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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 로드맵 (22)

보론 7; 탈미 사회구성체

김승국 (기사입력: 2005/01/12 23:02)  

친미-반미의 이분법 넘어 '탈미'를

한겨레 신문이 주도한 ‘선진대안 포럼’ 참가자들은 ‘친미-반미의 이분법 넘어 탈미를 대안으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된『한겨레 신문』(2006.4.4)의 기사를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친미로 세운 나라 반미로 망한다.” 최근 어느 보수단체 집회에 나붙은 현수막 내용이란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소개했다. 참석자들이 크게 웃었다.

“미국 숭배자도 미국 공항 검색대에서 한번 발가벗겨지면 반미가 된다.” 또한번 참석자들이 웃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꺼낸 이야기였다. “친미-반미를 대립시키는 것만큼 허구적인 게 없다”고 말했다.

“지금 ‘반미’하자는 의견은 무의미하고 관념적이다.”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미에 반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반미를 넘어 ‘탈미’로 가자”는 게 김명인 인하대 교수의 제안이었다.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참석자들은 그렇게 친미-반미의 이분구도를 입을 모아 비판했다. 그 이분구도 안에서 자라난 냉전반공주의자들이 비판의 첫번째 대상이었다. 동시에 ‘기계적·관성적 반미’도 성찰의 대상이 됐다. 권용립 경성대 교수는 “반미 또는 친미로 자신을 규정하는 사람들은 엄숙한 명분을 현실에 단순화시켜 적용하는 경향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하나의 입장만으로 미국을 바라보는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김명인 교수는 특히 반미 구호가 국민적 공감대를 넓게 얻지 못하는 지점을 짚었다. “한국 근현대사를 잘 모르는 신세대들에게 미국의 ‘역사적 죄과’만 강조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오히려 현재의 한미관계에 대한 합리적·객관적 이해를 높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김 교수는 여러 차례에 걸쳐 “반미를 넘고 지미(知美)·용미(用美)를 거쳐 탈미로 가자”고 제안했다. 여기서 ‘탈미’란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한·미 관계를 정상화시키자는 것이다. 지미·용미는 그 상태에 이르기까지 적절하게 미국의 힘을 활용해 운신의 폭을 넓히자는 뜻이다.

김 교수는 “이제 세계적 차원에서 누구도 미국을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인류의 공존공영을 방해하는 고약한 말썽꾸러기라는 인식이 더 크다. 이런 점에서 ‘탈미’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면 보수와 진보를 다 설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정인 교수는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했다. “한국인들의 인지 구조에는 친미·숭미·반미·혐미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세력은 한-미동맹이 국익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하고, 진보세력은 반미 역시 평화공존·공동번영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국제정세의 맥락에서 탈미의 가능성을 짚었다. 이 교수는 우선 “미국을 배제하면 동북아나 한반도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이 새로운 동북아 질서 구축을 모색하고 있고, 한국 역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비교적 잘 발전시킨 상태”라며 “바로 이 지점에 한국이 미국을 변화시켜 새로운 한미 관계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80년대 이후 반미운동의 변화 흐름을 짚은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반미’ 개념의 새로운 적용을 주문했다. 홍 교수가 관심을 두는 것은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한국사회 전반에 뿌리박은 “미국은 좋은 사회라는 이데올로기”다. 그는 “세계 최대의 낭비국가·오염국가·전쟁국가인 미국의 실체를 제대로 본다는 맥락에서 의도적으로 반미라는 개념을 새롭게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 안의 미국’을 정돈해야 ‘우리 밖의 미국’과도 대등한 관계를 모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1. 왜 탈미인가?

최근 보수주의자들이 애용하는 단어 중에 ‘용미’(用美)라는 것이 있다. 종전처럼 미국에 대한 ‘의리’를 강조해 봐야 젊은이들의 비웃음을 사게 되고 대중의 자긍심마저 커졌으니, “우리가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면서 대미 예속의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 가장 호소력이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한반도의 남반부가 미국의 영향권에 편입된 1945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미국을 ‘이용’할 여유도 없이 북한에 대한 미국의 ‘보호’를 원했던 토착 통치자들과 동아시아에서 군사 거점이 전략적으로 필요했던 미국 사이에 일종의 ‘운명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남한의 부르주아 ‘온건파’에게 전쟁광인 부시와 시장을 교란시키는 미국계 투기 자본은 버거운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온건파는 자유주의적 투지·자주성을 결여한 주변부형 부르주아 정객의 보수성과 미숙성에다 독재 시절 때부터 그대로 온존해온 군·관·학계의 숭미파의 무게가 가미돼 탈미(脫美)를 시도하기는커녕 미국의 ‘총알받이 공급자’로 전락하고 말았다.(주1)

