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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 6; 사회구성체와 평화

김승국 (기사입력: 2005/01/04 20:58)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와 평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구성체는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이다.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는, 기본적으로 폭력 지향적이다. 부르조아적인 시민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시장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벌이는 ‘시민사회의 지배계급’은, 국가권력(국민국가)의 이름으로 ‘자본 ‧ 패권의 해외진출’을 시도한다. 그 결과 제국주의의 횡포(수탈)와 더불어 전쟁-분쟁이 발생한다. 전쟁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를 평화지향적인 구성체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그 기본구성 단위인 시민사회부터 변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변혁을 통한 시민사회의 평화구축 없이 지구촌-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의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1. 시민사회의 변혁(주1)

1) 자본제 사회와 시민사회

① 시민사회 개념

자본제 사회에서 모든 개인은 상품의 소유자로 존재하며 시장에서의 거래를 통해 생존한다. 거래가 실현되지 않을 경우 시장에서 배제되어 생존이 불가능해지든지 자급자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제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시민)은 이러한 상품거래 관계에 놓인다. 이 관계를 마르크스는 자본관계(capital relation)이라고 규정했다.

자본제 사회의 경제관계는 자본관계이다. 자본제 사회에서는 자본관계를 기본으로 모든 개인이 다른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사회를 마르크스는 'bürgerliche Gesellschaft(부르주아 사회)'라고 규정했다. 이 '부르주아 사회'의 다른 이름이 ‘시민사회’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르조아적 시민사회’이며, 이 사회는 계급사회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계급적인 ‘부르조아적 시민사회’를 지양하는 것이, 시민사회의 변혁(시민사회의 평화구축)에 있어서 핵심이다.

2) 자본관계에 포섭된 인간의 특징

마르크스가 말하는 부르조아 사회는 (적대적 계급관계가 집약된) 자본관계를 토대로 하는 여러 관계들의 총체이다. 이 부르조아 사회에는 두 종류의 권리가 있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하나는 ‘citoyen[공적 공민; 사적 시민은 Burger]'이 정치적 권리(droits du citoyen)를 갖고 정치적 공동체에 참가할 권리이다. 또 하나는 ‘人의 권리(droits du l'homme)’이다. 'citoyen'과 구별되는 'l'homme(人)’은 부르조아 사회를 구성하는 사인(私人)에 불과하다. ‘人의 권리(droits du l'homme)’란 사적 소유권을 말한다. 이렇게 마르크스는 부르조아 사회의 인권의 내용을 개인적 자유와 이기(利己)의 권리, 평등과 안전이라고 상정했다.

그러면 부르조아 사회에서 개인이 ‘citoyen'과 ‘私人[Burger]’으로 분열되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자본관계에 포섭된 인간의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② 인권사상의 토대

자본제 사회의 모든 인간은, 어쨌든 상품소유자로서 시장에 등장하여 상품을 매매함으로써 생활한다. 이러한 상품거래의 경험은, 개인의 자아의식을 높인다. 개인들은, 시장에서 상품을 매개로 ‘동등성(同等性)’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한다. 상품을 매개로 하여 인격(personality)을 상호 ‘동치(同値)’하는 행위를 인간들이 시장에서 거듭 경험한다. 시장의 인간들은 ‘상품’을 매개로 인격을 ‘물(物)’로 동치시킴으로써 비교 계량할 수 있는 추상적 인간으로 상호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시장에 참가하는 개인은 ‘상품’을 매개로 추상적 인간을 서로 상대하면서도 거래상대를 구체적인 개인으로 착각한다. 이러한 관계를 마르크스는 ‘상품의 물신성(物神性) ‧ 자본의 물상성(物象性)에 지배되어 소외된 개인에 의해 전도된 의식관계’로 규정한다. 이 규정은 인간과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품을 매개로 한 사물적(事物的) 관계를 뜻한다. 자본관계의 개개의 고리를 구성하는 상품은 단순한 物(Ding)이 나이라 ‘자본’으로서 ‘物件(Sache)'이다. 노동자도 구체적 개인이기 이전에 ‘노동력’으로서 추상적 ‘물건’이다.

