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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 묵자와 평화 (57)

유가는 장님이다

기세춘 기자 (기사입력: 2005/04/28 22:34)  

묵가들에게 앎은 취사선택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관념이 아니라 실재성 진실성이 중요하다. 그것들은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묵자는 유가들을 갓난아기와 장님으로 비유했다. 갓난아기는 지각도 있을 것이며, 그들의 말대로라면 선험적 관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기는 경험이 없다. 장님은 아기처럼 마음이 있으므로 흑백의 관념은 있으나, 경험의 원천 중에 하나인 시각이 없다. 그러므로 장님은 흑백을 말할 수는 있지만 흑백을 분별하여 선택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유가들은 관념론자들이기 때문에 이름(名) 즉 관념으로는 알지만, 실재(實) 즉 경험으로는 모르기 때문에, 시비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유가들은 입으로는 仁을 말하지만 정작 仁은 모른다고 비판한다.
(墨子/貴義篇):
子墨子曰
묵자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今瞽曰 鉅者白也 黔者黑也 주: 鉅=銀의 誤. 黔=黑也. 黎民
눈먼 봉사도 은은 희고 숯은 검다고 말할 수 있으며
雖明目者無以易之.
이것은 비록 눈 밝은 사람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兼黑白 使瞽取焉 不能知也.
그러나 만약 흑백을 섞어 놓고 가려내라 한다면
봉사는 흑백을 알 수 없을 것이다.
故我曰 天下之君子不知仁者
그러므로 내가 유가들은 정작 仁을 모른다고 비판한 것은
非以其名也 亦以其取也.
그 이름이 아니라 그 선택을 말하는 것이다.

(墨子/公孟篇):
子墨子曰
묵자선생이 말씀하셨다.
然則儒者之知
그런즉 유가들의 지식이란 것이
豈有以賢於嬰兒子哉.
어찌 갓난아기보다 어질다고 하겠는가?

제3강: 난세의 대처 방책

제1장. 공자의 난세 대처방안

제1절. 보수적 시대인식

1) 현실 진단

1. 이 책 들머리에서 춘추전국시대의 민중의 참담한 생활을 토로한 노래와 어진 정치가들의 탄식을 소개한바 있다. 이러한 난세가 제자백가들을 출현시켰다. 그 중에서 공자 묵자 노자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묵자는 노동자출신으로 가난과 전쟁으로 고통 받는 민중의 민생과 사회적 문제를 제기했다. 한편 노자와 장자는 천하고 추한 병신들과 세상에서 낙오되고 몰락한 소외된 인간들의 실존적 인생론과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소원을 이야기한다.

반면 공자는 그가 만나는 사람마다 왕공 대부 등 지배계급들이므로 그들의 정치와 체세를 말한다. 그러므로 공자의 난세 처방은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바라본 도덕적이며 정치적인 담론이었다. 따라서 그의 담론은 귀족적이며 보수적이었다.

공자의 담론의 핵심은 王道와 復禮와 正名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세상이 안정된 평화시대에나 적합한 것이었을 뿐, 당면의 전쟁과 민생문제에 비해 너무도 우원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당시의 군주와 관료들은 이를 채용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운명론적이고 소극적이었다. 유가들은 나라에 도가 없으면 그 나라를 떠나버리지만, 적극적이고 투쟁적인 묵가들은 달려와 도를 세우려했다.
(論語/憲問.39):
子曰 賢者辟世
공자: 현자는 (천하에 도가 없으면) 세상을 피하고,
其次辟地 주: 辟地=국토를 떠난다.
그 다음은 나라를 피하고,
其次辟色 其次辟言. 주: 辟色=관리가 되어 윤택해지는 것을 피함
그 다음은 윤택함을 피하고, 그 다음은 간언을 피한다.
子曰 作者七人矣.
공자: 이런 사람이 일곱 사람이니 (난세로구나!)

다음 시경의 시와 공자의 해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민생문제에 안이한 시대인식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詩經/唐風/鴇羽): *원문은 제1강/1장/1절/1목 참조
너새는 열 지어 바쁘게 날아가,
뽕나무 떨기에 모여드는구나!
공실의 노역에 끌려와 진력하자니
벼와 메조를 가꿀 겨를이 없으니
부모님은 무엇을 잡숫고 계실까?
아득하다! 푸른 하늘이여?
언제나 노역이 끝나 집으로 돌아갈까?