최근의 북한 핵 사태 속에서 아주 굵직한 하나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그 어떤 것하고도 바꿀 수 없는 그 무엇이 우리 앞에서 용솟음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탈미(脫美)다. 생경하기 짝이 없는 이 조어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빚은 부산물에 다름아니다.
탈미는 한자어 그대로 ‘미국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그러나 일상어가 된 반미(反美)와 비교했을 때 탈미란 말의 뜻이 알기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미국을 반대함’과 ‘미국에서 벗어남’. 이는 둘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을 반대함이라는 표현은 보다 직접적이고 전투적이다. 반면에 미국에서 벗어남이라는 표현은 전자를 포괄하면서 그 단계를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탈미는 반미에서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이러한 탈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작금 미국은 허겁지겁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북핵 사태를 야기시키면서 처음부터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다는 강수를 뒀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경제봉쇄로 후퇴했다. 그것은 이내 대화할 수 있다는 쪽으로 대폭 조정됐다.
물론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배경에는 이라크전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조치들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이상기류를 읽고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조건부 대화를 제안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한다. 그 이상기류는 탈미다.
주지하다시피 핵 공격도 불사하겠다고 분기탱천하고 있을 때 정작 동맹관계인 한국은 이를 명백히 반대하면서 중국 등에 특사를 보내 중재를 요청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 일본도 평화적 해결을 지지했다. 경제봉쇄 역시 모두 반대했다. DJ는 “냉전시대 때도 공산국가에 대한 경제 봉쇄가 성공한 적이 없다”며 정면으로 미국에게 어퍼컷을 날렸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동시에 같은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가 미국을 참혹하게 ‘왕따’ 시킨 것이기도 하다. 피 흘리는 것은 고사하고 격렬한 구호 한 번 없이 반미를 넘어 탈미의 경지에 접어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탈미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단지 객관적 조건은 탈미로 흐르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것을 전쟁에 몰두하고 있는 부시가 읽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탈미로 흐르고 있었던 객관적 조건은 동아시아의 공동의 이해관계다. 러시아와 중국, 일본, 남한, 북한 등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축으로 제2의 경제부흥을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동아시아 경제연합. 남북 정상 회담과 북일 수교, 한러 외교강화, 북러 외교강화 등은 이같은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었지만 세계 경찰 국가인 미국은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알아채는 우를 범했다.
미국은 스스로 왕따를 자초한 셈이다. 그러나 탈미 이면에 미국의 패권적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놓쳐서는 안된다. 그것은 약육강식만으로는 더 이상 여러나라의 경제를 부흥시킬 수 없다는 비판이다. 일본이 북핵 사태에 소극적인 것은 이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탈미의 주관적 조건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반도를 비핵 평화지대로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주체적 노력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DJ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한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주체적 행위의 극적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탈미는 더욱 값지다.(주2)

노무현 정권과 탈미의 문제를 생각해본다.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집요한 압력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강행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성격상 ‘반미(단호한 파병 거부)’는 못하지만 ‘탈미’는 할 수 있다. 국민의 정서를 핑계 삼아 미국이 원하는 파병을 하기 어렵다는 ‘탈미(협상을 통한 파병 거부 또는 유보)’의 움직임이 없는 게 아쉽다.

스페인을 보라. 2003년에 스페인에서 정변이 일어나 사회당이 집권했다. 선거 유세기간 중 스페인의 사회 노동당 당수인 로드리게스
‧ 사빠테로 씨는 ‘스페인군의 철수’를 주장하면서 ‘부시와 블레어는 자기비판해야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미국에 종속적이었던 스페인의 외교자세를 수정하여, 미국에 비판적인 독일 ‧ 프랑스 쪽으로 선회해야한다’는 발언을 했다. 집권 이후 그의 뜻대로 스페인은 미국의 우산에서 벗어나 유럽(독일 ‧ 프랑스) 지향적인 외교를 펼치게 되었다.

