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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평화 (63)

童心說

기세춘 (기사입력: 2005/01/13 20:23)  

1. 童心이란 모든 기존 가치의 不在를 의미한다. 노자와 장자의 童心說은 기존의 모든 가치체계를 전면 부정하는 반문명적이며 혁명적 담론이다. 또한 동심설은 원시공산사회의 인간상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위에서 말한 “絶學과 無知”도 童心이 되는 방법을 말한 것이다. 즉 문명과 지배 이데올로기로 물들면 새로운 사회인 공산사회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태복음 18장/3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노자/55장. 元符):
含德之厚 比於赤子.
덕을 품어 돈후하면 간난 아기와 비슷하다.
蜂蠆虺蛇不螫 猛獸不攫. 주:蜂蠆(봉채)=벌. 虺蛇(훼사)=독사. 螫(석)=쏘다.
벌과 독사도 쏘지 않고, 맹수도 덤비지 않으며,
鷙鳥不不搏. 주:지조(鷙鳥): 猛禽類
사나운 새도 쪼지 않는다.
骨弱筋柔 而握固.
골이 약하고 근육이 부드러우나 손은 굳게 움켜쥔다.
未知牝牡之合
아직 암수의 교접을 모르지만,
而脧作 精之至也. 주: 脧(최)=남자 성기.
자지가 일어나고 정기가 지극하다.
終日號 而不嗄 주:嗄(사)=목이 쉴.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으니,
和之至也.
조화가 지극하기 때문이다.
知和曰常.
조화를 아는 것을 자연의 상도라 하고.
知常曰明.
상도를 아는 것을 현명하다 하며,
益生曰祥.
생명을 유익하게 하는 것을 상서롭다 한다.
心使氣曰强 주: 强=氣不和順也.
마음이 氣를 부리면 기가 화순치 않다고 하고,
物壯則老 謂之不道
사물이 강장하면 늙으므로 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니,
不道早已.
도가 아닌 것은 빨리 끝난다.

2. 노자의 동심론에 대해 莊子는 기존 문명에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를 “至人의 衛生之道” 즉 생명의 自主를 지키는 생명주의 표상으로 해설했고, 淮南子는 禮樂과 仁義를 부정하고 坐忘에 든 무위자연의 道人을 말한 것으로 읽었으며, 필자는 문명과 구체제를 거부하는 원시공산사회의 인간상을 말한 것으로 읽는다.
(莊子/庚桑楚): *노자/10장 헤석.
老子曰 衛生之經
노자께서 이르기를 “衛生”의 도란
能抱一乎 能勿失乎. 주:一=太極也.
능히 太一을 품고 잃지 않는 것이라 했다.
能無卜筮 而知吉凶乎.
능히 점을 치지 않고도 길흉을 아는 것이요,
能止乎 能已乎.
능히 머무를 수 있고 능히 그칠 수 있으며,
能舍諸人 而求諸己乎.
능히 남들을 사면(赦免)하고 자기에게서 구하며,
能翛然乎 能侗然乎 주: 翛然(소연)=融通自在之貌. 侗然(동연)=未成器之人. (통연)=誠慤也.
능히 융통 자재하고 덜 된 사람처럼 진실하며,
能兒子乎.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이다.
行不知所之
나아가되 갈 곳을 모르고
居不知所爲
머물되 처할 곳을 모르며
與物委蛇 而同其波 주: 委蛇(위사)=行可從迹也.
만물과 더불어 따라가며 그 물결에 함께 하는 것이니
是衛生之經已.
이것을 衛生의 道라 한다.