이렇게 전도된 의식세계에서 상품 ‧ 자본을 매개로 인간의 자기 개별성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진다. 이 전도된 의식이야말로 인권사상 ‧ 민주제의 이데올로기의 토대를 형성한다. 이렇게 거꾸로 선 세계의 ‘인간존재의 개별성’을 자연상태로 삼은 이데올로기에서 ‘자연권으로서의 인권사상’이 발달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권사상의 토대에 대한 근원적인 재검토에서 ‘사회구성체의 평화구축’이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③ 소유의식

자본제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자본관계에 포섭되어 있는 한 소유자 의식, 소비자 의식을 강화한다. 이 의식의 강화는 상품관계 ‧ 자본관계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상품관계가 발전하면 할수록 ‘자기노동에 의거한 소유’의 부정으로 작용한다. 이게 본원적 소유이며, 모든 개인은 물건을 팔아 화폐를 획득하고 그것으로 생활한다. 화폐 이야말로 ‘자기노동에 의거한 소유’물이라는 의식에 지배된다.

이렇게 상품관계 사회가 발전하는 가운데 인간의 의식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유용노동의 생산물은 모습을 감추고, 모든 생산물은 사용가치 이외에 교환가치를 가진 ‘물건’으로 전화(轉化)된다. 이 때 소유는 화폐의 소유의식, 화폐로 구입한 재산의 소유의식으로 전화된다. 이러한 재산의 소유는, 생산 활동을 자기 책임 아래에서 제어하는 ‘자기 노동에 의거한 소유’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신의 노동으로 생산한 것의 직접적 소유가 아니다. 화폐를 매개로 한 소유이며, 화폐의 소유이다.

소유권이란, 소외된 인간에 의한 무한한 화폐소유욕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화폐를 가지면 가질수록 자유와 개성은 확대된다. 이 의식은 무엇을 생산할까하는 것보다, 무엇을 팔까, 무엇을 살까하는 의식에 지배된다. 판매는 구매로 연결되고 모든 자본관계에 포섭된 개인은 소비의욕을 고취한다.

린치(Lynchi)가 말하듯이 시민의 사회적 요소가 배제되어 소유권 의식, 소비자 의식이 고취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관계의 총체가 자본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소비자 의식이 고취되는 것이다. 그리고 낱낱의 개인이라는 의식이 지배한다. 이게 자본제 사회의 시민의 특징이기도하다. 한편 자본관계의 지배로부터 사회적 관계의 총체를 해방시키는 투쟁이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다.

3) ‘citoyen'이 평화의 담지자

이러한 자본제 사회의 병폐를 변혁할 참된 시민(citoyen)이 득세해야 ‘자본관계의 지배로부터 사회적 관계가 해방되는’ 사회구성체의 평화가 도래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계급사회인 자본제 사회의 모순을 척결하기 위해 나서는 citoyen의 힘이 강해야한다. 부르주아적 시민이 자본관계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지 않는 한, citoyen으로서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없다.

자본제 사회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데 여러 가지 투쟁이 필요하다. 그 기본은 개개의 인간을 소외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있다. ‘소외된 인격’을 지닌 개인을 ‘참으로 해방된 주체적 인격=citoyen'으로 변환시켜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생산활동을 자본으로부터 해방시켜 인간의 제어 아래에 두며, 가치법칙으로부터 해방시켜 사회적 필요노동의 장(場)으로 전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관계로부터 모든 것을 해방시키는 투쟁이 진행됨으로써, 정치적 공동체에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citoyen이 참된 citoyen으로 자신의 실존성(實存性)을 높인다. 실존성을 높인 참된 citoyen이 평화의 주체, 사회구성체의 평화구축을 이끌어내는 주체이다.