이러한 스페인의 대전환에 자극을 받은 폴란드 역시 지금까지의 ‘친미-反독일 ‧ 프랑스 외교’를 중단하고 스페인처럼 ‘탈미(脫美)-親유럽(親 독일 ‧ 프랑스)’으로 돌아서려고 하며, 그 징표가 ‘이라크 주둔 폴란드 군의 철수’카드이다.

그러면 한국은 어떠한가? 형님 나라 미국이 종용하니까 어쩔 수 없이 파병하는 꼴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스페인처럼 정색을 하며 철군하겠다는 근성도, 폴란드처럼 배짱을 내밀며 미국을 굽실거리게 만드는 외교술도 없이 미국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뿐이다. 이런 호구는 전 세계에서 없을 것이다.

2. 탈미 현상

탈미를 요청하는 정세가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감행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에 앞서 민초들이 ‘탈미’를 선언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두 여중생(효순 ‧ 미선 양)의 사망 이후 들불처럼 번진 탈미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두 여중생의 사망과 탈미 현상


두 여학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사망했다. 그런데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의하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니, 그 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그것을 ‘양키 고 홈’으로 치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한국을 비롯, 세계 12개국 20개 도시에서 여중생 추모 1주기 행사가 엄숙하고 경건하게 거행됐다. 어디에서도 ‘양키 고 홈’을 외치며 불상사를 야기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우리 국민은 이제 미국과 평등한 관계, 즉 서로를 존중하는 대등한 관계를 원하고 있다. 최근 강만길 상지대 총장이 ‘탈미’(脫美)라는 용어로 이런 정서를 대변하기도 했다. 이 단어는 오늘날 우리 국민 대다수의 대미(對美)정서를 표현한 말 가운데 가장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부적절한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미국의 시각이 어떠하든 우리 사회의 ‘탈미’ 경향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주3)

2) 강만길 총장의 탈미 현상 진단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2004년 4월 2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바람직한 한미관계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특수관계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관계가 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의 현실인식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6.25 전쟁이후) 그동안 한미동맹이 반세기 가량 유지돼 왔어요. 그러나 대등한 입장에서의 동맹이 아니었죠. 수평관계가 아닌 수직관계였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과거 한미동맹으로는 우리가 지향하는 남북 평화통일을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과거 한미동맹으로 통일을 한다면 북한 지역까지도 미국과의 특수관계로 들어가기 때문이죠. 그 경우 중국 ‧ 러시아가 용인하겠습니까?”
이런 인식 아래 그는 옳은 의미의 한반도 평화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한미관계가 우선 정상적인 국제관계로 바뀌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2002년 말 전국을 달구었던 의정부 여중생 추모 촛불집회는 강 총장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는 촛불시위는 여태의 비정상적인 한미관계를 정상관계로 가져가는 운동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일각에서 반미(反美)운동이 아니었느냐는 의견을 내놓지만 엄밀히 얘기한다면 탈미(脫美)운동이라고 해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주4)

3) 탈미의식의 보편화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를 통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에 57.5%가 반대입장을 밝혔고, 찬성은 41%로 조사됐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주한미군 감축에 따른 안보불안 유무에 대해서도 52.6%가 ‘불안하지 않다’고 답한 반면 ‘불안하다’는 47.2%였다.
미군주둔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서는 ‘감축’(38.5%) 또는 ‘철수’(9.7%) 주장이 ‘증강’(3.2%) 또는 ‘현 수준유지’(47.7%)와 엇비슷하게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역시 2004년 2월 조사에서 61.4%가 ‘상당기간’ 또는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답한 것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조사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사무처가 폴에버에 의뢰해 2004년 5월 19일부터 22일까지 대학생 1천270명을 상대로 실시한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변국의 한반도 통일 우호도 평가에서는 가장 우호적인 국가로 중국(38.3%)을 꼽았고 미국(28.4%), 러시아(25.8%), 일본(7.4%)이 뒤를 이었다.
역으로 통일에 가장 적대적인 국가를 묻는 설문에는 응답자의 49.1%가 미국을 꼽았고 다음으로 일본(35.7%), 중국(10.3%), 러시아(5%) 순이었다. 한미관계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87.1%가 불평등하다고 답했다. 민주평통의 이번 조사는 대학생 모집단의 성, 지역, 학제를 고려해 표본집단을 추출,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2.8%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6·15 정상회담,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과 반미 촛불시위 등을 겪으며 사회 인식이 크게 변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대미 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괄목할 만하다. 십여년 전만 해도 미국을 '제일의 우방'이요 '우리와 제일 친한 나라'로 꼽던 친미의식은 2002년 풀뿌리까지 타오른 촛불의 물결을 타고 '반미'로, 이제 주한미군을 감축해도 안보불안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탈미' 의식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주5)