(論語/子罕.30):
唐棣之華
산아가위 꽃
偏其反而 주: 偏(편)=翩(편).
나부끼며 춤을 추네!
豈不爾思
어찌 그대 그립지 않으리오만
室是遠而
집이 너무나 멀구나!
子曰
공자께서 이 시를 읽고 평하기를
未之思也
그립지 않은 것이다.
夫何遠之有.
어찌 먼 것이 이유가 되겠는가?

당시 춘추전국시대의 당면 현안은 첫째 전쟁이요, 둘째는 지배계급의 착취요, 셋째는 당면한 굶주림이었다. 그런데 공자는 西周의 禮를 회복함으로써 왕권과 제후들의 정치적 권위를 회복하는 것만이 난세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의 정치론은 아무것도 내실이 없다. 공자의 정치론은 화급한 현안문제에 대한 아무런 관심이 없다. 묵자가 지적한바와 같이 공자는 항상 질문에 실제적인 대답이 없다. 공자의 말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이 없고 다만 뜻풀이거나 우원한 순화논법으로 그친다.
(論語/季氏.3):
孔子曰 祿之去公室 五世矣.
공자왈, 작록의 권한이 공실을 떠난 지 150년이요,
政逮於大夫 四世矣.
정치가 대부에게 돌아간 지가 120년이다.
故夫三桓之子孫微矣.
그래서 환공의 자손인 季孫씨 叔孫씨 孟孫씨 세 가문은 미약해졌구나!

(論語/子路.16):
葉公問政.
섭공이 정치를 물었다.
子曰 近者說 遠者來
공자: 가까운 사람이 기뻐하고, 먼 자들이 살러오게 하는 것이다.

(論語/顔淵.14):
子張問政
자장이 정사를 물었다.
子曰 居之無倦
공자: 행동거지가 게으름이 없어야 하고,
行之以忠
실행함이 충성스러워야 한다.

(論語/子路.1):
子路問政
자로가 정치를 물었다.
子曰 先之勞之
공자: 앞장서고 노력하라.
請益. 子曰 無倦
더 말해 달라고 하자 공자는 “게으르지 말라”고 말했다.

오직 공자에개 관심사항은 어떻게 하면 군주를 잘 보필하고 인민을 복종하게 할 것인가에만 몰두했다. 이것은 민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군왕이나 지배계급의 통치술과 관리들의 처신술일 뿐이다. 이것은 관리로 등용되기 위한 공부일 뿐, 민생문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공자의 경세학은 지배자인 人을 위한 것일 뿐, 피지배자인 民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論語/顔淵.17):
季康子問政於孔子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孔子對曰 政者正也
공자왈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다.
子帥以正 孰敢不正
그대가 바름으로 솔선수범하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

(論語/子路.6):
子曰 其身正 不令而行
공자왈 위정자의 몸이 바르면 명령이 없어도 행해지고
其身不正 雖令不從
몸이 바르지 못하면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論語/子路.13):
子曰 苟正其身矣 於從政乎 何有
공자: 만약 자기 몸이 바르면 정사에 종사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
不能正其身 如正人何
자신이 바르지 못하고서 어찌 남을 바르게 하겠느냐?

그러므로 공자의 제자들도 현실의 참담함을 잘 알고 연민의 마음을 가졌지만 그것은 자기들 말단관리가 주제넘게 걱정하거나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분수에 넘는 犯分이라 생각했으므로 그들은 다만 자기들의 처세와 명예만 지키려 했고 적극적적으로 사회를 개조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論語/子張.19):
孟氏使陽膚爲士師
맹손씨가 중자의 제자인 양부를 옥사장으로 삼았다.
問於曾子
양부가 증자에게 물었다.
曾子曰 上失其道 民散久矣
증자왈, 위에서 도를 잃어 민심이 흩어진지 오래이다
如得其情 則哀矜而勿喜.
만일 범죄의 정상을 알더라도 불쌍히 여기고 기뻐하지 말라!