자본관계에 둘러싸인 개인이 소유하는 ‘물건’을 매개로 하는 관계에서, 직접적 인간관계로 변혁하는 생산관계-소유관계의 변혁이 ‘사회구성체의 평화구축’의 요체이다. 개인을 객체적 개인에서 주체적 개인으로 변혁하고, 인격을 소외상태에서 해방시켜 전인적(全人的) 발전을 가능케 하는 투쟁이 ‘지속가능한 평화를 통한 사회구성체의 이행’에 긴요하다.

이 과정은 생산수단과 개별적 ‧ 집단적 인간을 직접적으로 결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 생산활동을 자본의 가치법칙으로부터 해방시켜 직접적으로 인간의 제어 아래에 두고, 사회적 유용노동을 위한 생산활동을 회복시키는 투쟁이기도 한다.

이처럼 경제적 ‧ 정치적 ‧ 사회적 ‧ 문화적 ‧ 이데올로기적으로 해방된 인격이야말로, 참된 citoyen이며, 이런 citoyen이 구성하는 사회야말로 인간다운 시민사회이다. ‘지속가능한 평화를 통한 사회구성체의 이행’은 이런 시민사회를 지향한다. 이러한 시민사회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제공할 것이다.

2. 제국주의와 평화

한반도 안팎에서 ‘지속가능한 평화를 통한 사회구성체의 이행’에 나설 citoyen은 사회구성체의 평화구축을 위해 ‘국가-자본의 결합력’을 무력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자본의 결합력’의 견고한 성채인 제국주의와 계급사회를 지양하지 않으면 평화를 쟁취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평화의 측면에서 본 제국주의론과 이에 연동된 계급사회에 대하여 기술한다.

1) 제국주의의 지양을 통한 사회구성체의 평화구축

① 갈퉁의 제국주의론

갈퉁(Johan Galtung)은 자신의 지론인 ‘구조적 폭력'론에 바탕을 둔 제국주의론을 전개한다.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이란 인간의 잠재적 발전을 저해하는 억압 ‧ 착취 ‧ 학정 ‧ 인권탄압 ‧ 기아 ‧ 인종차별을 뜻하며, 구조적 폭력이 없는 상태가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이다. 그리고 이 보다 더 넓은 일반적인 의미의 구조적 폭력은, 전 세계적인 패권국가 중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직적인 지배 형태의 네트워크 형성의 역학에 의하여 생겨난다.

Galtung은 국제적 차원에서 구조적 폭력을 생성시키는 구조로서 제국주의를 들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제국주의는 통시대적(通時代的)으로 존재하는 인간 집합체(collectivity)간의 지배체제(dominance system)에 있어서의 특정한 형태이다. 구조적 폭력은 인간의 잠재적 발전을 저해하는 총체로서 이해된다. 제국주의가 만약 富의 불평등한 분배와 이에 따르는 생활수준의 격심한 차이와 빈곤, 다양한 형태의 억압과 종속 등의 문제들을 생성하거나, 최소한 유지시킨다면 이는 명백하게 구조적 폭력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이다. Galtung에 따르면, 지배체제로서의 제국주의는 그러한 종류의 문제들을 발생케 하고 유지시키며 강화한다고 한다.(정중식 1987, 19쪽)

