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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문제에 대한 성찰

김조년 기자 (기사입력: 2005/04/27 01:02)  

아리송한 주장과 판단

지금은 봄인데, 세계의 정세는 봄같지가 않다. 특히 동북아시아에서는 매우 날카롭게 대결하는 냉랭함이 감돈다. 북한에서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공식 발표하였고, 미국과 일본이 새로운 방위조약을 체결하였고, 중국에서는 반분리법을 제정하였으며,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나섰으며, 그에 대하여 한국 사람들 속에서도 냉랭한 대응전략이나 주장이 날마다 펼쳐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1989년 천안문 대량학살이 있었던 때부터 중국을 향한 무기교역을 중단하였던 조치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한다. 평화와 화해 또는 함께 잘 사는 문제를 말로 표현하면서 경제, 문화, 군사, 정치면에서 실제로는 새로운 제국주의를 획책하는 흐름이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몇 가지 제국주의를 지금 세계에서 생각하여 본다. 20세기를 지배했던 것들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 민족사회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정치종교’들이 우리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다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표방한 동구권이 사라지면서 자본주의 단일지배체제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여기에 더욱 구체화하여 나타난 것이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지식과 정보와 고급과학기술과 문화산업의 제국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이것과 한 물결로 흐름을 타는 것이 이슬람세계와 기독교세계의 제국주의식 대결양상이다. 교회들과 종교들의 일치와 관용을 말로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단일종교화하려는 제국주의가 핵심을 이룬다.

이런 것과는 달리 아주 미미한 흐름으로, 이 흐름은 우리 역사를 통하여 매우 귀한 생명, 오히려 핵심생명이라고 하여야 할 미미한 흐름이 지극히 작은 수의 사람들이나 집단 속에 연결망을 꾸리면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각종 제국주의의 흐름에 눌려서 겉으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를 가나 그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있는 것이 매우 묘한 일이다. 견고한 바위 틈 사이에 스며드는 물끼처럼, 견고한 제국주의의 흐름 속에 그 생명의 작은 흐름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 흐름은, 견고한 제국주의 바위 틈새에 스며든 그 생명의 흐름은 제국주의가 완전히 꽝 얼어붙는 순간, 얼어붙는 그 힘으로 그 바위를 깨는 역동성을 나타낼 것이다. 마치 꽝꽝 얼어붙은 땅 속에서 새봄에 솟아날 부드러운 생명을 싹틔우듯이 그렇게 될 것이다. 지금 얼어붙어 나가는 동북아의 정세는 바로 새로운 생명의 힘을 부르는 손짓이요, 깨어나라는 나팔소리로 들어야 한다. 이것을 전제하고 심각한 문제들을 깊이 따져보고 풀어보도록 하자.

2005년 2월 10일 북한 당국은 자신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물론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 모든 나라들이 그에 대하여 크게 보도하였고 매우 놀라워하였다. 그렇지만 여론은 크게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생각했던대로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하는 측이요, 다른 하나는 저렇게 주장하지만 분명히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측이다. 이라크에 대하여는 그들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음에도, 또 핵무기를 사찰한 팀이 이라크가 핵무기를 소유한 흔적을 확인하지 못하였다고 보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분명히 이라크가 핵무기를 가졌다고 판단하여 전쟁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거짓정보를 믿으면서까지. 그 결과 이라크는 침공을 받았고,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고, 무수히 많은 사람이 살상되었고, 상당히 많은 재산 피해를 입었다.

물론 이라크가 원래부터 주장하였던대로, 아직까지 이라크가 핵무기를 가졌거나 개발하였다는 흔적이나 단서를 잡지는 못하였다. 그와 같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상당히 많은 여론은 미국의 주장을 진정한 판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제국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의지의 표현을 정당화하기 위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것도 사실이다.

