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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평화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국가전략

김기정 (기사입력: 2005/05/14 18:18)  

1. 서론

동북아 국제질서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유럽의 국가들이 공존과 협력의 차원을 넘어 통합으로의 길을 걷고 있는 반면, 동북아 지역은 여전히 19세기 이래의 갈등과 대립의 역사적 유산이 지배하고 있다. 현시점, 동북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지속적 불안정(sustained security), 불신과 대립의 역사적 기억 (historical memory of distrust and confrontation), 그리고 제도적 장치의 부재 (lack of institutional settings)로 집약된다. 동북아 지역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 군비증강의 속도가 가속화되어가고 있는 지역이며, 이에 따라 지역질서는 전반적 불안정한 특징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또한 최근 한-일간, 중-일간 역사인식 문제와 관련하여 외교적 긴장감이 가중되고 있는 이유는 이 지역에서 대립과 분열의 역사를 아직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동북아 지역의 안보질서를 담보할 수있는 다자간 안보기구는 아직 태동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배타적 성격의 양자동맹을 축으로 대결지향적 세력균형(antagonistic balance of power)이 지역질서의 중심에 있다. 새로운 동북아 미래상을 구축해야 한다는 당위의 목소리는 높으나 현실적 기제들은 여전히 병행되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의 현존 질서를 만들어 내고 유지함에 있어, 더 나아가 새로운 미래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 미국의 역할은 핵심적이다. 미국은 이른바 “운전석에 앉아 있는” (sitting in a driver's seat)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세계정치의 구도에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패권적 위상에서 기인한다. 이에 따라 미국이 판단하고 있는 국제적 평화 및 안정에 관한 인식과 의도가 동북아는 물론 세계질서의 미래상을 결정하는 핵심적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전제해야 하는 점은 어떤 한 국가의 의도나 정책기조가 -- 비록 그것이 패권적 지위에 있는 국가라 할지라도 -- 지역질서의 미래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고정된 값,” 즉 상수(常數)는 결코 아니다. 요컨대, 국가의 대외적 기조는 끊임없이 제약(constraints)과 기회(opportunities)라는 양면의 축에 의해 가변의 공간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탈냉전기 이후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세계질서의 핵심적 구성내용과 그것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평화전략의 특징을 살펴보려 한다. 아울러 세계질서의 한 부분으로서의 동북아 지역에 미국은 어떠한 전략으로 지역질서의 안정과 평화를 구상하고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Ⅱ. 21세기 세계질서와 미국의 세계전략