3. 탈미의 범주

1) 탈식민주의(decolonialism)로서의 탈미(de-USA/de-America)

정정호 교수는 ‘탈식민주의로서의 탈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식민주의를 극복하고 단절한다는 의미에서 ‘탈’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삼고 있는 목표를 지칭한다는 면에서 바람직하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안이함과 단순함은 곧 탈식민하려는 우리를 배반할 것이다. 식민주의를 반대한다는 것(anti-colonialism)은 구호로서는 쉬운 일이나 벗어난다는 것(decolonization)은 얼마나 어렵고도 복잡한 과정인가?

식민주의를 포월(匍越)하기 위한 ‘탈’식민이론의 수립을 위해 우리는 근대론, 탈근대론, 생태론을 동시에 접합시켜야 한다. 식민이론의 토대로서의 근대(화)를 ‘탈’하고 근대라는 제국주의의 생태학적 정복에 대한 대안으로 생태론이 개입되는 복합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근대(성), ‘탈’근대, 생태론의 세 개 고리가 동시에 논의되어야 일방적인 근대화와 서구화에 맞서는 ‘탈’식민 방략이 효과적으로 전개될 것이다.(주6)

김동춘 교수는 ‘한국 사회과학에서의 탈식민의 과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다국적 기업은 과거의 제국주의의 총과 칼을 대신하는 새로운 점령군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나이키(Nike)와 맥도날드(Macdonald)의 공략, ‘디지털 혁명’ 인터넷의 담론에 노출되고 있는 세계 각 지역의 젊은이들과 주민들은 이제 새로운 형태의 식민화의 조건에 놓였다.
우리는 식민화의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것은 정보와 문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나 그것이 군사력 대신 자본의 논리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부드러운 식민주의’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초기적 미국화-세계화와 맞물린 미국화가 공존하는 세계의 거의 유일한 지역이다. 초기적 미국화가 해방 후 군사 정치적 종속 과정에서 발생한 미국화라면, 오늘의 미국화는 미국 자본주의의 전지구화로 인한 미국화이다. [전자의 희생양]이 매향리 주민이고 [후자의 경우] IMF 광풍으로 인한 실업자, 비정규직 군상, 디지털이라는 ‘神’에 의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이 모두 노예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생활세계의 식민화의 문제와 함께 보아야 문제의 성격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식민화라는 것은 곧 지식 권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지식 권력을 가능케하는 현실 정치 권력과 현실 경제권력이라는 점을 인식해야하고, 따라서 탈식민의 과제 역시 단순한 지적인 단절 혹은 주체화의 과정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조건지은 물질적인 조건, 정치적 지배구조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지배하는 앎도 아니고 지배 당하지도 않는 앎, 그것은 진정한 탈식민의 전략이며, 이 점에서 탈식민의 과제는 과거의 단순한 반식민(反植民)의 패러다임과는 차별적이다.(주7)

2) 탈미 자주 평화

한반도에서 탈미의 요체는 ‘자주평화’에 있다. ‘자주평화’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탈미의 문이 열릴 것이다. 무엇보다도 ‘탈미 자주평화의 사회구성체’ 형성을 가로막는 주한미군-미국에 대한 군사 ‧ 정치적 종속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자주평화에 관하여 앞에서 언급한 바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4. 탈미의 전략

1) 강정구 교수의 ‘탈미 동북아 경제 평화 협력체’

