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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평화에 대한 북한의 입장과 국가전략

고유환 (기사입력: 2005/05/14 18:08)  

1. 동북아 평화와 안보협력의 필요성

동북아시아는 남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세계정치와 경제의 중요하면서도 매우 역동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탈냉전시기에 거대한 경제발전의 잠재력을 지닌 이 지역은 안보적으로 많은 갈등요인을 잠재하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등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동북아 국가들 간의 갈등해소와 안보협력이 필수적이다.

동북아 평화와 안보협력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동북아 안보협력은 북핵위기 해소, 북-미, 북-일 적대관계 해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 등에 관한 협력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국제협력 틀을 제도화된 국제협력체제로 발전시켜 동북아 평화․안보협의체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북핵문제의 장기화는 동북아 냉전질서의 지속과 함께 남북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북핵문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하면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없다. 한반도 이해 당사국이 모두 참여하는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가 조기에 해결되려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로드맵을 만들고 이를 단계별 동시병행원칙에 따라 현안문제의 일괄타결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 후 남북한을 비롯한 주변 4강이 참여하는 다자간 안보협력체를 통해서 신뢰구축조치를 밟고,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라는 큰 틀에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내는 국제적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회담에 임하는 자세를 비교적 정확히 알고 있는 우리 정부가 6자회담에서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중재안을 제시하고, 관련 국가들을 적극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의 경험에 비춰볼 때 행위자 수가 많으면 회담이 장기화되고 합의 도출이 어려울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짧은 기간에 합의도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국가들을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의 ‘합리적 선택’이다. 북한은 핵개발 고수 후 붕괴냐, 핵포기 후 생존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6자회담은 북한의 선택을 돕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북한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핵무기개발 포기와 함께 서방과의 ‘대타협’을 시도하는 것이다.

동북아 역내 국가들 사이의 안보협력과 경제협력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상호이익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할 것이다. 중국을 제외한 동북아 역내 국가들은 장기적인 경제 침체에 시달리고 있다. 남북한과 일본 등이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고 공동번영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북핵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고 안보불안감을 해소한 가운데 안보 및 경제 관련 지역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동북아질서는 소련의 붕괴 이후 안정적인 신질서의 미형성, 식민지배와 냉전 역사의 미청산에 따른 증오와 경계, 북한의 체제적 불안감과 그에 따른 공격적 행태, 일본의 우경화 경향 등으로 매우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다. 그밖에 환경위협, 마약․인권 문제와 같은 비군사적 안보위협도 증대되어가고 있다. 이와 같이 ‘공동의 이익과 혐오(common interests or aversions)’의 범주가 확대되어가면서 동북아에는 다자간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강력한 유인이 발생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기 전에 동북아에서 다자간 안보협력체제가 구축되어 활성화하면 동북아의 다자안보협력이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에 순기능 역할을 할 것이다. 그 동안 동북아에서 다자간 안보협력이 어려웠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분단체제의 지속과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질서를 해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화해가 진전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남북한간에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이뤄내지 못했다. 또한 북한과 미국, 일본 등과의 적대관계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동국아 역내 국가들 사이의 안보협력은 쉽지 않은 것이다. 특히 북한은 다자안보협력에 관심이 없으며, 군사안보문제를 미국과 우선 해결하기를 원하고 있다.

둘째, 동북아에는 세계적인 군사강국들이 집합해 있어 상호경쟁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군사비 규모와 첨단무기에서 세계 제일이다. 중국은 병력 숫자 면에서 세계 제일이다. 러시아는 핵무기 숫자에서 세계 제일이다. 일본은 군사비 면에서 세계 2위다. 북한은 병력과 재래식 무기수에서 세계 5위다. 한국은 병력면에서 세계 7위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강국들 사이에 긴장을 완화시키고 군축을 촉진시킬 안보대화체제가 없어 군비경쟁을 지속하고 있다.

셋째, 동북아 국가들은 다자주의 보다는 양자주의를 선호하고 있다. 한국은 한미동맹에 의존하고 있고, 일본은 미일동맹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북한은 중국과 혈맹관계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다. 양자주의가 극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다자안보협력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넷째, 일본과 주변 국가들 사이의 식민지배에 대한 과거 청산이 말끔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유럽의 독일처럼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통한 청산보다는 미일신가이드라인 등 미일안보동맹을 강화하면서 미국을 끌어들여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동북아 국가들 사이의 안보협력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일본과 북한 사이에 국교정상화가 이뤄지고, 일본과 중국 사이에 과거사에 대한 불편한 관계가 청산돼야 할 것이다.