Galtung은 제국주의를 국제적 차원에서 구조적 폭력을 야기하는 지배구조로 보고 있다. Galtung은 제국주의 체제를 구조적으로 생성, 유지, 강화시키는 메카니즘으로서 착취, 침투, 분단화 그리고 변경화(邊境化)를 제시하였다. 착취 메카니즘은 제국주의의 기초로서 상호작용 관계에 있어서 수직적 분업에 의한 공평(公平)이 결여된 비대칭적(asymmetric) 관계 구조를 뜻한다. 침투는 제국주의의 기준(criterion)으로서 cC(중심부 국가의 중심부 계층)와 cP(주변부 국가의 중심부 계층)의 이익의 조화에 근거하고 있는 구조이며, 여기에서 cP는 C(중심부)국가의 P(주변부)국에 대한 교두보의 역할을 한다. 분단화는 제국주의를 안정화시키는데 필요한 메카니즘으로 주변부 계층들이 서로간의 상호작용을 결여한 분단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전적인 분할-지배의 원칙(principle of divide and rule)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邊境化는 필수적 메카니즘은 아닌 것으로서, 개별적 제국주의로부터 결합된 제국주의로의 변화를 나타낸다. 현대의 양상인 결합된 제국주의는 P국에게 중요한 결정들이 그들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변경화 메카니즘은 현대의 제국주의가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Galtung은 제국주의의 경제, 정치, 군사, 커뮤니케이션, 문화, 사회적 유형을 각각 구분하였다. 그는 이들 여섯 유형간의 우월성(supremacy)과 우선성(priority)을 배제시킴으로써 제국주의적 관계는 어느 유형으로부터도 시작될 수 있다고 개방적 태도를 취하였고, 이들 유형 사이의 변환(convertibility)을 강조함으로써 유형 상호간의 유기적 연계성을 중요시하였다. 마지막으로 Galtung은 피지배지역에 대한 통제 행사의 양식에 따라 제국주의의 3단계를 구분하였는데, 여기에서 단계 변화의 요인이 되는 것은 통제 양식을 결정하는 교통 ‧ 통신 수단의 변화이다.(정중식 1987, 55~56쪽)

갈퉁의 ‘제국주의론’에 따르면, 세계는 ‘중심국(C=core state)'과 ‘주변국(P=periphery state)'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자의 관계가 이른바 ‘(세계적 차원의) 남북 관계’이며, 중심국과 주변국 사이(C-P)에는 구조적 폭력이 존재한다. 그리고 ‘중심국’도 ‘중심부(c)'와 ‘주변부(p)'로, ‘주변국’도 ‘중심부(c)'와 ‘주변부(p)'로 구성되어 양자의 중심부와 주변부의 사이(c-p)에도 구조적 폭력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구조적 폭력은 ① 중심국의 중심부와 이익의 조화가 있는 주변국의 중심부 對 주변국의 주변부의 관계(Cc=Pc-Pp) ② 주변국의 중심부 對 주변국의 주변부의 관계(Pc-Pp) ③ 중심국의 주변부 對 주변국의 주변부의 관계(Cp-Pp) ④ 중심국의 중심부 對 중심국의 주변부의 관계(Cc-Cp)에서 나타난다.
위의 설명을 주한미군 체제와 관련하여 변용시키면 다음과 같다; <그림 1; 拙著 『오만한 나라 미국』240쪽 참조>에서와 같이 미국의 ‘군(軍) ‧ 산(産) ‧ 관(官) ‧ 의회 ‧ 학(學) ‧ 언(言) 복합체(C)'와 한국의 ‘군 ‧ 산 ‧ 관 ‧ 의회 ‧ 학 ‧ 언 복합체(P)'의 연결고리인 주한미군 체제에 의하여 구조적 폭력의 중심축이 형성된다(구조적 폭력 ①). 이 구조적 폭력은 한미 상호방위 조약-한미 행정협정(SOFA)의 불평등 조항에서 잘 드러나며 분단 모순 ‧ 민족 모순의 군사적 측면을 보여준다. C와 P 사이의 불평등 관계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미국 중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직적인 지배형태가 주한미군을 통하여 나타나는 구조적 폭력)은, Cc-Pc의 유착 對 Pp의 구조적 폭력관계로 전이(轉移)한다(구조적 폭력 ②). 한미 행정협정의 불평등 조항이, 미군의 성폭행 ‧ 살인 ‧ 인권 탄압 ‧ 시민 폭행 ‧ 미군부대의 환경오염 ‧ 미군 폭격 훈련장 주변지역 주민의 소음 공해 ‧ 미군기지 지주들에 대한 소유권 침해 등의 구조적 폭력을 유발하고 있다. 또 지난 시절 미국의 지원을 받은 한국 파시즘 정부의 압정으로 무고한 국민들이 받았던 고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컨대 광주 민중항쟁 운동 때 전두환 군부의 살육극을 억지(Deter)하지 않은 주한미군이 민중학살을 간접적으로 방조한 점에서 [주한미군의] 구조적 폭력을 발견할 수 있다. 분단체제[미국의 한반도 분단관리 체제]의 보루인 국가보안법에 의한 희생도 구조적 폭력에 해당된다. 분단경제의 파쇼화가 빚은 'IMF 신탁통치[미국의 입김을 받는 IMF가 한국경제를 신탁통치하듯 관리함]’로 인한 빈곤의 확산도 구조적 폭력으로 간주할 수 있다. Cc-Pc의 유착 對 Pp의 모순에서 파생되는 구조적 폭력의 구도는, Cp(미국 주변부 국민들)의 비고의적(非故意的)인 Pp(한국 민중) 억압(구조적 폭력 ③)으로 점철되면서, Cp 자신도 제3의 간접적인 피해자가 되는 한편 Cc로부터 억압(구조적 폭력 ④)을 당하는 구조적 폭력의 악순환을 이룬다.
이러한 악순환의 본류에서 한국(South P)과 북한(North P) 사이의 구조적 폭력 관계, [일본의] 신가이드라인[최근에는 ‘有事法制’]에 의하여 예상되는 구조적 폭력이 파생될 것이다. 미국 등 중심국으로부터 반(半)주변국으로 인정받은 한국이 북한을 흡수통일하려 하거나, 미국의 북한 핵시설 폭격 계획을 간접적으로 부채질한 점으로 미루어 주변국 사이에도 구조적인 폭력 관계(구조적 폭력 ⑤)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심 국가군(미국 ‧ 일본)에 의하여 추진되는 신가이드라인의 ‘주변 사태’가 북한의 유사시(붕괴 등)를 상정(북한이 미 ‧ 일 신가이드라인 체제의 주변부임)하고 있는 바, 앞으로 C와 P(북한) 사이에 신가이드라인을 에워싼 구조적 폭력(구조적 폭력 ⑥)이 예견된다.
지금까지 갈퉁의 제국주의론으로 주한미군의 구조적 폭력을 논증했다.(김승국 2002, 239~240)