6․15 공동선언 가운데 통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1항의 자주와 2항의 통일방안에 초점을 맞추어 공동선언 이행의 현주소를 평가하고, 이행을 위한 과제를 제시하고,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공동선언의 민족사적 의의를 논하고, 공동선언 1항인 민족자주 이행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공동선언 자주이행의 합의와는 정반대로 한미군사동맹이 기존의 예속 ․ 방어 동맹에서 예속심화 침략동맹으로 변질되는 역사의 퇴행을 점검하고, 반자주적인 반역의 길이 아닌 역사 순응의 행로인 한미관계의 탈군사 동맹화와 우호협력 관계로의 변환을 촉구한다. 이에는 주한미군의 전면철군과 탈미 동북아 경제 평화 협력체의 태동을 포함한다.
여중생 압살사건을 계기로 반미 촛불시위라는 주권 되찾기가 활발히 전개되고, 미국에 비판적이고 대등한 한미관계를 역설해 왔던 노무현이 집권 여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되는 등의 새로운 움직임이 시민사회 수준에서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들 남북한과 동북아에서 동시에 일어난 큰 흐름은 남북한 개별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 러시아, 중국 등과 합주곡을 울린 결과였고, 동북아라는 큰 지각의 총체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으며, 앞으로 미국의 일방주의가 지배하는 동북아에서 벗어나 탈미의 동북아시아 경제평화 협력체제의 서막일 수 있었다.(주8)

2003년 7월 26일 연세대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포럼}에서 ‘전쟁위기의 연속인 정전체제를 넘어 평화보장체제로’라는 주제로 발표한 강정구 교수는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의 강화를 통한 대중국 포위망 구축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동북아 군사패권전략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미 동북아협력체 형성을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협력체는 시베리아개발 중심의 경제협력체를 통해 동북아 5개국의 공통이익을 진전시키면서 이를 바탕으로 안보협력체를 추구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면서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주9)

2) 김승국의 ‘탈미 동아시아 연합’

동아시아 각국의 대내외 정책이 평화지향적으로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을 모색하는 가운데 아시아의 평화공동체를 지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개의 구도 즉 아시아의 ‘탈미 정치연합’, ‘탈미 다자간 안보 틀’ ‘탈미 경제협력 틀’이 3위1체를 이루며 ‘아시아의 반미(反美) 민중연대’와 결합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아시아의 ‘탈미 정치연합’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현재의 ASEAN(동남 아시아 국가연합)+3(한국 ‧ 일본 ‧ 중국)의 기능을 ‘탈미(脫美)’쪽으로 견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02년에 ASEM 사상 처음으로 한 ‧ 일 정상이 미국에게 ‘북한과의 전쟁’을 자제하도록 요청한 기백으로 ASEAN+3 정상회담에 임하면 ‘탈미’의 기운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ASEAN에 기반한 ARF(ASEAN 지역 포럼)에서 ‘탈미 다자간 안보 틀’을 모색하길 바란다. ARF는 현재 아시아에서 국가간의 공동안보를 논의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이므로, 우선 이런 기구를 이용하여 아시아인들끼리 벌이는 각종 분쟁(영토 분쟁 포함)을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ASEAN, ARF, ASEM에는 미국이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입김에서 벗어난 위치에서 ‘탈미 정치연합’을 내올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탈미 경제협력 틀’인데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아시아의 시장을 휩쓸고 있는 마당에 이런 틀을 내오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시아의 자원 ‧ 자본을 아시아인이 공동사용하는 취지의 아시아 경제공동체(EU의 아시아판)를 지향한다면 어려울 일도 아니다. EU(유럽 연합)가 1953년의 유럽 석탄 ‧ 철강 공동체부터 비롯되었 듯이 아시아의 공동자산인 지하자원 ‧ ‘철(鐵)의 실크로드’를 아시아인이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연습을 해볼 필요가 있다. ‘철의 실크로드’에 아시아인의 공동자산인 지하자원을 실어 나르는 다자간 협정을 맺음으로써 미국 자본 없이도 아시아의 부(富)를 창출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는 게 급선무이다.

위에서 아시아의 평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국가 차원의 패러다임 전환을 거론했는데, ‘아시아 민중 연대’와 결합되지 않고는 결코 ‘아시아 연합체’를 이룰 수 없다.

아시아에 일반화된 ‘반미의 민중 정서’를 ‘탈미 정치+안보+경제 연합’과 어떻게 결합시켜내느냐가 ‘아시아 연합’의 전략적 과제이다. 이런 전략적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아시아 각국의 국가권력과 NGO의 전략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아시아의 평화공동체를 내오기 위한 세 방향의 대안(Three Track)을 제시한다. 이 Three Track은, 앞에서 거론한 아시아 전체의 ‘탈미 정치+안보+경제 연합’의 동아시아판(版)이다. 동아시아에서 ‘탈미의 정치’을 연습해야할 곳은 한국과 일본이다. 일본은 고이즈미 내각이 북 ‧ 일 수교를 통해 나름대로 탈미의 정치를 연습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인데 ‘예수 찬미(讚美)하듯 미국을 찬미(讚美)하는’ 정치권 및 지배세력의 의식개혁 없이 ‘탈미’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한국의 지배세력이 ‘탈미’를 꿈 속에서도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계 자본이 한국시장을 석권하고 있으며 한국의 안보가 미국의 손아귀 안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안보’를 하나의 묶음으로(one package)로 엮어 ‘탈미’의 기운을 높일 수 있는 ‘탈미 정치권’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허사이다.