(論語/子張.20):
子貢曰 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
자공왈, 폭군이라는 주왕의 불선도 이처럼 심한 것은 아니었다.
是以君子惡居下流
그러므로 군자는 불선의 하류에 처하는 것을 싫어한다.
天下之惡皆歸焉
천하의 악이 모두 그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2. 이에 비해 법가류의 小人파들은 變法과 富國强兵을 주장하고 경제를 중시했다. 관자는 군자의 모습을 생산과 평화를 상징하는 벼(禾)로 비유했다(管子/小問.). 당시에는 벼 禾자는 평화 和자로도 쓰인듯하다. 즉 그는 足食이 곧 평화라고 보았으며, 군자는 이러한 足食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정치적 모토는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경제제일주의였다
(管子/牧民):
凡有地牧民者
무릇 봉토를 받은 자는 백성을 기르는 목자이니
務在四時 守在倉廩.
계절에 따라 생산에 힘쓰며 곡식 창고를 지킨다.
國多財則 遠者來
나라에 재물이 많으면 먼 곳 백성들이 찾아올 것이니
地辟擧則民留處.
국토의 개간사업을 일으켜 백성이 머물러 살도록 한다.
倉廩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
창고가 실해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

(管子/小問):
桓公曰 何物可比於君子之德乎.
환공: 어떤 물건이 군자의 덕에 비교될 수 있을까요?
管仲曰
관중: 저는 벼(禾)라고 생각합니다.
苗始其少也 眴眴乎 何其孺子也.
벼는 묘가 싹트고 어려서는 여린 모습이 마치 젖먹이 같고,
至其壯也 莊莊乎 何其士也. 주: 何=무척 꼭. 其=猶若也.
장성하게 되면 의젓한 것이 꼭 선비 같으며,
至其成也 由由乎玆免 何其君子也. 주: 由由乎=自得할수록. 玆免(자문)= 喪冠을 쓴다
그것이 여물면 익을수록 머리를 숙이는 모습이 꼭 군자와 같습니다.
天下得則安 不得則危
천하가 그것을 얻으면 편안하고 얻지 못하면 위태롭습니다.
故命之曰禾. 주: 禾=和와 통용됨.
그러므로 그것을 평화(禾)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此其可比於君子之德矣.
이것이야말로 군자의 덕과 비교될 수 있을 것입니다.

관자는 세속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 근대적이라 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시행한 탁월한 경세가였다.
(史記/管晏列傳):
管仲旣任政相齊
관중은 제나라 재상이 되어 정사를 맡자,
以區區之齊在海濱
齊나라가 해변에 위치한 이점을 살려
通貨積財 富國强兵.
무역으로 재물을 축적했고 부국강병을 이루어 패권을 차지했으나,
與俗同好惡.
그러나 속인들과 더불어 같이 좋아하고 싫어했다.

그리고 그는 朝貢을 石壁으로 바치게 하고(管子/石璧謀), 封禪을 참여할 때는 靑茅를 바치게 함으로써 석벽과 청모를 황금 대신 화폐 역할을 하게 했고(管子/菁茅謀), 경제관청을 설치한 경세가였다.
(史記/貨殖烈傳):
管子修之
관자께서 나라를 다스림에
設輕重九府. 注: 輕重=錢也. 九府=皆掌財幣之官.
화폐를 관장하는 구부를 설치하여
則桓公以覇.
환공을 패권자로 만들었다.

3. 묵자는 노동자집단을 결성하여 전쟁의 원인인 “超過消費”를 없애기 위해 절용문화운동과 더불어 반전평화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묵자는 인간만이 노동하는 존재임을 발견하고 天帝의 義는 “民의 利”라고 천명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가격론과 절용문화론을 저술하는 등 경제를 중시했다.(졸저 [묵가] 제6장. 경제사상 참조)

이처럼 경제를 중시한 것은 堯舜이래 전통적인 사상이었다. 禹임금이 홍수를 다스린 것도, 홍수를 다스린 후 구주의 금을 모아 황금 솥을 만들고 “이 솥으로 인민을 먹여주소서!” 천신께 제사를 올린 것도, 이후 모든 군왕과 백성들이 이 솥을 왕권의 상징으로 신성시 한 것도 모두 경제를 중시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墨子/耕柱):
昔者夏后啓 (夏왕조=BC2205-BC1767)
옛날 하나라 우임금이
使蜚廉折金于山川 注: 비렴=伯益의 子.
비렴에게 산천에서 금을 캐도록 하여
以陶鑄鼎於昆吾.
곤오에서 황금 솥을 만들게 했다.
是使翁難雉乙 주: 難雉乙=人名, 혹은 殺雉已
이에 늙은이에게 닭을 잡도록 시키고
卜於伯益之龜
백익에게 거북점을 치게 했다.