② 로자 룩셈부르크의 제국주의론

로자 룩셈부르크에 의하면, 자본주의 내부에서는 잉여가치 축적분의 소비자를 찾을 수 없게 되고 유일하게 남는 것은 해외시장이다. 그 해외시장도 역시 자본주의 시장이라면 비자본주의 경제부문으로서의 외부시장이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잉여가치의 실현을 위하여 계속적인 팽창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룩셈부르크는 이렇게 제국주의의 대외팽창이 자본주의의 생존에 본질적인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제국주의를 정의하기를 “제국주의는 아직도 세계의 비자본주의 지역으로 남아 있는 지역을 얻기 위해 경합적으로 투쟁하는 자본축적의 정치적 표현이다”라고 했다(R. Luxemburg 1951, 446쪽).

로자 룩셈부르크는 비자본주의 지역에 대한 자본주의의 이와 같은 침투에서 축적문제의 해답을 발견했다. 그녀는 과잉생산되는 소비재 부문의 잉여가치의 실현을 위하여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새로운 비자본주의적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필요함을 이론적으로 밝힘으로써, 자본주의가 비자본주의 지역에로의 침투 가능성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마르크스가 표현한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자본주의의 초기단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더 이상 침탈할 수 있는 비(非)자본주의 지역이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되는 자본주의의 항구적 특성이라고 밝힌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힘을 장악한 자본도,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더욱 중대한 규모로 즉 근대 식민지 정책에 의해 그 동일한 과제를 수행한다. 자본주의가 상품교환으로 획득할 수 있는 생산수단에 영구히 만족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지구표면의 방대한 지역은 상품교환에 대한 어떠한 욕구도 갖지 않거나 또는 전체 사회구조와 소유형태로 말미암아 자본이 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생산제력을 판매에 제공할 수 없는 그런 사회조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은 이 점에 있어서 이미 어려움에 빠져있다...원주민의 원시적 결합체는 그 사회조직에 대해, 또 존재의 물질적 기초에 대해 가장 강력한 보호막으로 자본은 그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비자본주의적 구성체의 자연적 파괴와 상품경제로의 이행을 기다릴 수 없고 또 이것에만 만족할 수도 없다. 폭력은 자본에 열려진 유일한 해결책이다. 역사과정으로 볼 때 자본축적은 그 발생에서 뿐 아니라 오늘까지도 계속 폭력을 항구적인 무기로 사용한다.(R. Luxemburg 1951, 370~371쪽)