냉전이 끝난 후, 미국 세계전략의 목표는 이제 뚜렷해 보인다. 그것은 현존 세계질서의 유지이며, 그것의 토대가 되는 미국의 패권의 보존과 확대다. 냉전기간 동안 자웅을 겨루었던 소련이 몰락함으로써 세계정치의 권력구조적 측면에서 미국의 지위에 도전하거나 그것을 능가할 국가가 당분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한 지위를 미국은 보존하고 확대재생산하면서 현존 미국 중심의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것이 현시대 미국이 지향하고 있는 전략의 기본 목표다. 특정 국제질서가 유지되는 가운데 비용보다는 이익을 많이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국가들이 외교적 목표를 현존 질서 유지에 두는 것은 당연하다. 이른바 질서 만족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처럼 현 국제질서의 정점에 서 있는 국가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론적 관점에서 볼 때 국제(세계)질서는 크게 두 가지의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인식적 구조이며, 다른 하나는 권력적 구조다. 인식적 구조는 국제관계의 운용의 원칙과 규칙에 관한 관념(ideation)적 영역이다. 국제평화와 질서의 안정에 관한 인식적 기준도 여기에 포함된다. 대개 이러한 국제관계의 제반 원칙은 패권적 지위에 있는 국가가 제공하며, 그것에 대한 국가들간 인식적 공감대가 국제관계를 운용하는 인식적 토대가 된다. 패권국가는 자국이 제공하는 국가간 관계의 제원칙에 관한 인식이 국가들간 합의와 공감대를 이루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며, 경우에 따라 강압적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21세기 초엽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질서에서 국가간 관계의 원칙에 대한 인식과 관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본주의 자유무역의 질서이며, 다른 하나는 민주평화론이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 자유무역 질서의 유지 원칙에 대해서는 냉전기 이후 더 이상 위협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냉전기동안 세계자본주의 질서에 가장 위협적이었던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현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었다고 판단한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공고화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화의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2002년 발표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의 곳곳에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의 원칙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다. 민주평화론은 국가의 정치체제 유형이 국가간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거로서 국제평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이 국제적 수준에서 선행되어야 한다는 인식이다. 이에 따라 미국 외교정책에는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 즉 “자유의 확산”이라는 목표가 설정되어 있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 인권문제가 미국 외교의 주요한 현안이 되어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며, 국가안보전략의 현안으로서 “사회의 개방” “민주주의 기반구축을 위한 개발의 혜택”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본주의 무역질서와 민주평화론이라는 두 가지 인식은 이미 탈냉전기 초반 클린턴 행정부의 “개입과 확대정책” (engagement and enlargement)으로 윤곽을 드러낸 바 있다. 이제 그러한 국제질서의 원칙을 미국은 더욱 강화하려는 추세다. 이러한 질서 원칙에 대해 세계의 몇몇 강대국들은 “충분히” 동참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들을 “우방국”으로 간주한다. 반면, 아직 소수의 몇몇 강대국들은 미국적 가치에 대해 “충분히” 동의하지 않고 있다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른바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현존 국제질서의 불만족국가, 혹은 잠재적 불만족국가인 셈이다. 그들 국가들을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질서의 원칙에 동참시키려고 하며, 그것을 미국은 “국제체제로의 건설적 통합의 과정” (a constructive course of integration into the international system)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잠재적 불만족 강대국들은 중국, 러시아 등으로 간주하고 있으나, 민주주의 확산에 대해서만 다소 입장이 다를 뿐, 시장경제, 반테러, 비확산 등의 현안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통의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탈냉전기 이후 미국은 자유무역과 자유의 확산에 근거한 세계질서를 유지하고 심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질서를 주도해 나가고 있는 미국에게 가장 중대한 평화 위협요소는 테러와 대랑살상무기 (WMD)의 확산이다. 미국 자신의 표현대로 이러한 “새로운 위협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10년 이상이 걸렸으며” 이러한 인식은 특히 9-11 이후 더욱 명료하게 부각되었다. 현존 세계질서의 안정적 유지를 위협하는 이러한 요소들은 곧 미국의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요소로 간주된다. 냉전기 안보위협요소는 사회주의 국가군의 존재였고, 그들의 이념적, 정치적 확장에 대한 우려였다. 그것에 대한 미국의 대응전략은 군사적 수단에 의한 봉쇄 (containment)였다. 냉전이 종식 된 후 미국이 새로운 위협으로서 비대칭적 안보위협, 즉 테러문제에 주목했고, 이와 함께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우려했다. 특히 테러와 대량살상무기와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세계질서의 유지에 가장 위협적 요소이며 동시에 미국의 치명적 안보위협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하고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이 비국가행위자인 테리집단과 연계될 때 세계질서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른바 “불량국가” (rogue states) 혹은 “악의 축” 국가들로 명명된 일련의 국가들이 그러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해 군사적 행동을 감행한 것은 그러한 우려의 방증이었다.

Ⅲ. 세계질서 유지를 위한 미국의 전략적 수단

현존 세계질서의 안정적 유지, 즉 미국이 간주하고 있는 국제평화와 관련하여 주목해 봐야 하는 점은 현존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수단에 관한 것이다.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세계질서를 유지하고 확대시키기 위하여 미국이 의존하고 있는 수단은 근본적으로 군사적 수단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세계1위의 군사강대국이다. 2002년 기준 미국의 국방비는 3,296억불로 단연 최고이며, 제2위 국가인 중국 (484억불)보다 7배 가까이 더 많다. 제2위인 중국부터 13위 이스라엘 (94억불)까지 12개 국가들의 국방비를 합친 것보다도 많은 액수다. 이러한 군사적 우위는 미국 패권전략의 토대이며 원동력이다. 더욱이 미국 외교는 2차 대전 이후 군사화의 경향을 보여 왔다. 사실, 냉전기간 동안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미국이 선택했던 수단도 군사적 수단이었다. 소련에 대하여는 핵 억지 전략을 통해, 유럽에 있어서는 NATO를, 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는 양자동맹 (미일동맹, 한미동맹 등)을 기본 축으로 하는 안보체제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군사화를 통한 미국 패권의 유지 경향은 탈냉전 이후 더욱 강화되어 가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미국이 해외에서 보유하고 있는 해외 군사기지들은 700개 이상에 달하며, 그것은 미국의 이익을 투사하는 거점이 되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은 힘에 압도적 군사력의 우위에 근거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이의 전략적 투사를 통하여 현존 세계질서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생각하는 “평화”란 “힘에 근거한 평화” (peace through strength)라는 특징을 가진다. 보통 국제관계에서 국가가 평화를 강구하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무제한적 자기방어 (unlimited self-defense)이며, 둘째는, 제한적 자기방어 (limited self-defense)의 방법이고, 셋째는, 국제안보(international security)를 통한 방법, 그리고 전쟁의 폐지 (abolition of war)를 통한 평화의 확보방법이 있다. 이 중에서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평화는 첫 번째 유형에 가깝다. 문제는 무제한적 자기방어를 통한 평화, 즉 힘에 의한 평화확보의 방도는 국제관계에서 안보 딜레마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자국의 평화를 위해 구가하는 조치가 타국에게 위협의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평화는 자의적이고 독단적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러한 점은 미국의 경우에도 관찰되는 점이다. 9-11사태 이후 그러한 평화 위협 요소들에 대한 미국의 대응전략은 선제공격론과 군사변환 (military transformation) 정책으로 구체화되어 추진되고 있다. 냉전기 동안 미국의 군사전략, 즉 미국의 억지 (deterrence)전략은 영토성에 기반하고 있는 개념이었다면 영토성에 기반하고 있지 않는 위협세력들, 즉 테러집단에 대한 대응책이 선제공격론이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고 위치가 수시로 변하는 위협대상에 대해 억지전략은 더 이상 효과가 없으며, 이에 따라 미국 및 미국의 동맹국들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적들을 미리 공격하여 안보위협을 사전에 제거하겠다는 전략이다. 선제공격론으로 상징되는 부시 독트린이 일방주의 (unilateralism)라는 성격을 띠면서 세계적 비판에 직면한 것도 미국의 평화전략이 갖는 독단성 때문이다. 또한 테러에 대해 선제공격론에 입각한 군사적 방도는 또 다른 테러를 양산하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비판받는다.

