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광장
[KOREAN] | [ ENGLISH ] | 로그인  l  회원가입
   전체기사    l    평화 TV    l   문명 전환   l   평화 통일   l   평화 도시   l   평화 마을   l   사업   l
  2019.11.18(월)  
 지난호 보기

상세검색
평화도시 만들기
평화마을 만들기
평화 기행
게시판 BOARD
문명전환 연구소 게시판
'평화 도시' 게시판
'평화 마을' 게시판
공지 사항
영상 자료실
일반 자료
섹션목록
연재목록
특집목록
토론방
PEACEMAKING
신문소개
후원하기
이메일구독신청
기사제보
구(舊) 평화만들기
180호   (2005/05/01)
평화 만들기 180호
180호 기사목록  
☞ 180호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 메일전송 기사 출력
표명렬의 군 개혁 (10)

사관학교 훈육개혁 ④---자존심을 뭉개던 훈육

표명렬 기자 (기사입력: 2005/04/27 00:48)  

필자가 사관학교 재학시절 “이것은 아닌데!--”라며 느꼈던 몇 가지 경험을 소개함으로서 생도 훈육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참고로 삼고자 한다. 물론 40여 년 전의 이야기니 지금은 엄청나게 변하고 발전하여 딱 들어맞는 사례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 본질 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음을 단언할 수 있다.

잔치 상에 올릴 돼지

사관생도가 되어 민간인적인 사고를 씻어내고 군인으로 만드는 용광로와 같은 의미의 훈련 과정인 기초군사훈련 때 상급생들로부터 들어 각인된 낱말은 평생 지워지지 않고 나의 삶에 영향 미쳐왔다. 그 중에는 지금 생각해봐도 기분이 좋지 않은 몇 마디가 있다.

햇병아리처럼 동서남북 분간 못하고 이리저리 몰리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너희들은 장차 나라가 필요로 할 때에 언제든지 잡아서 잔칫상에 올리기 위해 살찌워 기르고 있는 돼지 새끼들이다”

얼굴은 시커멓고 부리부리한 눈에 콧구멍이 벌름벌름 마치 돼지 에비처럼 보이던 기초군사 훈련 중대장 생도의 허스키 목소리는 늘 우리를 섬뜩하게 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몰아쳐 멍청해진 상태에서도 “왜 하필이면 돼지 새끼들 이란 말인가! 그래, 우리가 장차 ‘만족한 돼지’처럼 배만 부르게 해주면 아무 고민도 없이 살만 퉁퉁 찌어 살아 갈 것 같은 그런 치사하고 소갈머리 없는 존재들로 보였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고향 마을의 명절 때나 뉘 집의 잔칫날이 있을 때면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돼지를 잡았다. 새끼줄로 네 발을 묶을 땐 온몸을 퍼덕거리며 동리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식칼에 목이 찔린 채 발버둥치다가 결국은 체념한 듯 눈만 크게 뜨고, 허파에서 바람 새는 소리를 “푸! 푸!--” 내다가 마침내 조용해지면 절구통에 펄펄 끊는 뜨거운 물을 붓고 숨 끊어진 돼지를 밀어 넣어 면도하듯 털이 뽑히면서 웃고 있는 듯 편안해지던 돼지의 최후의 모습이 눈에 선 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신세라는 말인가?

기왕 돼지 이야기를 할 바에는 “훗날 조국이 부를 때 마지막 살덩이 한 점, 피 한 방울까지 송두리째 민족의 제단 앞에 바치기 위해서 귀관들은 여기 모인 것이다. 잔칫날의 돼지처럼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완전한 희생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 이런 격려와 기대의 말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의 말투나 표정 어느 부분에서도 그런 의미의 감은 전혀 잡히지 않았다. 그저 우리들의 자존심을 짓밟아 뭉개고 겁주면서 민족이니 역사니 복잡한 생각 개똥 철학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이었다. 옛 일본 군대에서 자존심을 깡그리 뭉개버리기고 멍청히 따르게만 하기 위해서 신병들에게 하던 말 그대로였을 것이다.