로자 룩셈부르크는 비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파괴와 자본주의 침투의 첫 단계로 자본의 자연경제와의 투쟁을 들었다. 그녀는 이 자본의 자연경제와의 투쟁과정에서 자행되는 잔인한 유혈과정을 인디아와 알제리를 예를 들면서 묘사한다. 그러나 모든 정치적 경제적 힘을 동원해서 고립된 사회로부터 무력으로 생산수단을 빼앗고 노동자들을 자본가들의 착취 아래로 복종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상품경제의 도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하여 철도와 운하 같은 운송수단의 건설이 이루어진다.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가 이를 위하여 전쟁도 서슴지 않는 것을 중국의 아편전쟁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최은혜 1987, 40~43쪽)

자본주의가 무자비하게 팽창하며 비자본제적 경제를 동화시키는 마지막 단계를 룩셈부르크는 “제국주의”라고 부른다. “자본주의 국가가 고도로 발전해 가고 비자본주의 지역을 획득하고자 점점 더 불꽃 튀기는 경쟁을 하게 됨에 따라, 제국주의는 비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침략과 경쟁하는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보다 심각한 갈등 속에서 무법성과 폭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제국주의가 비자본주의 문명을 격렬하고 무자비하며 철저하게 파멸시킬수록 그만큼 급속하게 자본주의 축적이 딛고 선 지반을 모두 잘라 버리게 되는 것이다.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발전을 연장시키는 역사적 방법이지만 그것은 또한 자본주의를 즉각적으로 종결시키는 확실한 수단이다.
이러한 룩셈부르크의 제국주의론이 출발점을 삼고 있는 것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제2권의 결론부분인 ‘축적과 확대 재생산’으로 그녀는 자본축적의 문제에서 유래한 제국주의론을 성립시킨 것이다.(최은혜 1987, 45쪽)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이 군국주의를 통해 국내나 국외에서 비자본가 계층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노동계급의 전반적인 생활수준을 낮출수록 세계무대에서 자본축적의 역사에 대한 영향은 나날이 커진다. 그것은 일련의 정치적 ‧ 사회적 재앙과 격동을 일으키고 그리하여 이러한 조건하에서 주기적인 경제적 파국과 위기로 축적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자본 전체가 만들어 낸 이러한 자연적인 경제적 난국에 도달하기 전에라도 국제적인 노동계급이 자본의 지배에 대해 항거하는 것은 필연적이게 된다.” 따라서 룩셈부르크의 제국주의론은 폭력수단으로 제국주의 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의 사멸의 고뇌를 단축시키기 위해 노동대중, 특히 산업국가의 프롤레타리아에게 혁명적 행동을 호소하는 데서 절정에 달한다.(최은혜 1987, 55쪽)