동북아의 다자안보협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동북아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남북한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겠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주요 국가들이 동북아지역 내 안보문제로 관심을 확대하게 될 것이다.
동북아에서 군비경쟁과 세력균형 정치가 자리 잡게 되면 남한이 첫 번째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남한은 그러한 체제 하에서 동북아 4대강국 중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 따라서 효율화된 자주국방 능력을 우선적으로 도모하면서 다른 한편에서 억지를 넘어선 공동안보에 기초한 다자간 안보협력의 형성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유럽에서는 1975년부터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를 개최함으로써 신뢰구축과 군비통제를 달성했으며, 1995년에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를 발족시켰다. 유럽에서는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같은 집단안보체제가 존재함으로써 일찍부터 지역안보개념이 있었다. 유럽에서는 지역안보에서 갈등요소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동안보의 개념을 발전시켰는데 동북아에는 역내 국가들이 다 참여하는 안보대화나 집단안보체제가 없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동북아 국가들은 대결의 과거와 결별하고 협력적 관계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 왔다. 1993년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동북아 지역에서 다자간 안보를 지지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쌍무동맹과 다자안보협력은 병행 가능하다는 취지로 다자간 협력을 권장했다. 1993년 7월부터 매년 미국의 샌디에고대학 부설 세계갈등협력연구소(IGCC: Institute on Global Conflict and Cooperation) 주도 하에 동북아협력대화(NEACD: Northeast Asia Cooperation Dialogue)가 개최되었다.

한국 정부는 1993년 5월 31일 한승주 외무장관을 통해 동북아지역에서 소유럽안보협력회의(mini-CSCE) 형식의 안보협의체 구상을 밝혔다. 그리고 1994년 5월 방콕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포럼 고위간부회의(ARF SOM)에서 동북아안보대화(NEASED: Northeast Asia Security Dialogue) 추진을 정식으로 공표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다른 국가들의 호응이 없어 공식기구로 발족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1999년 가을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4자회담과는 별도로 동북아지역의 안보문제를 협의할 다자안보협력체 구성을 모색한 바 있다. 당시 한․미․일이 구상중인 동북아다자안보협력체는 역내 안보, 환경, 마약, 테러방지 등 공동의 관심사를 다루는 것을 비롯해 군인사 상호방문, 국방백서 교환 등의 조치를 통해 회원국간 신뢰구축을 쌓아나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당시 북한은 동북아지역에서 다자간안보협력체를 구성하는 문제는 통일된 한반도를 전제로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 노동당 35호실(옛 대외조사부) 소속인 국제문제연구소 이혁 연구원은 1999년 11월 5일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와 인터뷰에서 당시 한․미․일에서 거론됐던 다자안보협력체 구성문제 등 동북아지역의 평화구축과 관련한 북한의 입장을 밝혔다. 이 연구원은 다자간안보협력체가 구성되자면 무엇보다 협력체를 구성하는 나라간에 평등한 지위가 보장되고 신뢰가 조성돼야 한다며 “동북아에 과연 그러한 조건이 성숙될 수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북-미, 북-일 사이에 교전․적대관계가 지속되고 남북간에도 대결상태가 계속돼 안보문제를 협의할만한 조건이 못된다며 “이 상태에서 안보협력체를 구성해봤자 어느 일방에 대한 관섭과 압력의 수단으로밖에 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다자간안보협력체를 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 주한미군 철수, 북-미 평화협정 체결, 일본의 과거청산을 통한 상호신뢰 및 관계정상화 등을 들었다.

Ⅱ.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북한 주장의 변천과정

북한은 통일의 전제조건 조성 차원에서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195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전개해 왔다. ‘민주기지론’에 입각한 대남 무력통일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간 이후 북한은 내면적으로 대남 공산화혁명노선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표면적으로는 한반도 평화문제를 언급해 왔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공식적으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할 것을 주장한 것은 1955년 8월 14일 ‘8.15 해방 10주년 기념대회에서 한 김일성의 연설’에서다. 이 연설에서 김일성은 “조선의 통일문제는 조선사람자체의 의사에 의해 해결되어야”한다고 하면서 “조선에서 모든 외국군대가 철거하고 남북조선인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조선문제를 토의하며 자기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초하여 민주주의적 통일정부를 수립하여야”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 연설에서 김일성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선 정전을 공고한 평화에로 전환시키며 남북조선이 상호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여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김일성은 남북간에 존재하는 불신임과 긴장상태를 제거하기 위해 남북한 당국이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무력행사도 하지 않고 통일문제를 오직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할 것을 선포하고 남북한 군대를 최소한도로 축소할 것을 제의하였다. 김일성의 이 연설은 불가침문제와 평화체제로의 전환 및 군축문제를 남북한 당국간에 포괄적으로 협의하자는 북한 최초의 제안으로, 불가침문제와 평화문제가 미분화된 상태에 있었다.