그럼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위한 ‘경제+안보 틀(정치가 이를 뒷받침)’ 은 어떻게 형성해야하나? 여기에서 ‘탈미를 위한 물리력(자본)’을 생산해낼 수 있는 시장(市場)이 있는지를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그런 시장이 없다면 만들어낼 수 있는지,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어떻게 그런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지를 검증해야한다.

검증을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과제의 유기적 결합이 가능한지를 따져보고자 한다; ① 동북아 자유무역지대 설립 ②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보장하는 동북아 다자간 안보 틀 ③ 위의 두 과제를 뒷받침한 동북아 민중연대.

맨 먼저 ‘아시아를 석권하고 있는 미국계 신자유주의 자본을 견제할 장치가 있는지’를 검증해보자. 민중경제의 활성화로 미국계 신자유주의 자본을 배제하는 것은 이상적인 희망사항으로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의 국가단위로 묶여 있는 자원 ‧ 자본을 공동사용하는 ‘동북아 자유무역 지대’의 설립이 바람직하다. 동북아 자유무역 지대는 EU의 모델을 따르는 게 좋다고 본다. 자칫 북미자유무역 협정(NAFTA)을 모방하면 미국의 신자유주의 우산에 다시 편입될 우려가 있다. '동북아 자유무역 지대'가 제2의 NAFTA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미국 배제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어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위한 안보 틀이 가능한지를 검증해본다.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위한 안보 틀로서 시급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보장하는 다국간 공동(협동)안보 기구(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이런 과업은 남북한의 화해가 미국의 입김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가운데 자리 잡으면서, 주변 국가들(러시아 ‧ 중국 ‧ 일본 ‧ 미국)이 ‘한반도의 경무장(輕武裝) 영세중립’을 교차승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교차승인의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주한미군의 상당부분이 철수되어야하며 동아시아 비핵지대화를 위한 실제적인 움직임이 있어야한다. 동북아 비핵지대화 구상은 비(非)군사적 수단에 의한 협력안보 개념인데, 이런 개념이 이상적이지 않은 ‘현실 가능한 경지’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비(非)군사적 수단에 의한 협력안보’의 짝짓기로서 ‘인간안보(시민 안보, 민중 안보)의 개념을 도입한 동아시아 안보 틀’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한다. 여기에서 동아시아의 민중세력이 개입할 계기가 발생한다. NGO 주도의 ‘동아시아 민중연대’ 없이 인간안보 개념에 입각한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건설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위의 논의를 다시 정리하면, ‘①+②+③의 유기적 결합’에 의해 ‘동아시아의 평화공동체 형성’이란 숙제를 풀 수 있다고 본다. ‘①+②+③의 유기적 결합’은 앞에서 말한 ‘탈미 정치+안보+경제 연합’이란 Three Track을 이루어내기 위한 선결과제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Three Track 자체가 미국의 아시아 지배구도를 역행하므로 ‘①+②+③의 유기적 결합’은 미국과의 충돌을 마다하지 않는 ‘고난의 행군’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①은 미국계 신자유주의 자본과의 마찰을 예고하고 있으며, ②에서 펜타곤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며, ③에 미 ‧ 일 ‧ 한의 전쟁지향적인 냉전 ‧ 수구 세력과의 대첩(大捷)이 내정되어 있다. 이러한 마찰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면 ‘탈미를 지향하는 아시아의 유교 문명’과 ‘제국 미국의 문명’과의 충돌이다.