어찌 되었든 세계 여론은 반으로 갈라졌고, 대개 크게는 하나의 흐름을 간다는 서구세력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지지와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전쟁반대의 세력으로 일단 갈라졌다. 이라크가 핵무기를 가졌으니 응징하여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은 단순히 미국의 패권주의정책과 에너지정책의 고급전략의 결과였다는 것이 들어났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된지 3년이 되면서, 전쟁을 일으킨 부시가 다시 대통령으로 집권하는데 성공하므로 갈라졌던 서방세계는 하나의 흐름으로 가기 시작하였다. 자국의 이득을 위한 명분쌓기에 역시 주력할 뿐이다. 어떤 국제정의나 당사국의 인간에 대한 문제는 그 다음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북한의 주장, 핵을 가졌다는 북한의 주장에 대하여도 그 진실 여부에 대하여는 매우 다른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이 진실이든 허위든 그것은 매우 심각한 국제사회의 핵심문제 중 하나로 등장하였다. 이와같은 판단의 혼란을 가져오는 것은 북한이 공개된 사회가 아니라, 아직까지도 폐쇄체계를 유지하는 가려진 사회라는데 있다. 또한 종종 보통의 상식을 넘는 놀라운 일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핵무기소유발언으로 무엇을 국제사회에서 얻으려 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보게 한다.

완전히 고립된 작은 나라로서, 어마어마한 압력으로 조여 오는 미국의 세력에 대응하기 위하여는 비상수단을 써야 한다는 전략에서 그와 같은 발언을 하였을 것이라고 보는 관측도 많다. 그러나 세계사회는 그렇게 선의로 해석하는 것만은 아니다. 설령 맘으로는 그렇게 해석하고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 잘못된 발언이나 행동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득과 주장을 관철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놓고 볼 때 그것은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 자신을 직접 겨냥한 발언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 미국으로서는 자신들이 펼칠 강경정책을 계속하는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은 매우 커졌다. 동시에 일본은 자국의 안전을 위하여 군사력을 명실상부하게 확대하여 확보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현실화할 수 있는 명분을 역시 가지게 됐다. 이것은 결국 항상 밀리고 있는 평화의 흐름, 다시 말하면 폭력 없이 대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여 보려는 흐름을 완전히 누르고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빠르고 좋다는 관점을 가진 강력파들의 발판을 강하게 세워준 것이 되고 만다. 분명히 북한 당국자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왜 이렇게 됐는가?

아무도 정확하게 그 내막을 모르지만, 북한의 당사자도 그 뜻을 알 수는 없는 것이지만, 몇 가지 이유를 분석하여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을 거친대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우선 북한의 폐쇄체계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체제와 인민의 삶을 동일시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어떤 체제가 되었든 민중의 삶이 행복하지 못하거나 자유롭지 못하며 사람다운 삶을 꾸리지 못한다면 그 체제는 도전 받아서 마땅하다. 사회주의노선이나 주체노선이나 자유주의노선이라는 어떤 노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노선은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 그것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면 언제나 수정하고 버려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노선을 고르고 찾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노선이 같고 다름을 떠나서 민중을 살리기 위한 온갖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것이 정치를 담당한 세력이 해야 할 의무다. 아직도 이념이나 노선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그 부분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으로 모색하되, 다른 한 면으로는 문을 활짝 열어 무수히 많은 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주변의 협력과 협조를 받아들임에 너무 옹색할 뿐만 아니라, 두려움의 세력이 자신들을 넘어뜨리려는 온갖 모사꾼으로 보려는 듯하다. 그것은 지나치게 자신 없는 태도라고 본다. 때로는 큰 것을 얻기 위하여 작은 것을 버리는 것이며, 때로는 장기간에 걸쳐서 더 큰 것을 이루기 위하여 지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버려야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내 체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웅크리는 것은 소인배의 수작과 같다. 문을 열고 당당하게 자기 체제를 옹호하면서 민중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여야 한다.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 그 세력은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어떠한 체제가 되었든 민중이 스스로 그것을 선택할 자유와 권리를 가지지 않는 한 정당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나 한 집단이나 가족이 대를 이어가면서 국가를 책임진다는 발상은 시대의 흐름을 모르는 어리석은 짓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북한은 내부에서 민중을 향하여 정치와 이념을 열고, 밖으로 누구와도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로 교통할 수 있는 문을 열어야 한다.