그리고 우왕은 다음 같이 빌었다.
鼎成 三足而方
황금 솥은 三足이며 바르게 되었습니다.
不炊而自烹
백성이 밥을 짓지 못하거든 신께서 이 솥으로 끓여 주소서!
不擧而自臧 주: 擧=用力.
소신이 솥을 채우지 않거든 신께서 이 솥을 채워주소서!
不遷而自行
어진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주지 않거든 이 솥을 손수 옮겨 주소서!
以祭於昆吾之虛 上鄕.
곤오의 제단에서 제사를 올리오니 흠향하소서!

4. 그러나 이러한 우임금 이래 전통과 관자 묵자와는 달리 공자는 名分論에 사로잡혀 경제를 선비의 직분이 아니라 소인의 관심사라고 천시했고 시국에 대한 인식이 너무도 안이했다. 그는 당시의 참담한 민생의 상황을 언급한 적이 없고, 오히려 너무도 한가한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오직 그는 西周의 문물제도를 복원하는 것 즉 復禮만이 민생해결의 바른길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는 당시 난세의 책임을 구체제의 모순과 人계급의 착취에서 찾지 않고, 구체제의 문란과 民心의 도덕적 피폐에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論語/先進25):
子曰 如或知爾 則何以哉.
혹시 너희들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어찌하겠느냐?
點曰 莫春者 春服旣成 주:點=曾晳. 曾子의 父.
증석: 늦은 봄에 봄옷이 마련되면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약관 오륙명과 동자 육칠명과 기수에서 목욕하고,
風乎舞雩 詠而歸.
무우에서 소풍하다가 시나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
夫子喟然歎曰
공자: 길게 한숨을 쉬더니 탄식하며 말했다.
吾與點也.
나도 너와 같은 생각이다..

(論語/陽貨16):
子曰 古者 民有三疾.
공자왈, 옛날 民들은 세 가지 병폐가 있었는데
今也 或是之亡也.
지금은 그것마저 옛말인 것 같다.
古之狂也肆. 今之狂也蕩.
옛날의 광기는 방종이었으나
지금의 광기는 방탕으로 변했고,
古之矜也廉. 今之矜也忿戾.
옛날의 긍지는 모남이었으나
지금의 긍지는 분노와 사나움으로 변했으며,
古之愚也直 今之愚也詐而已矣.
옛날의 어리석음은 우직함이었으나
지금의 어리석음은 속임수뿐인 것 같다.

(論語/衛靈公.26):
子曰 吾有及史之闕文也
공자왈, 옛날 우리에겐 사관이 의심나는 것은 빈칸으로 남겨두고
有馬者借人乘之
말을 가진 귀족들은 서로 빌려주어 타게 하는 풍습이 있었으나,
今亡矣夫
지금은 다 없어진 것 같다.

5. 이처럼 그는 민생 피폐의 근본 원인은 왕권의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민생피폐의 직접적인 원인인 제후들끼리의 겸병전쟁도 관리들의 착취도 모두 왕권의 추락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王道와 德治를 주장했고 그 방도로 周禮를 재해석함으로써 周禮의 부흥을 주장한 것이다.
(論語/爲政1)
子曰 爲政以德
공자왈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譬如北辰 居其所
비유컨대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으면
而衆星共之.
뭇별들이 그것을 받드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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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기대승 선생의 후손으로 1937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남. 전주사범학교 졸업. 전남대 법과 대학 입학. 4.19 혁명 적극 가담. {동학혁명 연구회} 창립.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창립. 저서로는 『천하에 남이란 없다-묵자』『우리는 왜 묵자인가』『예수와 묵자』『신세대를 위한 동양사상 새로 읽기』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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