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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새해 구상과 북한 붕괴론

이재봉 (기사입력: 2005/01/09 15:22)  

새해는 북한에게 여러모로 뜻깊은 해다. 북한에서는 어떠한 기념일의 주기가 5의 배수가 되면 이른바 ‘꺾어지는 해’라 하여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먼저 2005년은 우리 민족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된지 60년이 되는 해다. 또한 인민과 나라를 이끌어가는 조선로동당이 세워진지 60년이 되고, 극심한 경제난을 비롯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일종의 비상 조치로 군대를 앞세운 정치 (先軍 政治)를 시작한지 10년이 된다. 그리고 평양에서 6.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된지 5주년이 되는 해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작년 말부터 각종 언론을 통해 지난 10년 동안의 선군 정치를 바탕으로 “강성대국 건설의 귀중한 사상 정신적 및 물질적 밑천을 마련했다”고 주장하며, 앞으로도 “선군 정치 방식을 필승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뜻깊은 2005년을 “경제 강국 건설의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2005년 첫날 발표한 “전당, 전군, 전민이 일심 단결하여 선군의 위력을 더 높이 떨치자”는 제목의 공동 사설을 통해서도, 선군 정치를 바탕으로 정치 안정을 유지하고 경제 개혁을 통해 인민 생활 향상에 힘쓸 것을 밝혔다.

이렇게 북한에게 의미 있는 시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남한 정부도 진지한 고민을 해온 듯하다. 구체적인 정보는 없지만 여러 가지 정황에 따르면 제 2차 남북 정상 회담을 갖기 위한 물밑 접촉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1월 미국을 방문해서 북한핵 문제와 관련하여 전쟁은 결코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데 이어 유럽을 순방하면서는 북한이 당분간 붕괴될 것 같지 않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것은 미국과 남한의 강경파들에게 던지는 경고이면서 북한에 간접적으로 보내는 화해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나라 안팎의 반발이 적지 않다. 노대통령에게 말조심하라는 점잖은 훈계를 곁들이며 북한 붕괴의 가능성과 관련한 소문이나 억측을 부풀리는 언론인과 학자 그리고 정치인들이 여전히 큰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 분석에 따른 합리적 사고 방식보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의 비위를 거슬러서는 안되고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과는 화해할 수 없다는 친미 반북적 인식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이들 가운데 1990년대 중반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 붕괴론을 들먹거리며 한반도가 내일이라도 통일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큰소리 칠 때, 그의 발언이 경솔하다고 비판하거나 대북 외교에 신중해야 한다고 충고했던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가.

나는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붕괴는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주장을 해왔다. 당시엔 미국의 정보부나 군부 관계자들이 북한의 붕괴는 시간 문제라고 떠들어대고 남한의 언론인들이나 학자들은 북한이 현재 붕괴중이라는 억지까지 내놓던 무렵이어서 내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다. 북한이 붕괴되면 좋겠다는 주관적 희망 사항에 따라 북한이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하기보다는 객관적 정세 분석을 바탕으로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따져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내용의 논문을 대중 강연회가 아닌 학술 세미나에서 발표하는데도 정보부원들의 시비를 받아야 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 붕괴를 예상하는데 나만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니 머지 않아 북한이 붕괴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며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1997년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은 “이번에 당선되면 통일 대통령이 되기 쉬운데 북한 지도자들을 어떻게 처리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북한 붕괴론이 쑥 들어가 버렸다. 우리가 IMF 신세를 지면서 북한이 무너지면 남한 경제도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북한 정보를 총괄했던 정보부 고위 관리는 북한이 무너질 것 같지 않지만 만에 하나 북한이 붕괴될 경우 남한이 수습할 능력이 없으므로 붕괴 조짐이 보이면 대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를 나에게 개인적으로 털어놓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에서나 김대중 정부에서나 북한의 조건이나 상황 변화보다는 남한의 정세와 희망에 따라 북한 붕괴의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북한의 정세를 분석해보면 무너질 것 같지 않다는 예상을 하게 되고, 남북한의 상황을 고려해서 북한 붕괴가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주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990년대 북한 붕괴론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과정 그리고 만약 북한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거나 붕괴되면 벌어질 수 있는 상황 등에 관해서는 내 홈페이지 (pbpm.org) ‘논문 모음’에 올려놓은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물론, 만에 하나 북한이 무너진다면 남한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므로 북한 붕괴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정부 차원에서 그 대비책은 분명히 세워놓되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야 할 것이다. 북한을 자극해서 남북 관계나 통일 문제에 도움이 될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북한 체제 유지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먼저 정치적으로 북한을 세운 주역들이 김일성 주석을 비롯하여 주로 항일 독립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라 정권의 정통성을 지녔다 할지라도 정권이 부자간에 세습되는 것조차 많은 인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김정일 총비서의 후계 문제를 둘러싼 집권 세력 내부의 갈등이 체제 붕괴를 불러올 만큼 심각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몇 달 전부터 북한의 주요 건물에서 김정일 총비서의 사진이 떼어진다고 그의 신변이나 권력 장악에 이상이 생긴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그의 대외적 이미지 개선을 위한 조치가 아닐까.

둘째, 1998년부터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고 2002년 7월부터 시작된 경제 개혁 조치에 따라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한편, 이 과정에서 나타난 인플레이션과 빈부 격차 그리고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불러오기 쉬운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 등이 사회를 불안정하게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한의 영상물이나 휴대 전화의 증가를 통해 제한적이나마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체제에 대한 불만이나 상대적 박탈감 또는 대안 사회에 대한 동경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경제 개혁과 사회 개방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법령을 정비하고 단속과 사상 교육을 강화하면서 이른바 속도 조절을 하는 가운데, 새해 공동 사설에서 밝혔듯, “발전하는 현실과 나라의 실정에 맞는 우리 식의 독창적인 경제 관리 체계와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대규모 시위나 폭동을 불러올 수 있는 시민 사회의 출현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겠는가.

셋째, 대외적으로 북한핵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는 마당에 미국에서 부쉬 정부가 연장되고 북한 인권법이 통과되는 등 ‘미제의 압박’이 지속된다면 정치 안정과 경제 성장에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차례 밝혔듯, 미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북한을 고립시키며 경제 제재를 가한다 할지라도 중국이 이에 반대하며 북한을 지지하는 한 북한의 붕괴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할까.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북한의 붕괴를 은근히 부추기거나 노골적으로 기대하면서 쓸데없이 북한을 자극할 게 아니라, 북한 당국이 더욱 자신있게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한반도에 평화가 굳건하게 정착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역사적인 6.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된지 5년이 다가오는데도, 분단은 곧 환갑을 맞이하게 되지만 통일은 아직 새싹도 돋아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가슴아프게 반성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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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원광대 교수이다.
* {남이랑 북이랑}(2005년 1월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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