‘폭력은 자본에 열려진 유일한 해결책이다. 역사과정으로 볼 때 자본축적은 폭력을 항구적인 무기로 사용한다’고 설파한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가 비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파괴와 자본주의 침투를 위해 전쟁도 서슴지 않는 것을 중국의 아편전쟁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제국주의는 비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침략과 경쟁하는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보다 심각한 갈등 속에서 무법성과 폭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제국주의를 위한 전쟁 ‧ 폭력 ‧ 무법성의 그루터기는 군수자본이다. 군수자본에 관하여 분석한 로자 룩셈부르크는 마르크스의 재생산 표식을 원용하여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군국주의는 축적의 한 형태이다. 노동자로부터 착취한 간접세의 총액이 관리의 봉급으로 지출되거나 상비군의 생활수단으로 지급된다. 이로써 총생산물의 분배에 변동이 생긴다. 즉 마르크스의 재생산 표식의 제1부문(생산수단을 생산하는 부문) 중에서 노동자 계급의 소비로 보전되는 제2부문(소비수단을 생산하는 부문)의 일부가 자본가 계급의 종속자(상비군)에 할당된다. 이처럼 노동자 계급이 전쟁노예의 유지비를 부담한다. 이 유지비는 계급지배의 도구를 구입하는데 쓰이는 비용(군사비)이다.
자본가들은 이렇게 자본가의 종속자(상비군)의 유지비를 노동자에게 전가한다. 군국주의 비용은 노동자 ‧ 농민에게서 나온다. 그리고 노동자를 구매하는 가변자본의 일부가 국가로 이전되어 간접세를 형성하며, 이 간접세로 군국주의를 유지한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을 위한 생활수단의 생산량이 감소하게 된다. 노동자의 생활수단이 감소하면, 가변자본의 양이 감소하여 자본축적의 한계에 봉착한다.
한편 간접세가 높아지면 생활수단의 가격이 올라 노동자의 고난과 ‘산 노동’의 생산에 지장을 초래한다. 달리 말하면 군수품으로 돌려진 노동자 계급의 소비감소(재생산 표식의 제2부문)가 생활수단 생산의 감소로 이어져 생산수단 부분(재생산 표식의 제1부문)의 규모가 축소됨으로써 재생산 도식에 변화가 온다.
자본주의의 확대 재생산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수단(재생산 표식의 제2부문) 대신 군수품을 생산(군국주의 강화)하면 자본축적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 대중용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다수의 자본가의 판로는 줄어드는 대신 군수품을 생산하는 소수의 대공업가의 이익은 증가한다. 이와 동시에 노동자의 생산품의 일부가 군수 자본가의 손을 거쳐 살인 도구(무기)로 변화된다.
요약해서 설명하면, 노동자로부터 착취한 간접세를 군대의 급여로 충당함으로써 자본가 계급의 계급지배 도구(상비군)의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잉여가치로부터 가변자본으로 전가)시키고, 그와 같은 정도로 잉여가치를 자본화의 목적을 위해 해방시킨다. 그 결과 노동자로부터 착취한 조세가 군수품 생산으로 향해짐으로써 축적의 새로운 가능성을 자본에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군국주의는 두 가지 방향에서 움직인다. 첫째, 노동자 계급의 정상적인 생활조건을 희생시켜 자본지배의 기관이나 상비군을 유지한다. 둘째, 엄청나게 큰 자본축적의 영역을 보증한다.
그러나 자본은 세계정책이나 식민정책을 통한 팽창을 위해 비(非)자본주의적인 제국(諸國) 및 제사회(諸社會)의 생산수단이나 노동력을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 정력적으로 군국주의를 동원하며 전쟁을 지향한다(이 전쟁의 대표적인 사례가 제1차대전이다). 그런데 식민주의를 위해 군국주의를 강화하고 현지 노동자의 구매력을 탈취하면 할수록, 군국주의의 폭력이 노동자들의 생활조건을 떨어뜨려 정치 ‧ 사회적인 파국으로 전환되고 이윽고 공황의 자태를 나타내는 주기적인 경제파국을 낳는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팽창에 필요한 비자본주의 영역(외부)을 절대적으로 요구하며, 이러한 ‘외부’ 영역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외부’에 있는 자본주의 국가의 외부 혹은 그 주변을 의미한다. 의존적인 생산양식으로서 자본주의는 일단 비자본주의 영역 모두를 흡수하면 자멸하게 된다. 이는 다만 시간문제일 뿐이다. 모든 ‘외부’ 영역의 흡수에는 반드시 전쟁의 형태를 띤 ‘재앙’이 뒤따른다.(주2)