북한은 남북 평화협정 체결 주장(1955. 8.-1974. 2.)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거론했다. 1960년대 초에는 ‘선 미군철수 후 남북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다가 여의치 않자 197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선 남북평화협정 체결 후 미군철수’로 전략을 수정했다. 6․25남침을 통한 전한반도의 무력통일이라는 목표가 좌절된 상태에서 민주기지노선의 연장선에서 제시된 북한의 이러한 제의들은 ‘선 건설 후 통일’이라는 구호 아래 경제건설에 주력하고 있던 남한당국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북한은 1974년 3월 20일-25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5기 3차회의에서 허담(당시 정무원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한 보고 “조선에서 긴장상태를 가시며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한 전제를 마련할 데 대하여”에서 미국과의 직접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제기하고, ‘미합중국 국회에 보내는 편지’(1975. 3. 25)를 통해 최초로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였다. 북한이 남북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북미 평화협정 체결 제의로 바꾼 것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서 밝힌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과 이른바 ‘실제적 당사자론’에 따른 것이다.

북한은 1984년 3자회담 제의 이후 남북간의 문제와 북․미간의 문제를 분리하여 접근해 왔다. 북한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서 남북사이에 해결할 문제(불가침합의)와 북미사이에 해결할 문제(평화협정, 잠정협정)가 따로 있다고 하면서 ‘이원적 접근(two track approach)’을 시도해 왔다.

버마 아웅산암살폭파사건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북한은 1984년 1월 10일 중앙인민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연합회의에서 북한과 미국 그리고 남한이 참가하는 3자회담을 제의하였다. 북한은 3자회담을 통해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북 불가침선언 채택문제를 협의할 것을 제의했다. 북한의 3자회담 제의는 평화협정 체결문제와 불가침선언 채택문제를 분리하여 ‘선 북미평화협정체결과 미군철수, 후 남북불가침선언 및 군비축소’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이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참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북한의 주장과는 달리 남한의 참여는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옵서버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과 북한이 3자회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북미직접협상의 길을 열어보려고 했다는 점에서 3자회담은 남한의 거부로 실현될 수 없었다.

북한은 한반도문제 해결에 있어 북미간 우선 협상의 필요성에 대해 미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이며 주한 미군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찾고 있다. 당시 북한은 북미간 직접협상 채널을 확보하여,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군을 철수하는 것이 조선문제해결, 즉 한반도 공산화통일의 기본 전제라고 보고 미군철수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미군철수에 대한 남측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남북간 불가침선언을 체결하자고 제의했다.

3자회담 제안은 그 목적이 주한미군 철수에 있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철수 그 자체가 평화협정체결의 조건은 아니었다. 물론 평화협정의 체결 결과 주한미군은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북한은 남한에서의 대통령 선거와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1987년 11월 KAL 858기 폭파사건 등 국가가 지원하는 테러를 감행하여, 남북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키기도 했으나, 1988년을 기점으로 북한은 남북공존문제를 공식으로 언급하면서 대남 유화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1988년 11월 8일 ‘평화보장 4원칙’과 이에 기초한 ‘포괄적 긴장완화방안’을 제시하였다. 북한은 1988년 남한의 노태우 대통령이 7․7선언을 발표하고, 10월 19일 UN총회연설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실현, 동북아평화협의회 구성, 4강에 의한 남‧북한 교차승인 등의 구상을 발표하자 이를 ‘두개 조선 조작 강화책동’이라고 비난한 뒤 11월 7일 평양에서 개최한 중앙인민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정무원 등의 연합회의를 개최하여, 평화보장 4원칙과 함께 이에 기초했다는 한반도 긴장완화대책을 11월 8일 발표했다.