선제공격론과 함께 미국이 전개하고 있는 군사변환전략은 1990년대 초반이후 군사혁신(RMA: 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이 구체화되면서 미국의 군사전략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전략이다. 군사력 운용의 기본개념과 능력, 인력 및 조직을 새롭게 조직하여 미국의 안전과 국제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다. 군사변환전략의 핵심은 군사의 하부구조와 체계를 개혁하여 군사를 합리화하고 비용을 삭감하는 것과 새로운 정보화기술을 도입하여 군사의 효율성, 유연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군사력의 재조정이다. 특히 비대칭적 위협요소들에 대한 대응전략으로서 기민성과 이동배치성, 유연성 등이 강조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재배치계획 (GPR: Global Posture Review)은 그런 관점에서 추진되고 있다.

Ⅳ. 군사력 투사방법과 방법론의 문제

그렇다면 세계질서를 주도해 나가는 패권국가로서, 또한 그 패권을 군사력에 기반하고 있는 미국은 군사력의 투사방법과 관련하여 어떻게 미국이 구상하는 “평화”를 추진하려고 하고 있는가? 두 가지 관점에서 논의가 필요하다. 하나는 군사력 투사의 방법에 있어 어떠한 전략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가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군사력 투사 방법을 포함, 미국의 세계적 위상을 주도해 나가는 외교적 기조에 대한 철학적 문제다. 현시점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세계전략에 있어 전자에 대해서는 큰 논쟁거리가 없어 보인다. 요컨대 미국의 동맹전략이 그것이다. 세계 테러리즘을 분쇄하고 미국 및 미국의 우방에 대한 공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동맹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동맹은 미국이 제시하는 세계전략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국가들과의 군사적 협력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테러와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나토와 아시아에서의 양자 동맹 (미일-, 한-미, 미-호주 동맹) 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또한 미국의 동맹전략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군사변환전략과 맞물리면서 기존의 붙박이형의 전진배치전략 개념을 수정하고 신속이동배치개념과 신속전환배치 개념 등을 새로운 동맹운용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 미국의 전력을 유연하게 투입, 이동, 철수할 수 있도록 동맹국들에게 법적, 제도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미국은 전 세계 미군 기지를 4단계로 재분류하여 재편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1단계는 전력투사거점 (PPH: Power Projection Hub)로 대규모 병력과 장비의 전개거점이다. 주로 미국 내 기지들을 의믜하며, 해외에 있어서는 영국, 괌, 일본, 호주 등이 고려된다. 2단계는 주요작전기지 (MOB: Main Operating Bases)이며, 대규모 병력이 장기 주둔하는 상설기지다. 3단계는 전방작전거점 (FOS: Forward Operating Sites)으로 소규모 상주병력으로 유사시에 대비한 기지다. 마지막 4단계는 최소한 시설만 유지하는 협력적 안보지점 (CSL: Cooperative Security Locations)이다.