(莊子/庚桑楚):
而交樂乎天.
장자: 至人은 땅에서는 서로 먹여주고,
而交樂乎天.
하늘에서는 서로 즐겁게 하며,
不以人物利害相攖
사람과 사물과 利害로 서로 얽히지 않으며,
不相與爲怪
서로 더불어 괴이한 짓을 하지 않으며,
不相與爲謀
서로 더불어 꾀하지 않으며,
不相與爲事.
서로 더불어 사업을 하지 않으며,
翛然而往 侗然而來.
날개 치듯 갔다가 무심히 오나니
是謂衛生之經已.
이것을 일러 衛生의 도라고 한다.
曰 然則是至乎.
경상초: 정말 그렇게 되면 지극한 것입니까?
曰 未也. 吾固告汝曰
장자: 아직 아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能兒子乎.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회남자의 해석)
(淮南子/道應訓):
顔回謂仲尼曰 回忘禮樂矣.
안회: 저는 禮樂을 잊었습니다.
仲尼曰 可矣 猶未也.
공자: 잘했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異日復見曰 回忘仁義矣.
안회는 어느 날 또 말했다. 저는 仁義를 잊었습니다.
仲尼曰 可矣 猶未也.
공자: 참 잘했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異日復見曰 回坐忘矣. 주: 坐 =挫也, 自然之辭, 安然之貌.
안회는 또 어느 날 말했다. 저는 좌망에 이르렀습니다.
仲尼遽然曰 何謂坐忘.
공자: 놀란 듯 물었다. 坐忘(평안한 잊음)은 무엇인가?
顔回曰 隳支體 黜聰明
안회: 팔다리를 늘어뜨리고, 이목의 밝음을 떨쳐버리고,
離形去知
형체를 떠나 知를 버리고
洞於化通 是謂坐忘. 주: 洞於=洞以. 空洞(공동), 貫通(관통). 洞簫(퉁수)
마음을 비움으로써 자연의 조화에 통하는 것을 좌망이라 합니다.
仲尼曰 洞則無善矣
공자: 마음을 비우면 선악이 없고,
化則無常矣
자연과 조화로우면 상도가 없는 것이니
而夫子薦賢
그대는 현인의 경지에 들어간 것 같구나!
丘請從之後.
나도 그대의 뒤를 따르고 싶다.
故老子曰
그러므로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넋을 싣고 하나(太極=天理)를 품었으니 도를 떠나지 않으며,
專氣至柔 能如嬰兒乎.,
氣를 전일하게 하여 지극히 유약하니 능히 갓난아기와 같다고!

3. 그러나 왕필 등 반동적인 玄學자들은 이러한 저항적인 “童心說”을 지배자들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愚民說”로 왜곡한다. 그리고 이로써 종교화된 노자는 1000여년 동안 유가의 그늘에서 은둔철학으로 숨어있었다.
(老子/49章)(죽간본에는 없음)
聖人無常心 주: 常= 恒也. 典法也.
무위자연의 성인은 典法이 될 마음이 없고
*참고: 聖人=天地不仁 聖人不仁(老子/5장).
그러므로 공자의 聖人과 전혀 다르다.
(김경탁: 성인은 변하지 않는 고정된 마음이 없어)
(오강남: 성인에게 고정된 마음이 없습니다)
以百姓之心爲心.
백성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는다.
(김경탁: 백성의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삼는다)
(오강남: 백성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습니다)
聖人在天下 주: 在=生存也. 居也. 察也.
무위자연의 성인이 천하인민들과 더불어 살며
*예문: 父母在不遠游(論語/里仁). 在下位而不憂(周易/乾卦)
(김경탁: 성인이 천하에서는)
(노태준: 성인이 천하에 대한 태도는)
(오강남: 성인은 세상에 임할 때
歙歙焉 주: 歙(흡)=시비선악이 없는 마음.
시비선악이 없는 무심한 마음이 됨으로써
(김경탁: 무심한 모습이)
(노태준: 흠흠하여(마음에 집착하는 점이 없는 모양)
(오강남: 모든 것을 포용하고)
爲天下渾其心.
천하로 하여금 시비가 없는 혼돈의 마음을 갖도록 한다.
(김경탁: 천하를 위하여 그 마음을 혼합한다)
(노태준: 천하를 위하여 그 마음을 혼돈케 한다)
(오강남: 그의 마음에는 일체의 분별심이 없습니다)
百姓皆注其耳目
백성들은 모두가 그의 이목을 주시하며,
聖人皆孩之.
성인은 모두를 (문명에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만든다.
(김경탁: 성인은 그들을 어린이 같이 되게 한다)
(노태준: 성인은 이들을 모두 어린애처럼 無知無慾하게 한다)
(오강남: 성인은 그들을 모두 아이처럼 되게 합니다)

* 왕필의 해석:
潝潝(흡흡)을 無心 無所主로 주해한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백성들로 하여금 온화하고 욕심이 없게 하여((皆使和而無欲)
영아처럼 만든다(如嬰兒也)”는 해설은
공자의 克己와 같은 뜻이 된다. 이는 반동적 왜곡이다..