당시 북한이 제기한 평화보장 4원칙은 ① 2개 조선에 반대하는 통일지향(“조선반도의 평화는 나라의 통일을 지향하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 ② 주한미군의 철수, ③ 남북한군축, ④ 남북한과 미국을 포함하는 당사자협상(“조선반도의 평화는 긴장격화에 책임 있는 당사자들의 대화를 통하여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북한은 평화보장 4원칙에 기초했다는 「포괄적 긴장완화방안」으로 ① 핵무기 및 주한미군의 단계적인 철수, ② 남북무력의 단계적 감축, ③ 미군 무력의 철수와 남북 무력의 감축에 대한 통보와 검증, ④ 북한, 미국, 남한사이의 3자회담, ⑤ 정치적 대결상태의 완화, ⑥ 군사적 대결상태의 완화, ⑦ 남북사이의 고위급 정치군사회담 등을 제시했다.

이와 같이 북한은 한반도 평화보장을 위한 남한정부의 국제적 여건조성방안에 정면으로 맞서 남북대화와 남북관계에서의 정치‧군사적 우선주의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당시 결정사항의 하나인 남북고위급정치군사회담 제의는 결과적으로 남북고위급회담 성사의 실마리 구실을 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목격하면서 체제수호 차원에서 1991년 9월 17일 남북유엔동시가입을 실현하고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따라서 1984년 3자회담 제의 당시 북한이 의도한 한반도문제 해결방식으로서의 ‘선 북미평화협정 체결, 후 남북불가침선언 채택’이라는 구도는 ‘선 남북불가침합의 채택, 후 북미평화협정체결’로 수정되었다. 북한은 남북사이에 제기되는 문제들을 1991년 12월에 채택되고 1992년 2월에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에 의해 불가침확약이 이루어지고 군축평화문제를 협의하는 기구로 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함으로써 그 해결의 기본 틀이 마련된 것으로 본다. 반면에 북․미사이에는 정전 이후 현재까지 공고한 평화보장체계가 마련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정전위원회의 기능이 마비됨으로써 한반도정세는 통제불능의 사태에 직면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북한은 이러한 안보공백을 메운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1994년 4월에 미국에 대해 ‘새로운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할 것을 제안하였다. 북한은 정전체제를 무력화시키면서 새로운 평화보장체계 수립을 미국에 제안하였으나 미국이 이에 응하지 않자 1996년 2월 22일 외교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새로운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북․미간 잠정협정 체결, 북․미공동군사기구의 조직운영 등을 제의하고 이의 실현을 위한 해당급 협상의 진행을 미국측에 요구하였다.

북한이 북․미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뒤로하고 ‘중간적 조치’(평화협정 전단계 또는 과도적 조치)로서 잠정협정의 체결을 요구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조선반도에서 무장충돌과 전쟁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북․미 평화협정 체결에 반대입장을 보여온 미국의 입지를 넓혀주고, 일단 미국을 협상테이블에 끌어들이고 보자는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북한이 잠정협정을 들고 나온 것은 대미 평화협정 체결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과도적 조치로서의 잠정협정 체결 제의를 통해 북․미간에 군사채널을 마련하고, 나아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기 위한 ‘적대관계의 청산’에 비중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미국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잠정협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한은 개혁․개방의 전제조건 차원에서 북-미 잠정협정을 맺어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강경 군부를 설득한 후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Ⅲ. 2차 북핵위기와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요구

2002년 10월 한반도에서 2차 북핵위기가 불거지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논의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미국 켈리특사 방북 이후 다시 불거진 북한 고농축(HEU) 핵개발의혹문제와 관련하여 2002년 10월 25일 외무성대변인 논평을 통해서 북․미 불가침조약체결을 통한 핵문제 해결을 제의했다. 북한은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통해 북한에 대한 핵불사용을 포함한 불가침을 법적으로 확약한다면 북한도 미국의 안보상 우려를 해소할 용의가 있다는 주장을 했다.