나의 지나친 자격지심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너희들을 이렇게 완전 공짜로 먹여주고 입혀 주고 재워주면서 학사 학위까지 취득할 수 있도록 공부시켜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잘 알아서 처신하라며 자존심을 건드는 일종의 엄포로만 들렸었다.

그 잔칫날이 나에게는 너무 빨리 닥쳐왔다. 건봉산 앞 험준한 비무장 지대의 중대장 직책을 맡아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근무하고 있던 1965년 여름 갑자기 전출 명령을 받았다. 전투부대 제1진으로 월남 파병이 결정되었으니 즉시 홍천의 맹호 부대로 집결하라는 것이다.

당시 항간에는 전투요원으로 가면 살아서 돌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실재 미국에서는 ‘월남 땅은 65년도 졸업 웨스트 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 출신 초급 장교들의 무덤’이라고 할 정도로 희생이 컸었다.

‘거진’ ‘간성’을 지나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리며 이제 다시는 영원히 이 보다 더 동쪽으로는 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산과 들 나무와 바윗돌 풀 포기 하나에 이르기까지 나와의 영원한 이별을 슬프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지난 세월 내 인생의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나타났다 없어지고 스치며 지나갔다.

그렇지만 사관학교 4년의 훈육은 전쟁터로 가는 나에게 정신적인 어떠한 경구도 들려주지 않았다. 목이 잘린 채 혀를 내밀고 있는 제사상의 돼지 생각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어머님께서 냉전의 소용돌이에서 풍비박산 허물어져 가는 집안을 추스르기 위해 애쓰시면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이다”고 가슴으로 들려주시던 말씀이 큰 힘을 주었다.

구 일본식 군대문화의 바탕은 그대로 두고 미국식 제도를 꿰어 맞춘 이래 본격적인 검토 없이 이어온 사관학교 훈육제도였다. 21세기 ‘인간 존중’의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되는 철학과 신념 그리고 그런 인성을 가진 지도자를 육성할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일제 앞잡이들이 오로지 사관생도들에게 민족의식이 유입됨을 차단하기 위해서 전투적 기능인으로만 육성하기에 혈안이 되었던 그대로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지는 않으리라 믿고 싶다. 생도들은 감수성과 정의감이 강한 젊은이들이다. 용어 하나에 이르기까지 자부심을 북돋을 수 있는 정제된 내용을 활용하도록 섬세히 검토 분석해야한다.

“귀관들 형편없어!”

기초군사훈련 기간동안 “귀관들 형편없어!” 분대장 생도의 앙칼진 목소리를 우리는 수없이 들어 귀에 못이 박힐 정도가 되었다. 이런 용어는 내가 사관학교 입교 전에는 별로 듣지 못했던 생소한 말이다. 그러나 1학년 내내 하도 많이 들어서 그리고 상급생이 되어서는 하급생들을 향해 늘 사용하고 또 임관 후에는 병사들에게 늘 내뱉다 보니 완전히 입에 붙어버렸다.

이 말버릇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전셋집을 옮겨다니던 시절 전세금 반환문제로 집 주인과 언쟁이 있었는데 너무 화가 치밀어서 무심결에 “형편없는 놈!” 라고 내 뱉었다가 말꼬투리가 잡혀 채권자인 내가 완전히 수세로 몰려 혼 줄이 난 적이 있다.

“천하 없는 사람도 일단 사병 계급장을 달게 되면 형편 없어지는 거야! 사병들은 느슨해지면 요령만 피우려 든다. 시간여유를 주면 안 되! 틈만 있으면 딴 헛생각들을 한단 말이야. 그저 정신 못 차리도록 뺑뺑이를 돌려야 되!” 우리는 늘 이렇게 들어왔다.

일본 점령군의 앞잡이 노릇하던 한국인 간부들이 상관인 일본인 간부로부터 의심받을까봐 한국인 출신 병사들에게 더 독하게 대하던 부정적인 시각 그대로를 광복된 조국의 사병들에게도 적용하도록 교육받은 것이다.

