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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평화 (62)

童心論

기세춘 (기사입력: 2005/01/09 15:12)  

無智

1. 노자는 공자의 仁義를 반대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당시 문명을 증오한다. 밖으로 사회구성체는 원시 공산사회를 동경했고, 안으로는 사람마다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동심의 나라를 소망했다. 그는 춘추전국시대의 압제와 착취와 전쟁에 광분하는 인간들의 모습에 실망하고 좌절했다. 그리고 그의 처절한 환멸은 생명의 고향인 모태와 자연과 동심으로 퇴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음 글은 문명을 거부한 역설이다. 지배들이 선왕의 말씀을 진리인양 치켜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이를 비꼬는 반 유가적인 역설인 것이다. 그런데 왕필은 “지식인은 간교하다”는 처세훈으로 해석함으로써 교묘하게 저항성을 탈색시켜 버린다. 그 결과 이러한 처세훈은 후세의 퇴폐적이고 낭만적인 풍자객들에게 유행되었고 民은 어리석어야 한다는 愚民主義를 선전하는 반동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老子/20장): *죽간본 24장.
絶學無憂.
본뜻: 선왕의 학문을 단절하니 근심이 없다.
(김경탁: 학을 끊어도 근심이 없다)
(도올: 배움을 끊어라! 근심이 없을 지니)
(오강남: 배우는 일을 그만두면 근심이 없어질 것이다)
唯之與阿 相去幾何.
예! 예? 하는 차이는 미미한 것이 아닌가?
(김경탁: 예! 응! 의 차이는 얼마나 되느냐?)
(도올: 네와 아니요가 서로 다른 것이 얼마뇨?)
(오강남: 예! 응! 의 차이가 얼마이겠습니까?)
善之與惡 相去何若.
선과 악의 차이는 아마 같지 않을까?
(김경탁: 선과 악의 서로 거리가 얼마냐?)
(도올: 좋음과 싫음이 서로 다른 것이 얼마뇨?)
(오강남: 선하다 악하다는 차이가 얼마이겠습니까?)
人之所畏 不可不畏 주: 畏=嵔(산을 외경하다). 猥(짐승을 무서워하다)
남들이 畏敬하는 것을 나도 외경하지 않을 수 없으니,
(김경탁: 남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나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도올: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나 또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으리!)
(오강남: 남들이 두려워하는 것 나도 두려워해야 합니까?)
荒兮 其未央哉. 주: 央=중앙의 帝=混沌=暗黑=道
본뜻: 헛되다! 혼돈의 中央(無爲自然)에 이르기는 멀었구나!
(김경탁: 마음이 황막한 모습은 아직 중심이 잡히지 않는 듯 하도다!)
(도올: 황량하도다! 텅 빈속에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네!)
(오강남: 얼마나 허황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입니까? )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주: 遺=遺失, 脫落(無祿者)
남들은 모두 넉넉한데 나만 녹이 없고
俗人昭昭 我獨昏昏
속인들은 모두 똑똑한데 나만 바보 같구나!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내가 남들과 다른 것은 젖을 물린 어미를 귀하게 여길 뿐이네.

이처럼 위 글에 대한 도올의 해석은 본뜻과는 정반대이다.

첫째, 노자는 선악의 가치판단을 거부한다. 이것은 당시의 지배 이념인 周禮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노자의 自然= 道= 混沌은 이름과 의미와 시비와 선악의 분별과 차별이 있을 수 없는 無爲이다. 그들이 말하는 학문이니 선악이니 하는 것들은 인간이 제멋대로 해석한 것일 뿐 자연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도올은 반대로 노자가 시비선악의 분별과 기존의 가치 체계를 긍정한 것으로 왜곡한다.

둘째, “헛되다” 고 한탄한 것은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신 죽음 명예 권력 등 남들이 공경하는 것을 자신도 공경하니 아직도 道=中央=無爲自然=混沌에 이르지 못했음을 한탄한 글이다(中央之帝混沌--莊子/應帝王). 그러나 도올은 “央”을 엉뚱하게도 “空虛”로 해석한다.

셋째, 결론 부분은 제자백가를 俗人이라 야유하고 자기는 그들과는 달리 생명 제일주의를 주장한다는 뜻이다. 도올의 번역도 별 차이가 없는 듯 하나 反儒家적인 함의를 탈색해 버리는 수법으로 반동적인 글로 왜곡한다.

2. 아래 예문도 위 글과 같은 맥락으로 童心의 무지를 말한 글이다. 도올의 [노자]는 38장 이하는 간행되지 않았으므로 알 수 없으나 왕필은 지식인의 간교함을 질책하는 교훈담으로 해석함으로써 반문명 반유가적 저항성을 탈색시켜버린다.
(노자/65장(淳德): * 죽간본에는 없음.
古之善爲道者
옛날 도를 잘 행한 자는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을 계명시키지 않고 (자연대로) 어리석게 놓아두었다.
(김경탁: 백성을 현명케 하는 것이 아니요 우매하게 하니)
(노태준: 상동)
(오강남: 상동)
民之難治 以其智多
민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시비를 가리는 지식이 많기 때문이다.
故以智治國 國之賊
그러므로 지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나라의 도적이요,
不以智治國 國之福.
지식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자는 나라의 복이다.
知此兩者 亦稽式. 주: 稽(해)=考也 至也. 式= 占文. 轉天文者.
이 둘을 알면 또한 天文(理)을 알 수 있다.
(왕필: 고금이 다 같은 법도이다.)
(하상공: 법도를 따르는 것이다.)
참고: 周禮太史注: 大出師則 太史主抱式. 以知天時 主吉凶.
(疎) 以其見時候 有法式 故謂轉天文者爲式.
*王弼本: 稽 同也. 今古之所同 不可廢也.
* 河上公本: 稽=楷也. 楷=模也. 式=法也.
(김경탁: 이 양자는 역시 稽式(본보기)이니)
(노태준: 이 양자를 아는 것도 또한 계식(법칙)이다)
(오강남: 이 둘을 깨닫는 것이 하늘의 법도를 깨닫는 것입니다)
常知稽式 是謂玄德.
항상 자연의 天文(理)을 아는 것을 일러 으뜸의 덕이라 한다.
玄德深矣遠矣.
현덕은 깊고 멀다.
與物反矣
사물과 어긋나는 것 같지만
然後乃至大順.
후에는 결국 위대한 자연에 순종하는 것이 된다.

왕필 해설:
明謂多見巧詐. 多智巧邪 故難治也
“明”은 견문이 많고 간교하고 거짓됨을 말한다.
지식이 많으면 간교하고 거짓되어 다스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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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기대승 선생의 후손으로 1937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남. 전주사범학교 졸업. 전남대 법과 대학 입학. 4.19 혁명 적극 가담. {동학혁명 연구회} 창립.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창립.
저서로는 『천하에 남이란 없다-묵자』『우리는 왜 묵자인가』『예수와 묵자』『신세대를 위한 동양사상 새로 읽기』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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