2002년 10월 25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밝힌 북․미간 불가침조약 체결 주장은 ‘잠정협정’의 변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북․미간 평화협정을 체결하기까지는 유엔사해체문제, 주한미군문제, 전시작전통제권문제 등 구조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기 때문에 핵문제로 불거진 긴급한 전쟁위협 해소를 위한 응급조치 차원에서 불가침조약을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국제법사전에서 불가침조약 체결의 의도에 대해서 “사회주의나라들은 그 제도상 본성으로 하여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서 나라의 안전과 국경의 보위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반면에 제국주의자들은 상대방을 안심시켜 놓고 불의에 공격하려는 목적에서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국에 대해서 불가침조약 체결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핵공격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핵불사용보장조약’ 차원의 소극적인 안전보장장치(negative security assurance)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93년 6월 11일 북-미공동성명에서 미국이 약속한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이러한 무력으로 위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담보한다”는 내용을 법적으로 확약하면 미국의 안보상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서 ‘선 불가침확약, 후 안보상 우려해소’를 요구하는 한편, 미국의 ‘선 핵포기, 후 협상론’에 대해선 일방주의적인 무장해제로 인식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002년 10월 2차 북핵위기가 발생한 이후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 대신에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요구했다. 이는 1996년에 제안한 북-미 잠정협정의 변형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기까지 주한미군문제, 유엔사해체문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 등 구조변화를 요구하는 많은 문제들이 있어 전정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따라서 이라크전쟁 이후 있을 지도 모를 미국의 군사공격을 의식하여 북한은 평화협정으로 가는 과도적 조치로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 당국자가 남북한과 미국이 참가하는 3자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한 주장을 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한성렬(韓成烈)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2004년 5월 12일 가진 유에스에이투데이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한반도에 군대를 두고 있는 모든 나라들이” 영구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는 한 북한은 핵무기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에스에이투데이지는 한 차석대사의 말을 ‘남북한과 미국이 서명하는’ 평화협정이라고 해석했으나, 북한은 그동안 북-미 평화협정 체결과 남북 불가침합의를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한 차석대사의 말이 ‘한국․미국과 북한 3자가 동시 서명하는’ 협정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북-미간, 남-북간 2개의 협정’을 뜻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기존 주장과는 다른 새로운 평화협정체결 방식이다. 북한이 아직 공식적으로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한성렬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북-미 평화협정(잠정협정) 체결 주장에서 남북한과 미국이 참여하는 3자 평화협정 체결로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 주체를 바꾼 것으로 볼 수 있다.

Ⅳ. 미국의 다자안전보장 추진과 북한의 수용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3년 10월 2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태국을 방문하여 방콕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6자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5개국이 서명한 문서 형태로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그동안 미국이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검토해 온 대북 안전보장 제공 방안을 문서화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공동발표문에서 “북한이 먼저 완전한 핵포기를 하지 않더라도 핵폐기에 진전(progress)을 보인다면 다자 틀 내에서 안전보장(security assurances)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혀 북한의 핵 폐기와 안전보장 조치를 병행해 나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에서 북한과 불가침조약은 선택가능 한 방안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다자간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불가침조약 불가 방침을 거듭 주장하는 데는 ①지금까지 어떤 나라와도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역사가 없고, ②불가침조약 체결은 상대국과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의미이며, ③북한과 양자합의는 북핵 해결에 효과가 없다는 판단 등에 근거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부시 대통령의 다자안전보장 주장에 대해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비난했다가 나흘 후인 2003년 10월 25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의 ‘서면불가침담보’가 그들과 공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고 동시행동원칙에 기초한 일괄타결안을 실현하는 데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서 밝힌 북한의 요구는 “조미가 서로 총부리를 내리우고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수립함으로써 평화적으로 공존하자는 것”으로, 3자회담과 6자회담에서 제안한 것과 마찬가지로 북미 현안문제를 동시행동원칙에 기초해서 일괄타결하여 적대관계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 부시 행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안전보장 문서화’의 형식과 관련하여 양국간 적대관계 해소를 선언한 2000년 10월의 ‘북․미공동코뮈니케’를 예로 든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21일 교도(共同)통신이 워싱턴발로 전한 데 따르면 북한의 이근 외무성 미주국 부국장은 9월 말 뉴욕에서 열린 남․북한-미-중-일 5개국 정부당국자 비공식 모임에서 이 같은 예를 거론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핵문제를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로 보고 북․미 직접협상을 통해서 북․미불가침조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하면 다자회담을 반대해 왔다. 북한이 기존 입장을 바꿔 3자회담과 6자회담 등 다자대화 틀을 수용하고 다자안전보장안을 수용할 뜻을 밝힌 것은 체제위기 심화와 이라크전쟁 이후의 사태 진전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은 그들이 유리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났다고 판단하고 미국의 다자해결구도를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라크전쟁 전에 북․미 현안문제를 일괄타결하기 위해서 벼랑끝 수위를 높였지만 미국은 냉담했다. 북한은 이라크 전쟁이 마무리되면 미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것으로 보고, 일단 미국의 다자회담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북한은 미국의 대 이라크전쟁 수행과정을 지켜보면서 북․미 양자대화를 하더라도 주변국가들의 북․미 합의사항에 대한 ‘보증’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하고 다자해결구도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거치지 않고 이라크전쟁을 감행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미국과 설사 불가침조약을 체결한다고 해도 전쟁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주변국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다자회담에서 북․미간 합의사항을 보증 받기 위해서 다자회담 틀을 수용하고 다자안전보장안을 검토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북한은 핵포기와 체제보장의 맞교환 등 북․미 적대관계 해소 이후 경제재건을 위해서도 다자구도가 유리하다는 실리적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체제보장은 북․미 쌍무대화로 풀고, 이에 대한 보증과 경제재건을 위한 재원 조달은 다자 틀로 해결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이 제안한 북한에 대한 다자안전보장안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미국이 핵문제와 관련하여 북․미 직접협상을 하지 않고 3자회담과 6자회담 등 다자해결구도로 끌고 가면서 북한에 다자안전보장을 제안한 것은 제네바 북․미기본합의 이후 합의 이행이 잘되지 않았다는 점을 표면적인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북․미 양자협상 이후 미국이 부담해야할 경제적 부담과 북한의 북․미 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미국은 정전협정에 기초한 정전질서가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고수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지도 모른다.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유엔군사령부(UNC) 해체와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정전질서를 평화질서로 바꾸는 구조변화가 불가피하다. 이러한 구조변화를 동반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올 리가 없다. 따라서 미국은 북․미 직접협상과 평화협정 체결을 피하고 다자해결구도와 다자안전보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Ⅴ. 북한의 ‘동북아 냉전구도 해체’ 주장

