 찾아내고 키워내려는 마음씀이 더 현실적인 지도 모르겠다. 어제가, 어제의 욕망이, 작년의 미흡함이 대뜸 내려놓아지는 것이 아닌 바에야 기꺼이 그걸 안고 가리라는 마음도 나쁘지만은 않겠다.

삼 년째 해돋이 산행을 한 한산이네 가족도 이번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처음이라고 감탄한다. 오랜만의 해돋이 산행에서 이만한 장관을 본 나는 어지간히 눈 복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한동안은 해돋이의 붉은 기운을 떠올리면서 기쁜 마음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려오는 길은 곳곳에서 작은 멈춤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워낙 많은 탓이다. 아카데미 하우스 쪽으로 내려오는 길. 계곡에는 얼음이 작은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나뭇잎에 살짝 덮여있던 살얼음이 해맞이에 달뜬 발길을 슬쩍, 잡아채기도 한다. 넘어져 부축을 받는 사람도 생겨난다. 해바뀜보다는 계절의 순환에 순응하는 자연의 모습을 실감한다. 새해가 왔으니, 가야 할 길 또한 그만큼 멀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내려올수록 산은 멀어지고, 일상이 가까워진다.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붉은 해의 기운이 여릿여릿 남아있는데, 그 기운을 이젠 일상의 삶에서 한번 근사하게 풀어보라고 말한다.
산위에서의 맵싸한 추위가 벌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날씨는 푸근하다. 드물게 청량하고 안온한 날씨다. 날씨도, 우리의 삶도, 내가 알지 못하는 이웃들의 사정도 이만만 했으면····. 그리고, 해가 떠오르기 전의 어둠과 추위도, 해가 뜨고 나서의 밝음과 따듯함도 모두 기억하는 한 해가 되기를.

차를 기다리는 길에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백운대 봉우리가 맑은 얼굴을 내보이고 있다. 얼굴이 오늘따라 조금은 여유롭고 푸근해 보인다.
새해 첫날 아침이다.
* 전북민주동우회의 통일산악회와 함께 새해 맞이 산행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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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이화여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95년 문화일보 추계문예에서 단편 <맞불>이 당선, 등단했다. 96년 단편 ‘눈, 육체의 풍경’으로 문학사상 신인상 수상, 97년 첫 장편 <아오스랜드의 사랑>으로 대산 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 {참말로}(2005.1.2)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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