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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 묵자와 평화 (45)

敬神 遠神

기세춘 (기사입력: 2005/01/13 20:29)  

1.공자는 천제와 조상신의 제사 등 당시 가장 중대한 통치행위인 天祭에 대해 어떤 정책적 대안을 가지고 있었는가?
공자는 禹임금에 대해 말하면서 그는 鬼神에게 효를 다했다고 찬양한다. 그러나 번지가 지혜를 물었을 때 공자는 “백성의 도리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敬神而遠之)”고 말한다(論語/顔淵篇). 그런데 옹야편(雍也篇)에서는 번지가 지혜를 묻자 “知人”이라고 대답한다. 즉 “敬神”보다 “知人”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공자의 종교관이었던 것이다. [논어]에서 언급한 敬神 遠神의 테제에 대해서는 [예기]에서 그 이론적 근거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遠神”은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神을 공경하되 인간을 우선하라는 인본주의를 말한 것이다.
둘째는 神을 공경하되 제후와 사대부는 물론이고 민중은 함부로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공자에게 天은 천자에게 天命을 내려주는 최고의 신이었다. 묵자의 경우 天은 民衆의 수호신이었지만 공자에게 天은 天子의 수호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제는 민중은 물론 제후까지도 제사를 지낼 수도 없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공자의 人本주의는 지배계급들 상호간의 문제로 한정된다는 점에서 아직도 봉건적이다.
(論語/泰伯22):
子曰 禹 吾無間然矣
우 임금은 나무랄 데 없구나.
菲飮食 而致孝乎鬼神.
식사는 간소했으나 鬼神에게는 孝를 다하고,
惡衣服 而致美乎黻冕.
의복은 검소했으나 예복은 이름다웠고,
卑宮室 而盡力乎溝洫.
궁실은 낮았으나 水路 건설에 진력했습니다.

(論語/雍也20)
樊遲問知.
번지가 지혜에 대해 물었다.
子曰 務民之義
공자왈, 백성의 의무를 다하고,
敬鬼神而遠之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면
可謂知矣.
가히 지혜롭다고 할 것이다.

(論語/顔淵22)
樊遲問仁. 子曰 愛人.
번지가 仁을 물었다.
공자왈,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問知. 子曰 知人.
번지가 지혜에 대해 물었다.
공자올, 사람을 아는 것이다.

2. 공자는 祭政의 전문가였다. 그는 夏禮, 殷禮, 周禮를 깊이 연구했고 그 장단점을 면밀히 고찰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자는 춘추시대의 사상적 혼돈 속에서 先王들의 天人感應說과 당시에 새로 일어나는 유물론적 경향과 인본주의적 주장들을 종합하여 “敬神而遠之”로 표현되는 인본주의적 祭政論을 史書로 산정(刪定)하여 드러내고 禮學으로 정립했던 것이다.
(論語/八佾.9):
子曰 夏禮 吾能言之
공자: 하나라 禮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수는 있으나
杞不足徵也. 주: 徵(징)=證也.
하를 계승한 기나라는 밝히는데 부족하다.
殷禮 吾能言之
은나라 예는 내가 말할 수는 있으나
宋不足徵也.
은을 계승한 송나라도 밝히는데 부족하다.
文獻不足故也.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足則吾能徵之矣
문헌만 충분하다면 내가 밝혀 보여줄 수 있다.

(禮記/表記):
子曰 夏道
공자왈, 夏나라의 도는
尊命事鬼
천명을 존중하고 귀신을 섬겼으니,
敬神而遠之
신을 공경하되 멀리했고,
近人而忠焉.
사람을 가까이 하고 충실했다.
先祿而後威
그러나 녹을 앞세우고 위엄을 뒤로했고,
先賞而後罰
상을 앞세우고 벌을 뒤로했다.
親而不尊.
이처럼 백성을 사랑했으나 신을 높일 줄 몰랐으므로,
其民之敝 惷而愚 주: 敝=蔽 弊也. 政敎가 쇠하여 蔽塞됨.
백성들이 교화되지 못하여 어리석고 준동하며,
喬而野 朴而不文.
교만하고 조야하여 소박할 뿐 문체가 없었다.

(禮記/表記):
殷人尊神
殷나라 지배자들은 신을 높이기만 하여,
率民以事神
백성을 통솔하여 신을 섬기도록 했다.
先鬼而後禮
귀신을 앞세우고 예를 뒤로했고,
先罰而後賞
벌을 앞세우고 상을 뒤로하였다.
尊而不親.
이처럼 신을 높일 줄만 알고 백성을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其民之敝 蕩而不靜
백성들이 교화되지 못하여 방탕해도 안정시킬 수 없었고
勝而無恥.
형벌을 면하려 할 뿐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禮記/表記) :
周人
周나라 지배자들은
尊禮尙施事鬼
예를 높이고, 베푸는 것을 숭상하며 귀신을 섬겼다.
敬神而遠之
신을 공경하되 멀리했으며,
近人而忠焉.
사람을 가까이하고 충실했다.
其賞罰用爵列
그러나 상벌로 작위와 서열을 정하고,
親而不尊.
민을 사랑했지만 신을 존중하지 않았으므로
其民之敝 利而巧. 주: 文=飾. 巧=僞.
백성들이 교화되지 못하여 利를 쫓고 거짓되며,
文而不慚
꾸미는 것만 알고 부끄러운 줄 몰랐으며
賊而蔽.
서로 해치고 미개했다.

(禮記/表記):
子曰 夏道未瀆辭 주: 瀆= 溝→注滄→通也.
하나라 도는 문채를 장려하지 않았으므로
不求備. 주: 備=具. 愼. 無所不順者.
도에 순종을 요구하지 않고
不大望於民
백성에게 크게 요구하지 않았으므로
民未厭其親.
백성들이 친애함을 싫어하지 않았다.
殷人未瀆禮
은나라는 禮를 통창하지 않으면서
而求備於民.
백성들에게 도에 순종하기를 요구했다.
周人 强民未瀆神
주나라는 백성들에게 힘써 神을 통창하지 않았으므로
而賞爵刑罰窮矣.
상작과 형벌이 궁해진 것이다.

그의 결론은 하․은․주 3대의 정치는 尊命→尊神→尊禮로 변천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殷의 “神 中心的 禮”는 神에 치우쳐 仁愛가 부족했으며, 周의 “人 中心的 禮”는 禮에 치우쳐 神을 통창하지 못한 폐단이 있었다고 진단했다.
공자는 그 대안으로 神을 공경하되 民을 우선하며, 神과 禮와 文을 조화롭게 창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논어]와 [예기]는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敬神而遠之”라고 말한 것이다.
공자에게 天은 천자에게 天命을 내려주는 최고의 신이었다. 天은 民의 神이 아니라 天子의 수호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敬神”은 天子主權인 天命에 순종할 뿐 다른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뜻을 포함한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에게 3가지 두려운 것이 있으니 그것은 天命과 大人과 聖人의 말씀”이라고 말했다.
공자의 祭政의 요점은 천자만이 “近神”해야 하며, 제후와 사대부는 물론이고 민중은 “遠神”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遠神”은 祭政을 함부로 논하지 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遠神”은 “神不可知論”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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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기대승 선생의 후손으로 1937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남. 전주사범학교 졸업. 전남대 법과 대학 입학. 4.19 혁명 적극 가담. {동학혁명 연구회} 창립.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창립.
저서로는 『천하에 남이란 없다-묵자』『우리는 왜 묵자인가』『예수와 묵자』『신세대를 위한 동양사상 새로 읽기』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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