- 그 둘 째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다. 부시 행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달갑지 않게 여기면서 북미관계는 매우 무겁고 버겁게 되었다. 클린턴 정부에서 쌓아왔던 화해의 분위기를 완전히 냉각시키면서 현대사회의 3대 악의 축에 대한 발언으로 북미관계는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결국은 몇 번에 걸친 6자회담 역시 진전되는 것 없이 헛바퀴만 돌다가 지금은 헛바퀴마저도 돌지 않는 상태가 됐다. 특히 미군이 국제여론을 무시하면서까지 이라크를 공격하여 세계를 전쟁참여와 전쟁반대의 적대논쟁과 행위의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만들었을 때 북한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라크에 대한 공격은 핵무기를 보유하여 차라리 공멸의 길로 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판단을 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결국 악에 대한 보복은 인도주의의 노선이 아니라, 폭력과 더욱 강한 힘으로 제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미국 부시행정부의 논리는 주변에 있는 나라들, 특히 한국정부가 힘있게 북한과 교류할 수 있는 길까지도 막아 놓았다. 이와 같은 정책은 남북정상들이 두 번 다시 만나는 길을 일단은 막은 것이 아닐까?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제국주의 발상은 더 많은 갈등과 불안을 전 세계에 선사할 뿐이다.

- 셋 째는 일본의 새로운 군국주의을 획책하는 정책이다. 이것은 미국의 동북아패권정책과 맥락을 같이 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동북아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려는 의도에서 성립된 새로운 미일방위협약은 바로 일본의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을 뒷받침한다. 더욱이나 이라크전쟁과 인도네시아와 태국을 강타한 진파(쓰나미)피해를 복구하려는 의도의 경제개입은 국군주의를 되살리는 데 필요한 돌아가는 발판이다. 더욱이나 유엔상임이사국에 포함되려는 노력은 더욱 주변에 있는 나라들을 불안하거나 기분이 유쾌하지 않게 한다.

북일관계에서, 특히 북일간에 진행될 일제지배의 피해보상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하여 미리 포석하는 강경노선은 자연스럽게 주변의 다른 나라들을 강경노선으로 돌아가게 한다. 일본의 군사력증강 논리의 이면에는 언제나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응할 국가안전망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서있다. 그것과 함께 바로 독립된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강대국으로 존립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미일 두 나라의 의지는 하나로 통한다. 여기에서 대국도 되지 못하며, 주변 나라들과 긴밀한 친분관계를 맺지 못하는 북한으로서는 강력한 대응논리를 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넷 째는 남북한 관계가 부드럽지 못하게 진행되고 있는 점이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을 미국의 부시정권이 달갑지 않게 여긴 것은 이미 위에서 말하였다. 노무현 정권 역시 민족의 차원에서 북한에 적극 접근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의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 가지 면에서 계속하여 밀리는 노무현 정권은 북한정책에서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부시미국정부의 눈치를 벗어날 수 없는 취약함과 종속성 때문에 독자노선의 대북정책을 발전시킬 수가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대북관계에서나 다른 대외관계에서 미국에 대하여 보다 높은 강도로 대응할 명분과 실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이라크전쟁에 군대를 파견하였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의 조치를 취하지 못하였다. 많은 의문과 논란이 있었지만 햇볕정책으로 이름하는 화해정책은 전 세계의 지지를 받은 것이었다. 국내정치세력의 기반이 약한 노무현 정부는 국내의 정권비판세력과 타협하기 위하여 햇볕정책, 즉 대북송금에 대한 특별검사제를 도입하였다. 이로 인하여 햇볕정책의 대북정책은 신비성을 상실하였으며, 그것을 대신할 대북정책을 창출할 능력을 상실하였다. 능력의 상실은 다른 말로 하면 북한에 대한 신뢰를 만들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치는 북한이 노무현 정권에 신뢰를 크게 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하였을 것이다. 문화교류나 경제교류 또는 관광과 이산가족의 만남은 원래 정치행위의 뒷면에서 땅을 굳게 다지는 행위이지만, 정치관계가 얼게 되면 그것들의 의미가 활발하게 퍼지지 못하며 열매를 맺지 못한다. 아직까지도 노무현 정권에서 대북정책의 진전을 보지 못한 것은 바로 김대중 정권의 정책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단절한 데서 왔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것은 북한에 또 다른 고립감이나 위기감을 가져다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그러나 몇 가지 일반상식으로 짐작할만한 것들이 있다. 분명히 중국의 역할이 두드러질 것이다. 미국이 직접 북한과 접촉하지도 않을 것이며, 일본이 나서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정부가 중재할 수 있는 위치에 서있지 못하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기에 북한 문제에 관여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결국 이번 북한 핵발언으로 심각한 우려를 주는 문제, 그것을 해결하는데 중국은 커다란 발판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큰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약간 북한에 좋은 인상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한 중국, 그러나 북한이 핵무장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을 중국이 나서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미국으로서도 그것은 바람직한 일로 볼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므로 대북관계에서 중국중심으로 일이 진전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도 뻔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중국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한다. 이렇게 볼 때 한국정부는 매우 따분한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문제는 한국의 현실문제다. 그것은 북한과 다른 주변 나라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한반도의 문제다. 그런데도 한국정부가 적극 나설 수 없다는 것은 매우 답답하고 따분한 일이다.