북한이 2005년 2월 10일 외무성 명성을 통해서 핵보유와 6자회담 불참이라는 ‘위험한 승부수’를 던짐으로써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북한은 미국 대선 이후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의 철회를 기대했으나, 부시 2기 행정부는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칭하면서 ‘자유의 확산’을 표방하자 크게 실망하고 핵보유와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핵보유선언은 북한이 말로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위기조성전술이다. 핵실험과 핵확산 등 ‘행동으로 하는 위기조성전술’을 구사할 경우 북한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될 것이다.

북한은 2005년 3월 2일 외무성 비망록을 통해서 “6자회담 참가명분과 조건이 마련되어야 회담에 나가겠다”고 선언하고, “조미 핵문제는 부시 행정부의 극단한 적대시정책의 산물로 그 해결의 기본열쇠는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조미 평화공존정책으로 바꾸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하여 군축과 냉전구도 해체를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동북아 및 한반도의 냉전구도 해체와 연계시킨 것은 근래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접근법이다.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서 미국의 동북아안보전략이 남한․일본과 안보동맹에 의거해 북한․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냉전구도유지전략’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이 ‘북한위협론’을 내세워 일본, 남한과의 3각 군사동맹 강화와 3각 미사일방어(MD)체제 수립을 다그치고 있는데, 이로써 임의의 시각에 대북 선제공격 단행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의 핵 및 미사일 무력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미국의 동북아시아 안보전략은 일본, 한국과의 3각 군사동맹에 기초하여 북한과 중국 등을 견제하기 위한 동북아시아 냉전구도 유지전략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동북아시아냉전구도유지전략이 이 지역 나라들의 공동의 이익에 배치될 뿐 아니라 6자회담을 파탄시키고 조선반도비핵화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근본요인으로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패권적 지위를 누려보려고 냉전구도유지전략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전략적 오류”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은 현실을 냉철하게 대하고 동북아시아지역의 냉전구도를 하루빨리 해체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 냉전구조해체 구상’은 김대중 정부가 제시한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전략이기도 하다. 김대중 정부가 냉전구조해체 구상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8월에 불거져 나온 금창리 지하핵의혹시설과 8월 31일 북한의 다단계로켓(‘광명성1호’ 또는 ‘대포동1호’) 발사 등으로 ‘한반도 위기’가 다시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금창리 지하핵의혹시설, 미사일개발 등의 현안이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 아래 한반도 냉전구조해체 구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는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정을 보장받을 목적으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만큼 북한이 핵개발과 제2, 제3의 미사일발사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냉전구조해체가 유일한 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한반도 냉전해체의 목표와 방법에 있어서는 김대중 정부가 표방했던 냉전구조 해체구상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북한이 핵문제 해결을 ‘냉전구도 해체’ 차원에서 접근한 것은 김대중 정부의 냉전구조 해체 구상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인식전환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2월 10일 핵보유선언과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한 이후 3월 3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서 ‘6자회담은 비핵화, 군축회담으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3월 중순 아시아 순방 중 ‘북한주권국가론’을 밝히자, 북한은 ‘핵을 가진 주권국가’로서 미국과 대등한 자격으로 6자회담에서 한반도비핵화와 군축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북한은 “앞으로의 6자회담은 주고받기식의 문제해결방식을 논하는 장마당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조선반도비핵화를 공정하게 실현하기 위한 포괄적 방조를 논하는 장소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제는 6자회담에서 동결과 보상과 같은 주고받기식의 문제를 논할 시기는 지나갔다”고 선언했다. 또한 북한은 “우리가 당당한 핵보유국이 된 지금에 와서 6자회담은 마땅히 참가국들이 평등한 자세에서 문제를 푸는 군축회담으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의 평양방문 이후 불거진 고농축 우라늄(HEU) 핵계발계획 ‘의혹’이 불거진 직후 10월 25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서 자주권의 인정, 불가침의 확약, 경제발전의 장애제거를 요구했다. 당시 북한이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요구한 것은 평화협정으로 가는 ‘과도적 조치’로서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4월 4일자는 이에 대해서 “조선과 미국은 여전히 정전상태, 기술적으로는 전쟁상태에 있다. 평화협정의 체결을 요구할 수도 있는 교전국에 대하여 불가침의 확약을 제기한 것은 모든 문제해결방식의 기준점을 나라의 자주권과 생존권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데 두고 조미 두 나라사이의 군사적 대결을 더 이상 격화시키지 않는 방도를 찾는데 선차적인 의의를 부여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고 밝히고 있다.