2) 계급사회의 지양을 통한 사회구성체의 평화구축

계급론에 대해서는 일찍이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최근의 비판을 크게 세 가지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계급구조는 오늘날의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더 이상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둘째, 경제성장, 교육 기회의 확대 등으로 계급적 동질성이 해체되는 대신에 생활과 인생경로에서의 ‘다양화’와 ‘개인화’가 증가해 사회계급과 계층이라는 설명 모델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셋째, 복지국가의 확대 등 여러 생활여건의 향상으로 기존의 물질적 분배투쟁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대신 비물질적 ‧ 상징적 차원에서의 대립과 갈등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는 주장이다.
계급론의 비판자들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성격 변화를 주장하는 반면, 옹호자들은 자본주의의 기본 성격은 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회적 변화를 자본주의적 발전의 결과로 설명하고 있다.(윤도현 2003, 172~173쪽 요약)

그러면 오늘날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라이트(Wright, E.O.)의 분석은 조직화의 정도(노동조합 가입률)가 강하면 강할수록 계급정체성과 계급의식도 높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는 계급과 계급정체성이 사라졌다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노동시간이 줄어든다고 해서 개인의 삶에서 ‘노동 자체’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구조화된 사회적 불평등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 계급은 객관적으로 사라질 수 없다.(윤도현 2003, 177쪽 요약)

구조화된 사회적 불평등은 ‘구조적 폭력’과 연관이 있으므로, 이러한 구조적 폭력을 지양하는 적극적 평화가 사회구성체의 평화 구축에 있어서 매우 긴요하다.

1997년의 경제위기로 인하여 노동계급 내부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비정규직이 크게 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종사자간의 임금의 격차가 커지면서 노동계급 내에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양적 증가와 최저 생계비 수준을 밑도는 비정규직의 월소득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지만 빈곤한 노동자 집단이 생겨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와 같은 국가의 정책이 지속되는 한, 한국의 계급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촉진시키기 위한 노동정책과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케 한 금융시장 개방정책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지속되는 한, 계급 불평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경우,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기득권 집단이 더욱 더 부를 독점하게 될 것이다. 생산적인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금융, 부동산, 증권 등의 자산을 소유한 집단들이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이들 집단으로 부의 독점 현상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현재와 같이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를 독점하는 사회 그리고 비정규직 종사자들의 경우처럼 노동을 하더라고 최저생계비를 얻지 못하는 사회는 분명히 정의롭지 못한 사회이다. 한국의 21세기 과제는 이러한 사회 체제를 개혁하는 일이다. 이것은 땀 흘린 만큼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신광영 2003, 202~203쪽)

땀 흘린 만큼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면 사회구성체의 평화구축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계급사회를 지양해야하며, 계급사회를 지양하는 속도에 걸맞게 사회구성체의 평화구축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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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1) 이 장(章)은, 니콜라스 ‧ 린치(Nycolas Lynchi)의 시민사회론에 관한 논문 <河合恒生「市民社會と社會主義」アジア ‧ アフリカ硏究所, 『アジア ‧ アフリカ硏究』358호(2000년 제4호)>에 크게 힘 입었다.
(주2) 김승국「평화 - 생태론의 실천 (10)」{평화 만들기} 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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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김승국『오만한 나라 미국』(서울, 아이필드, 2002)
* 정중식「Galtung의 제국주의론 연구」(단국대 석사논문, 1988)
* 최은혜「잉여가치 실현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제국주의론 고찰」(서강대 석사논문, 1987)
* 윤도현「계급과 보편성」『비평』11(2003년 상반기)
* 신광영「한국 사회의 계급 문제」『비평』11(2003년 상반기)
* R. Luxemburg 『The Accumulation of capital』(London: Routledge & KeganPaul, 1951)
* 河合恒生「市民社會と社會主義」アジア ‧ アフリカ硏究所,『アジア ‧ アフリカ硏究』358호(2000년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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