보통상식으로 보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하여 전쟁을 일으키므로 부시정권이 할 군사행위는 다했다고 본다. 그 두 군사행동은 성공하였다거나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다. 아직 이라크 문제는 해결이 된 것이 아니다. 물론 오사마 빈 라덴의 문제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석유와 같은 거대한 무기를 차지할 것도 없는 북한에 대하여 공격할 이유는 없다. 물론 제국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는 문제에 대하여는, 매우 치사한 감정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아주 진지하게 따져 볼 일이긴 하다. 또한 북한에 대한 공격이 주변국들, 러시아나 중국과 한국에 커다란 공동의 이득이나 명분이 있을 때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러한 가능성은 적다.

그렇지만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여 자신들의 자존심을 살리는데 공헌할 어떤 행동에 대한 유혹을 끊임없이 받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선한 세계’, ‘정의로운 세계’, ‘자유로운 사회’와 ‘민주주의’를 심기 위한 전도자의 자격으로 어떤 ‘선한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무력으로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공식 언표 뒤에 간간이 이름을 알리지 않기를 바라는 관련자들이 북한의 군사시설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터뜨리는 것은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실현되지 않기 위하여는 북한과 관련된 여러 나라들이 함께 만나서 대화하는 길밖에는 없다. 대화는 말의 잔치가 아니라 행동의 꽃과 열매를 의미한다.

무엇으로 풀어야 할까?

- 한국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앞에서도 논의하였듯이 노무현 정부는 북한정책을 명확하게 잡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햇볕정책에 대한 특검의 흐름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냉랭해진 이 때 훨씬 강한 의지로, 그러나 부드러운 정책을 가지고 앞에 나서야 한다. 북한에 대한 지원과 모든 부문에 걸친 공동작업을 실시하고, 지금까지 진행하였던 각종 분야의 남북교류와 이산가족상봉 등을 더욱 적극 펼치는 것이 좋다.

북한이 열기를 바라지 말고, 열려 있는 문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북한이 문을 열기를 바라지 말고 한국이 문을 더 열어놓아야 한다. 이 말은 ‘우리가 무엇을 열지 않았단 말이냐’ 하고 되물을 수 있는 것이지만,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거나 폐기하는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것은 남한 역시 북한에 대하여 문을 굳게 닫고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에 특사를 보내고, 빠른 시간 안에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져야 하며, 남북정상들은 지나친 형식을 떠나서 자주 만나는 것이 좋다. 북쪽에서 서울에 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다시 평양을 방문하여 회담할 수도 있는 문제다. 물론 남북의 정상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몽골의 정상들과도 때때로 일어나는 갈등과 상관없이 자주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 그러나 한국정부의 행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반 민중들의 의식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복잡하게 얽힌 관점들이 있음을 본다. 민족의 차원으로 볼 때, 약한 북한이 강한 미국에 대응하기 위하여는 핵무기를 소유하여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꽤 적지 않다는 점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약한 세력이 강한 힘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꼭같은 무력의 논리로 대응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환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또 다른 관점은 인민을 굶어 죽게 만들면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노동당간부나 정부관료들만 안락하게 사는 체제는 어떠한 힘에 의하여서든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것도 역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북한은 강력한 세력에 대응하기 위하여 핵무기를 소유하여도 좋다는 관점은 그들이 다른 세력에 의하여 사라져도 좋다는 관점과 마찬가지로 위험하여 바람직하지 못하다.