이러한 충돌은 아시아 평화공동체의 장래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충돌을, 헌팅턴(Huntington)의 『문명 충돌』에서 말하듯이 ‘미국의 국익을 위해 유교 문명권 특히 중국을 가상적으로 삼는’ 방향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헌팅턴 논리의 맹점은, 제국 미국을 이룩하기 위해 미국 문명에 도전할 여지가 있는 가상적의 싹을 미리 도려내야한다는 패권주의에 있다. 부시 정권은 헌팅턴의 논리에 따라 미국의 가상적들을 ‘zero sum game'으로 초토화하기 위한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최근 동아시아의 ‘탈미’ 움직임은, 미국과 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zero sum game'을 벌이자는 게 아니다. 동아시아 유교 문명이 탈미를 지향하지만, ‘win-win game'을 통해 두 문명의 공존을 도모하면서 미국도 잘 살고 동아시아도 잘 사는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동아시아 유교 문명과 미국 문명의 공존 아래에서 동아시아의 평화공동체를 이룩하려면 동아시아인과 미국인의 정신적인 유대가 긴요하다. 이를 위한 민간차원의 연대가 ‘국경을 초월하고 대륙을 넘어’ 이룩되어야한다. 이런 정신적인 연대를 하기에 앞서서 미국인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 그 중에서도 시급한 것은 ‘미국 행정부가 동아시아의 정세에 개입하는 버릇’을 미국인 스스로 교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동아시아의 정세에 개입하는 선봉장인 미국의 ‘軍 ‧ 産 ‧ 學 ‧ 政 ‧ 言 ‧ 宗 복합체’를 미국 국민의 여론으로 누르지 못하면 ‘아시아 평화공동체’는 헛된 꿈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쟁지향적인 미국의 ‘軍 ‧ 産 ‧ 學 ‧ 政 ‧ 言 ‧ 宗 복합체’를 지양하여 미국 안에 평화지향적인 ‘軍 ‧ 産 ‧ 學 ‧ 政 ‧ 言 ‧ 宗 복합체’를 형성하는 게 미국도 잘 살고 동아시아도 잘 사는 유일한 길이다. 미국의 ‘軍 ‧ 産 ‧ 學 ‧ 政 ‧ 言 ‧ 宗 복합체’의 군기(軍紀)를 빼고 여기에 평화의 바람(平和風)을 불어넣는 거대한 작업을 미국인과 동아시아인이 손잡고 하지 않는 한, 동아시아 유교 문명과 미국 문명의 평화공존은 불가능하다.

전쟁지향적인 미국의 ‘軍 ‧ 産 ‧ 學 ‧ 政 ‧ 言 ‧ 宗 복합체’를 평화지향적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논리적으로 되기보다는 ‘전쟁애호 세력과 평화애호 세력간의 힘겨루기’로 매듭될 가능성이 많으므로, 구체적인 방안을 미리 거론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작업이 아시아 ‧ 태평양의 평화를 위해 중차대한 사안이므로 문제를 해결하는 몇 가지 원칙만 거론하고자 한다.

첫째, 미국의 ‘軍 ‧ 産 ‧ 學 ‧ 政 ‧ 言 ‧ 宗 복합체’는 부시 정권의 전쟁정책에 대한 방패막이 역할을 중단해야한다. 전쟁의 방조자인 미국 ‘軍 ‧ 産 ‧ 學 ‧ 政 ‧ 言 ‧ 宗 복합체’의 역할 변경, 위상 재정립이 아시아 ‧ 태평양의 평화를 만들기(peacemaking)를 위한 제1의 원칙이다.

둘째, 미국의 ‘軍 ‧ 産 ‧ 學 ‧ 政 ‧ 言 ‧ 宗 복합체’ 와 관련된 자본이 군수산업과 연관되어 아시아 곳곳에서 분쟁을 일으키려고 준동하는 움직임을 차단해야한다. 미국의 ‘軍 ‧ 産 ‧ 學 ‧ 政 ‧ 言 ‧ 宗 복합체’에 의한 신냉전 바람은 ‘탈미 동아시아 연합체 형성의 기류’에 대한 역풍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이를 ‘동아시아의 탈미 정치+안보+경제 연합체가 낳을 평화의 힘(peace power)'으로 눕히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미국의 ‘軍 ‧ 産 ‧ 學 ‧ 政 ‧ 言 ‧ 宗 복합체’ 와 관련된 군수자본이 생산하는 무기는 동아시아 민중의 목숨을 노리는 ‘죽임의 무기’이다. 미국 정부는 전통적으로 ‘아시아 지역의 분할 ‧ 통치 지배 전략’을 수행한 결과 아시아 지역에 분쟁이 끊일 날이 없었다. 특히 동아시아는 세계 최대의 전쟁 지뢰밭이며 이 지뢰밭의 한가운데에 한반도의 분단선이 그어져 있다. 그런데 미국의 ‘軍 ‧ 産 ‧ 學 ‧ 政 ‧ 言 ‧ 宗 복합체’ 는, 이러한 동아시아의 화약고를 불태울 전쟁의 불쏘시개를 친미국가들(한국 ‧ 대만)에 제공하면서 전쟁을 독려하고 있다. 한국에 제공된 미제(美製) 최첨단 무기는 동족인 북한 정권의 생명을 노리고 있으며, 생명을 내놓지 않으려는 북한 정권의 반발과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 여하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핵)전쟁 재발 가능성이 상존한다. 만일 지금이라도 미국의 ‘軍 ‧ 産 ‧ 學 ‧ 政 ‧ 言 ‧ 宗 복합체’가 북한을 겨냥한 최첨단 무기를 한국에 제공하기를 중단한다면 남 ‧ 북관계, 북 ‧ 미관계가 원활해져 동아시아에 평화의 훈풍이 불 것이다.