2년 4개월의 시차를 두고 2005년 3월 31일 발표한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문제해결의 판단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방도를 서로 다르게 설정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 지금에 와서는 미국의 행동조치와 조선의 핵계획 포기가 맞물려 있는 일괄타결방식과 동시행동원칙은 전면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동결 대 보상’이라는 거래 방식도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개발계획은 동결할 수 있고 상응한 대가로서 보상문제를 논할 수 있지만 핵무기보유국사이에서는 그러한 주고받기가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선신보에 따르면 “불가침의 확약은 군사적 대결의 격화를 막고 어떻게 하나 전쟁을 피하자는데 목적을 두었지만 앞으로 조선은 핵무기보유국으로서 지난 수십년간 핵위협을 가해온 미국에 대하여 현상유지가 아닌 근원적인 변화를 촉구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북한은 “군사적 대결의 해소를 위하여 선언차원에 머무르지 않는 실질적인 행동 즉 무력삭감으로 전쟁의 요소를 없애버리는 단계에 곧바로 들어서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게 된 조건에서 핵문제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풀어나가야 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미국과 북한이 핵무기보유국의 평등한 지위에서 동시행동을 논한다면 그것이 곧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방도를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조선신보를 통해서 “조선인민은 오늘의 상황을 미국과의 대결을 총결산하는 결정적 시기로 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핵무기보유선언을 한 지금이 북․미사이의 핵공방전이 최후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북한은 6자회담의 성격을 군축회담으로 바꿔 동북아시아지역의 정치군사적 구도인 ‘냉전구도’의 전환을 가져오는 전환점을 마련하고자 한다. 북한은 군축회담 제안이 “조선측에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담보하기 위한 구상과 결단이 이미 준비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밝혀 2차 대전 이후 60여년간 지속되고 있는 ‘냉전구도’ 해체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마련 중임을 시사하고 있다.

북한은 노동신문 4월 13일자 논평 “지역안보문제에서 미일을 배제하여야 한다”에서 최근 미국이 동북아지역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들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꼽고 있는 미국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부시 행정부가 동북아시아 안보전략 실현을 위해 미국, 일본, 한국 대 북한, 중국의 대결구도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는 것, 핵문제와 인권문제 등을 구실로 북한을 고립시키고 중국을 압박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미국이 지역정세를 긴장시키는 것 등이다.