여기에는 민족의 차원으로 생각할 것도, 육이오를 겪은 적성국의 차원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냥 이웃하는 나라, 이웃하는 민중들의 일반 삶의 차원으로 보는 것이 좋다. 동시에 이미 핵무기를 소유하고 개발한 나라들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는 분위기로 의식이 전환되면서 국제연대를 펼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정부차원보다는 비정부차원에서 생각있는 일반 사람들의 운동으로 펼쳐지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이것 역시 남북간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폭넓은 민간교류를 기대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 동북아 경제 방위조약 체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APEC이나 ASEAN 또는 ASEAN+a와 같은 모임들이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경제, 문화면에 더 많은 중심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 동북아시아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없다. 이 번 6자 회담을 진행하면서 한국, 일본, 북한, 중국, 몽골,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미국이 전 세계의 경찰임을 자임하고 있기에 이 방위조약에서 빼어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심은 지리상으로 동북아시아에 놓여 있는 나라들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상호방위조약이지만, 여기에는 서로 경제발전과 사회발전을 획책하는 공동정책을 펼치는 부분까지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 종교들이 할 일이 있다. 일단 종교는 사랑과 화해와 해방을 핵심교리로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종교는 다른 어느 집단보다도 더욱 더 강한 다른 종교집단에 대한 거부와 멸시가 있다. 이것은 커다란 모순을 넘어 종교들이 죄를 고백하고 돌아서야 할 대목이다. 내 종교를 존중할 만큼 남의 종교를 용납하고, 원수로 보던 다른 종교집단이나 반종교집단을 자기몸처럼 사랑하는 의식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적어도 종교는, 참종교라면 민족과 국경과 사상과 체제와 인종을 극복하고 넘는 참생명의 행동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에 있는 종교들의 큰 흐름은 지나치게 달팽이집 속에서 사는 폐쇄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깨어서 일어나야 할 때이다. 특히 큰 종교의 대표자들, 큰 사찰이나 교회의 대표자들이 깨어날 필요가 있다. 거대한 종교의 조직책임자로서가 아니라, 참다운 종교를 믿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되살아나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속세계의 정치나 경제 그리고 사회와 문화의 화해흐름은 매우 자연스럽게 될 가능성도 크다.

- 마지막으로 의식이 깨어있고 생각이 틔어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모든 분야에서 그렇게 되어 있는 사람들의 연대가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평화와 사랑과 정의와 생명의 씨는 어느 지역, 어느 시대에나 약한 듯 죽지 않고 흐르고 있다. 그 흐름이 이제는 실개천을 넘어서 큰 강물처럼 흐르도록 서로 연결되는 물꼬를 틔워야 한다. 누가 그것을 할까? 내가 하는 것이다. 지금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다른 곳에 서 있는 그 사람을 향하여 걸어가야 한다. 그리고 손을 잡고 함께 일어나야 한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끊임없이 그 일을 시작하여야 한다.

지나친 이상론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보라, 나사렛 예수를 전달하던 사람들이 지극히 적은 눌리는 사람들이었다.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 보리수 나무 아래 깨달음을 알아차리고 따르며 그 길을 걷던 사람 역시 지극히 적은 무리였다. 그러나 그 흐름은 몇 천년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을 적시고 여기까지 왔다. 모든 것은 그렇게 보잘 것 없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새로운 철학과 종교와 생활방식이 깨어있는 사람들로부터 흘러서 연결되어야 한다. 보잘 것 없는 것같은 운동으로 흘러가기 시작해야 한다. 어느 한 곳에서 흘러서 전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 생명들이 꼼지락거리면서 한 곳으로 흘러들어야 한다. 잡초처럼 쉽게 퍼져 나갈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며 희망이다. 새로운 차원의 비폭력 평화운동이 전개되어야 할 시기다.(2005. 0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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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한남대 교수이다.
* {표주박 통신} 85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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