‘군기’라는 이름으로 고참병들의 횡포는 끝이지 않았고, 부하들은 굴종만을 강요당했다. 오직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겉치레의 고된 노역들이 미화작업이니 윗분에 대한 기본 예의이니 하며 끝없이 계속 되었다. ‘인권’ ‘자율’ ‘자존심’ 이런 것은 군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의 말장난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겨울철이 되면 동상 환자가 속출했다. 목욕도 잘 못하면서 늘 군화를 신고 있어야하니 발가락 부분 동상이 제일 심했다. 환자들을 전원 집합 침상 위에 세워놓고 발가락을 만져가며 심한 정도를 분류하여 다음날 이들을 이끌고 대대 의무실로 갔다. 군의관은 병사들에 대한 이런 나의 배려에 대해 매우 못 마땅한 표정이었다. 보라는 듯이 환자들에게 별 이유도 없는데 야단을 치더니 어리둥절하고 있는 내 곁으로 다가와 “표 중위님! 사병들은 인간적으로 대하면 큰 일 납니다. 꾀병 환자가 무더기로 쏟아지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십니까?”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그래도 군의관만은 다를 줄 알았는데. 한 술 더 뜨지 않는가.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라는 말들은 거창했지만 바로 국민인 병사들은 그토록 무시 · 불신 당하고 멸시 천대받고 있었다. 어디를 가도 누구로부터도 대접받지 못하고 채이고 욕먹는 천덕꾸러기들이었다.

6.25 때 전투 경험이 있다는 고참 중위들은 늘 “군대란 원래 그런 거야. 졸병들에게 인정 사정 주면 안 되! 몽둥이가 제일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게 될 말인가? 하는 나의 고민과 의문은 잠시일 뿐, “군대란 본래 그런 것인가 보다”하며 병사들을 향한 나의 입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주먹질과 발길질은 습관화되어 멈출 줄을 몰랐다.

TV에서 ‘여자가 세상을 바꾼다’는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려와 안부의 전화를 받았다. 그 중 한 분은 내가 육사 졸업 후 처음 부임했던 제11사단 수색중대 병기계에 근무했던 정 병장이었다. “그 때부터 크게 될 줄 알았습니다! 똑똑했지요!”했다. 그래서 제가 “뭐가 똑똑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사람 잘 팼지요! ”라고 했다.

내가 화가 났을 때는 인정사정 없이 주먹으로 뺨 혹은 명치 치기였다고 한다. 아무리 아파도 참고 있어야지 조금만 자세가 흐트러지면 사정없이 군화 발로 차며 “형편없는 새끼들! 하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식민사관에 세뇌된 친일 세력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군대의 사관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모범장교라는 사람의 열성적인 근무 자세였다.

이제 분명히 가르쳐 주어야한다. “귀관들은 형편 있다. 귀관들이 맞이하게 될 부하들도 모두가 형편 있는 멋있는 젊은이들이다. 우리 민족은 원래 형편 있는 민족이니까!”라고...말이 씨가 된다고...우리들처럼 정말로 형편없이 되어버린 전철을 밟지 않도록 말이다.
------------
* 필자는 전 육군 정훈감으로(준장 예편) 현재 군사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다. 필자는 또 {천주교 인권위원회}의 위원/ {민족문제 연구소}의 지도위원이기도 하다.


표명렬 기자기자의 다른기사보기


  관련기사
표명렬의 군 개혁 (9) 표명렬 기자 [04.16]
표명렬의 군 개혁 (11) 표명렬 기자 [05.07]

 독자의견 (총 2건)

전체보기 >>

제 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추천
말은 살아 움직인다 고순계 2005.05.11 591 0
혁명은 부드러운것 손이덕수 2005.05.05 575 0


powered by NEWSBUILDER® 

| 뉴스 | 문명 전환 | 평화 마을 | 사업 | 평화 도시 | 자료 | 칼럼 | 평화 운동 | 교육-평화대안학교 | 평화 이론 | 평화 광장 | 평화 통일 |
문명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