북한은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이 없어진 오늘 동북아시아에 냉전구조가 계속 존재하고 있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주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그것을 계속 유지 강화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의 동북아시아 《안보》 전략은 다름 아닌 냉전시기 유물로서 아시아인들끼리 싸우게 하려는 반동적인 전략”이며 “미국이 일본의 군국화와 영토팽창야망을 적극 조장시키고 있는 것도 이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은 동북아시아지역의 안보와 평화를 교란하는 기본장본인이다”라고 북한은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북한은 “동북아시아의 안보는 이 지역에서 모든 침략무력이 제거될 때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동북아시아지역에서 안보를 이룩하자면 지역나라들이 공동으로 이 지역에 배치한 미군과 모든 살인무기들, 전투기술기재들을 철수시키고 미국의 간섭책동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와 함께 일본의 군국화 책동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미국의 전쟁수단들을 철수시키고 일본의 군국화 책동을 막는 것이 오늘 동북아시아에 조선되고 있는 전쟁위험을 가시고 지역안보를 구축하기 위한 기본방도로 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동북아시아 안보보문제에 이해관계가 있고 땅이 붙어있는 나라들은 서로 모여 앉아 안보문제를 토의하며 미국과 일본을 안보문제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북한은 동북아 대륙세력과 반도세력이 해양세력인 미국과 일본을 배제하고 안보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최근 북한은 미국이 남한에 설치한 ‘유엔군사령부’의 역할강화를 통해서 다국적군의 유사시 자동개입을 실현하려고 한다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수 있다. 북한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은 《유엔군사령부》를 다시 부활시켜 조선반도문제를 유엔과 결부시킴으로써 6자회담이 깨질 경우 핵문제를 유엔으로 끌고가 우리 공화국(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를 손쉽게 취하고 《유사시》 조선전쟁에 《유엔군》의 모자를 쓴 다국적군을 자동적으로 개입시키는 방법으로 북침야망을 기어이 실현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Ⅵ. 맺음말

한반도를 둘러싼 현재의 북핵위기는 미국의 세계전략과 북한의 생존전략의 충돌, 동북아 냉전구조의 유지세력과 냉전구조 해체세력의 갈등,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경쟁과 동북아에서의 새로운 질서구축에 유리한 고지확보 경쟁 등으로 단순화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통해서 동북아 냉전구조를 해체하느냐, 아니면 북핵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지속하면서 ‘신냉전질서’로 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2002년 10월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북한과 미국은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치킨게임(chicken game: 겁쟁이게임)을 해왔다. 북한은 그들의 핵능력을 과장하면서 ‘말로 하는 위기조성전술’을 지속하면서 마지막 카드인 핵보유 선언에까지 이르렀다. 한편 미국은 북한의 핵능력에 대해서 때론 과장하고 때론 무시하면서 북한에 리비아모델에 따른 선핵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핵보유선언의 의도가 북한 최고지도자의 말을 통해서 확인된 이상 미국도 북한의 ‘진의’를 믿고 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북핵문제는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에 북․미 양국이 공존에 기초한 협상을 추진하지 않는 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주고, 북한도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북한은 무엇보다 핵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국가운명이 좌우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북한은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장기 생존하느냐, 아니면 핵문제로 북-미 갈등을 지속하면서 체제위기가 심화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북한지도부가 핵문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하고 체제위기가 지속될 경우 북한주민들은 김정일정권의 지도력에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고난의 행군’을 지속해왔던 북한주민들은 몹시 지쳐있다. 반복된 희생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현실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북한주민들은 좌절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부시 2기 행정부와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경우, 군사 우선의 ‘선군정치’를 뒤로하고 경제우선의 개혁․개방 조치를 본격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핵문제 해결과 함께 미국, 일본 등 서방국가들과 관계를 정상화할 경우 북한은 ‘불량국가’에서 ‘정상국가’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핵문제로 남북정상회담 이후 정착돼가던 한반도문제의 당사자해결구도가 훼손되고 한반도문제의 국제화가 촉진되고 있다. 우리 정부로서는 다자안전보장의 구체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북한이 더 이상 ‘추가적 상황악화 조치나 행동’을 하지 않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서는 북한의 핵실험 등 핵 관련 추가 활동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의 ‘추가적 상황악화 행동’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미국 또한 북핵문제의 안보리 회부나 제재 등 북한을 자극하는 ‘추가적 조치’를 취하는 데 신중해야 할 것이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북핵위기 하에서도 남북이 주도하는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일정 정도 진전시켜야 할 것이다. 북한도 최근 냉전구도 해체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1999년 가을에 구체화한 페리 프로세스(보고서)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개입과 확대정책(engagement and enlargement policy),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김정일 정권의 생존전략 사이의 이익의 조화에 따라 만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다. 특히 페리 프로세스는 김대중 정부의 ‘냉전구조해체구상’을 미국이 수용하여 만든 것으로, 페리의 주장(2005년 4월 9일 간담회)에 의하면 일종의 ‘임동원 프로세스’라는 것이다. 따라서 참여정부는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제2의 페리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련 국가들의 이익의 공통점을 찾아 우리 정부가 창의적인 안을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북한과 미국을 설득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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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이다.
* 이 글은, 아시아 사회과학 연구원이 4월 29일 주최한 ‘동북아 균형자론’ 관련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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