4. 이처럼 동심설은 지배자에 반항하지 말라는 우민 도덕론으로 거세된 지 1000여년이 지난 明代에 李贄의 童心說로 부활된다. 卓吾 李贄(1527-1602)는 본래 성은 林씨였으나 조부 대에 반란에 가담한 이후 성을 李씨로 바꾸었다. 그의 동심설은 기존의 모든 가치와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는 孔孟과 老佛의 권위를 무시하고 理學을 부정할 정도로 혁명적이었다. 결국 이단교리(敢倡亂道)와 혹세무민의 죄로 체포되어 옥중에서 자살했다. (졸저[성리학]/제3부제2절. 李贄의 <童心說> 참조)

(四庫全書/總目提要/권125/焦弱侯問答):
焦竤(초굉)은 李贄(이지)를 벗하여 그의 학풍(習氣)에 감염됨이 깊었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열렬한 禪의 신봉자(狂禪人)가 되었다.
이지가 공자를 비난함에
초굉은 楊子와 墨子을 숭배하고 맹자를 비난했다.
비록 천지가 넓다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李贄著/續焚書/권2/三敎歸儒說):
無怪其流弊 至於今日
부끄러움도 없는 도학의 못된 폐습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陽爲道學 陰爲富貴
陽으로는 도학을 하고, 陰으로는 부귀를 탐하니
被服儒雅 行若狗彘然也.
옷 입는 것은 단아한 유가의 모습이나 행실은 개돼지와 같다.

(李贄著/焚書/권3/童心說):
童心은 眞心이다.
만일 동심이 옳지 않다고 한다면 진심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동심이란 가식을 버린 순수한 마음이요 최초의 일념인 本心이다.

(續焚書/卷4/題孔子像於芝佛院):
사람들이 孔子를 大聖이라 하고
老子와 佛氏를 이단이라 하므로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참으로 대성과 이단을 아는 것이 아니라
아비와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익숙해진 것이다.
사부도 역시 참으로 대성과 이단을 아는 것이 아니라
공자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焚書/권3/童心說): * 다음 연암의 글과 일치한다.
대개 시초에 聞見이 이목을 타고 들어와서
內心의 주체가 되면 동심이 상실된다.
나아가 道理가 문견을 타고 들어와
內心의 주체가 되므로 童心이 상실된다.
이처럼 聞見과 道理를 마음으로 삼았다면
말하는 것은 모두 聞見과 道理의 말이며,
동심에서 저절로 나온 말이 아니다.
말은 비록 교묘하나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假人이 假言을 말하니,
일마다 假事요 문장도 假文이 아니겠는가?
대저 그 사람이 假이면 假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焚書/권3/童心說):
苟無童心常存
진실로 동심이 보존됨이 없다면
則道理不行 聞見不立.
도리도 행해지지 않고 聞見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詩何必古選
그러니 詩는 하필 古選이어야 하고,
文何必先秦.
文은 하필 先秦시대의 문이어야 하겠는가?
故吾因是 .
그러므로 나는 동심에 따라
而有感于童心者之自文也.
동심에서 느끼는 것이 저절로 文이 되나니
更說甚麽六經 更說甚麽語孟乎
어찌 다시 육경을 말하고 논어 맹자를 말할 것인가?

4. 이지의 동심설은 허균의 홍길동전과 박지원의 사상과 글쓰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연암의 제자인 이덕무가 쓴 <嬰處稿>의 嬰(영)은 영아를 뜻하고, 處(처)는 처녀를 뜻한다. 이처럼 연암의 동신론은 그의 제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다. 동심설을 이해하기위해 연암의 글을 몇 구절 소개한다.
(燕巖集/嬰處稿序):
雩祀壇之下 桃渚之衕 靑甍而廟
남산 서편 우사단 아래 도동 물가 골목길의 푸른 기와집 사당에는
貌之渥丹而鬚儼
시뻘건 얼굴에 수염이 뻗쳐 있는 조상이 있는데
然關公也.
갈데없는 관운장이다.
士女患瘧 納其牀下
남자나 여자나 학질을 앓을 때 좌상 밑에 들이밀어 놓으면
戄神褫魄 遁寒崇也.
당장 질겁하고 오한의 증세가 없어진다고 하여 숭앙된다.
孺子不嚴 瀆冒威尊
그렇지만 아이들은 무엄하게도 존엄한 상을 모독하며
爬瞳不瞬
그 눈망울을 굴려 보지만 껌벅거리지도 않고
觸鼻不睫
콧구멍을 쑤셔보지만 재채기도 하지 않는다.
塊然泥塑也.
그에게는 진흙으로 빚은 소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由是觀之
이로 볼 때
外舐水匏 全呑胡椒者
수박을 겉으로 핥고 호추를 통 체로 삼키는 무리와는
不可與語味也.
맛을 이야기 할 수 없고,
羨隣人之貂裘 借衣於盛夏者
이웃의 돈피가 부러워 여름에 빌려 입는 사람과는
不可與語時也.
시절을 이야기 할 수 없다.
假像衣冠
소상에 아무리 그럴듯하게 의관을 입혀놓아도
不足而欺 孺子之眞率矣.
어린아이들의 진솔함을 속이지는 못한다.