위의 원칙에 따라 ‘(동)아시아의 탈미 연합’을 위한 평화의 힘(peace power)을 창출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한반도가 (동)아시아에서 ‘평화의 회랑(peace corridor)’이 되어야한다. 평화의 회랑이 되기 위해 한반도를 관통하는 ‘철의 실크로드’에 미 ‧ 일의 자원 ‧ 자본을 실어 시베리아~유럽으로 나르는 연습을 통해 ‘아시아인에 의한 자원 공동체’를 형성해야한다. 이러한 자원공동체를 전쟁용이 아닌 평화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안전 보장 틀을 내오면서 ‘경제’와 ‘안보’가 넘나드는 '아시아판(版) EU'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탈미 (동)아시아 연합’은 미국을 배제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미국 문명과의 평화적인 공존을 통해 아시아도 평화롭게 잘 살고 미국도 잘 사는 게 최종 목표이다. 이 목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술적으로 아시아 각국이 ‘탈미(脫美)’하고 아시아의 민중이 ‘반미(反美)’ 할 수 있다. 아시아 국가의 ‘탈미’와 아시아 민중의 ‘반미’가 어우러져 ‘미국의 상대화(相對化)를 통한 평화의 힘’을 창출하고, 이에 미국 문명이 응수하여 전쟁(북한과의 전쟁 등)이 아닌 ‘평화’로 화답한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전쟁에 굶주린 미국의 지배계급이 불응한다면 아시아인과 미국인 모두에게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이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아시아 평화공동체’ 형성에 주력해야할 때이다.

5. 결론

앞으로 탈근대, 탈자본주의, 탈사회주의에 ‘탈미’를 추가하는 사회구성체 논쟁이 긴요하다.

(미국에 의해 남북한의 사회구성체가 관리 당하는) 한반도 분단체제를 탈피하는 ‘탈미의 행군’을 하지 않는 한,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 사회구성체의 성격변화는 기대난이다.

남북한 각 사회구성체가 평화 지향적-지속적으로 성격을 변환시키지 않으면, 필자가 제시한 평화 로드맵 제1단계의 대강이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남북한 각각 <지속 가능한 평화(sustainable peace)를 통한 사회구성체(남한의 경우 ‘탈미 자주형 사회구성체’)>를 창출해야 평화 로드맵의 제1단계가 완성될 것이다.

평화 로드맵 제1단계의 ‘지속 가능한 평화를 통한 탈미 자주 사회구성체’를 더욱 발전시켜, 평화국가 연합에 걸맞는 사회 구성체로 변환시켜야 통일의 대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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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1)『한겨레 신문』(2004.3.8); 박노자 교수의 기고문.
(주2)『디지털 성남 일보』(2004.11.11); 이건행 씨의 기고문.
(주3)『Press 25』(2003.6.14); 박병우 씨의 기고문.
(주4)『연합뉴스』(2004.4.29).
(주5)『민중의 소리』(2004.6.8).
(주6) 정정호「전지구화 시대의 ‘탈’식민 이론의 과제」『비평』3호(2000년 하반기) 요약.
(주7) 김동춘「한국 사회과학에서의 탈식민의 과제」『비평』3호(2000년 하반기) 요약.
(주8) 강정구「6.15 공동선언 1-2항 이행의 현주소」
(주9)『위즈맨』 (200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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