(燕巖集/綠天館集序):
倣古爲文
옛것을 모방하여 글을 쓴다면
如鏡之照形 可謂似也歟
거울에 비춘 형상과 같으면 고인과 근사하다고 할 것인가?
曰左右相反 惡得而似也.
좌우가 상반되니 어찌 같은 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如水之寫形 可謂似也歟
물에 비춘 형상과 같으면 근사하다고 할 것인가?
曰本末倒見 惡得而似也.
본말이 거꾸로 보일 것이니 어찌 같은 것을 이룰 수 있겠는가?
如影之隨形 可謂似也歟
그림자의 따르는 형상과 같이하면 근사하다고 할 것인가?
曰午陽則侏儒僬僥 주:侏儒=난쟁이. 僬僥=전설속의 난쟁이 나라.
한 낮에는 난쟁이였다가
斜日則龍伯防風 주: 防風=미나리과의 삼년초
석양에는 키다리가 될 터이니
惡得而似也.
어찌 같은 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如畵之描形 可謂似也歟
화가가 모사한 형상과 같으면 근사하다고 할 것인가?
曰行者不動 語者無聲 .
걸어 다니는 것은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것은 소리가 없으니
惡得而似也.
어찌 같다고 할 것인가?
曰然則終不可得而似歟
그렇다면 끝내 같게 할 수 없을까?
曰夫何求乎似也
대저 무엇 때문에 같아지기를 추구한단 말인가?
求似者非眞也
같아지기를 추구하는 것은 참이 아니다.

(燕巖集/綠天館集序):
天下之所謂相同者
연암: 천하에 이른바 서로 같은 것은
必稱酷肖.
반드시 너무 닮았다고 말하고,
難辨者亦曰逼眞.
분간하기 어려운 것은 역시 거의 진짜에 가깝다고 말한다.
夫語眞語肖之際
대저 이처럼 진짜라거나 닮았다고 말하는 경우는
假與異在其中矣.
그 말 속에 이미 가짜와 다른 것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燕巖集/嬰處稿序)
子佩曰 陋哉 懋官之爲詩也
자패라는 사람은 이덕무의 시를 비루하다고 말했다.
學古人而不見其似也.
즉 옛것을 배우긴 했을 터인데 옛 사람과 같은 점을 발견할 수 없고,
安野人之鄙鄙
야인의 비속한 것들을 달가워하고
樂時俗之瑣瑣
시시콜콜한 시속과 사물들을 즐겨 다루고 있으니
乃今之詩也 非古之詩也.
그의 시는 이 시대의 시일뿐 옛 시대의 시는 아니라는 것이다.
余聞而大喜
나는 이 말을 전해 듣고 크게 기뻐하며
曰 此可以觀.
'무관의 시는 볼만하겠구나' 생각했다.
由古視今 今誠鄙矣.
옛 사람이 요즘 사람을 보면 사실 비속할 것이다.
古人自視 未必自古.
그러나 고인 스스로 자기 시대를 보고 고대라고 말하지 않았을 터이고,
當時觀者 亦一今耳.
당시 사람에게 그 시대는 역시 금세였을 뿐이다.

(燕巖集/騷壇赤幟引):
苟得其理
만약 그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라면
則家人常談 猶烈學官
집안사람의 평상의 담론도 오히려 관학보다 열열하고,
而童謳里諺 亦屬爾雅矣.
아이들의 동요와 마을의 속담도 이아(사전)에 넣어야 한다.

(湛軒書/與篠飮書):
夫良知者 孟子之說也.
홍대용: “良知”란 맹자의 학설이다.
苟其致知 大人之心 乃赤子之心也.
진실로 양지를 이룬다면 대인의 마음도 어린아이의 마음이다.

(이덕무: 嬰處稿自序):
藁曰嬰處
내 원고를 영처(嬰處)라 하였으니
藁之人其嬰處乎.
글 쓴 사람이 정말 어린이요 처녀인가?
夫嬰兒之娛弄 藹然天也. 참고: 藹然=若夏之靜雲
어린아이가 씩씩하게 노는 것은 있는 그대로 천진이요,
處女之羞藏 純然眞也.
처녀가 부끄러워 감추는 것은 순진한 마음이다.
玆豈勉强而爲之哉.
어찌 억지로 그렇게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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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기대승 선생의 후손으로 1937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남. 전주사범학교 졸업. 전남대 법과 대학 입학. 4.19 혁명 적극 가담. {동학혁명 연구회} 창립.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창립.
저서로는 『천하에 남이란 없다-묵자』『우리는 왜 묵자인가』『예수와 묵자』『신세대를 위한 동양사상 새로 읽기』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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