미국의 새로운 동맹전략이 거의 윤곽을 잡아가고 있는 것에 비해, 미국의 위상유지의 방법에 관한 철학적 문제는 아직 논쟁인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유지함에 있어 주요 강대국들과의 외교적 관계에 대한 논쟁이다. 두 가지의 상반된 논점이 있는 바, 하나는 “제국”의 전략이며 다른 하나는 “다자주의” 전략이다. 제국전략론은 근대적 인식으로 다가올 미래의 국제관계를 관리할 수 없다는 판단의 소산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국가(nation-state)는 국제관계 영역에서 나타난 근대성의 표상이었다.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 이후 국제관계의 기본 단위로 국가가 등장하였고, 국가의 주권이 핵심 가치였다. 그러나 최근 세계화의 추세가 강화되면서 근대적 주권개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국경을 넘어서는 현안, 이를테면 인간안보 (human security) 개념의 등장, 테러와 같은 탈영토적, 탈근대적 위협의 등장, 그리고 초국경적 사이버공간의 대두 등의 현상이 나타났고, 그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국제관계를 기존의 국가주권의 개념으로 접근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같은 탈근대적 현안을 다루기에는 국가의 기능이 약화되어 있고,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국제관계는 근대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전환기에 있다고 판단한다. 이에 따라 전지구적 공공재를 제공하는 주체가 필요하며, 그 임무를 미국이 맡아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이 제국전략론의 핵심이다.

이에 반해 다자주의 전략론은 현존 국제질서가 아직 근대 국제관계의 패러다임을 넘어서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이 제국의 길을 추구하다보면 반미동맹의 결성을 부추기게 되고 이에 따라 오히려 미국의 지배력이 약화되어 패권의 지위조차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또한 이미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선제공격론과 같은 개념이나 유엔의 기능을 무시하는 일방주의적 외교로는 적절한 방도를 찾아내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미국이 선제공격론의 위협을 강화하면 그 대상이 되는 국가들이 더욱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북한의 예가 그러하다. 따라서 세계 주요 강대국들과의 네트워크 연결의 중심에 미국이 서야하며 미국의 문화와 가치에 대한 세계적 동의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평화적” 세계질서 구축 과정에 대해 미국 내의 정치적 논쟁과 판단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좁게는 미국 정치내 공화당 vs. 민주당간의 정치적 대립이 일차적 결정요인이 될 것이며 넓게는 향후 미국의 외교적 행위에 대한 세계의 대응태도에 대한 미국의 판단이 전략 선택의 토대가 될 것이다.

Ⅴ.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대한 미국의 태도

9-11 이후 미국이 간주하는 안보 위협요소는 테러와 대량살상무기 확산인 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그러한 위협요소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국은 군사적 대응방법을 선제공격론과 군사변환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아울러 효과적인 군사력 운용을 위해 동맹국들과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외교의 골격은 동북아 지역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의 관점에서 미국이 동북아에서 단연 주목하는 국가는 북한이다. 북한은 1993년 이후 핵개발 의혹으로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을 목표로 하는 미국의 주요 관심대상이 되었다. 1차 북핵 위기에 대해서는 1994년 제네바 합의틀로서 마무리되는 듯하였으나 2002년 핵위기가 재연되어 제네바 합의틀은 붕괴되고 6자회담의 제도적 틀로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고 있으나 아직 답보상태에 있다. 이러한 답보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은 지난 2월 외무성 성명으로 핵보유를 선언하여 다시 파국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1994년 미국과 북한의 합의는 체제보장과 비확산이라는 조건의 교환이었다. 양국이 맞교환할 수 있는 이익을 상호 확인한 것이 1994년 합의틀이었고 6자 회담도 같은 맥락에서 존재해 왔다. 따라서 체제보장↔비확산의 이익교환의 범위를 넘어서는 구도는 보다 복잡한 해법을 요구하게 되어 있었다. 더욱이 미국은 자유의 확산이라는 세계질서의 원칙을 북한에 대해 적용하게 되면서 북한의 체제변화 (regime change)를 요구하였다. 이렇게 되면 1994년 합의틀의 복원은 불가능해지는 구도다.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동참을 거부하는 불량국가의 대표적 사례다. 북한은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제어하려는 미국에 가장 직접적 반기를 들고 있는 국가이며, “폭정의 거점”의 하나로 지목받고 있는 국가다. 이러한 북한의 행태에 대한 미국은 군사력 사용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대안에서부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PSI: 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북한 인권법 등의 방법을 통해 강압적 대응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1994년 형태의 보상과 핵폐기에 관한 이익 교환 구도의 부활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야 하지만 북한의 핵위협 상황을 이용, 동북아에서 미사일 방어전략 (MD)의 구축, 이를 통한 미-일의 결속강화 등의 대안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군사적 수단을 강화한 형태의 동북아 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미국과 중국간의 갈등구조를 강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며, 그것은 북방삼각관계 vs. 남방삼각관계간의 대립구도인 냉전형의 대립질서로 복귀를 의미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동북아 국제질서의 미래는 북한 핵문제에 해결방법, 특히 미국의 전략적 판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질서의 동북아판에 미국이 가장 중시하고 있는 전략은 역시 미일동맹의 강화에 기반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기반한 세계질서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파트너로 인식한다. 아울러 민주주의 확산에 일조하는 동류(同流)의 국가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일본을 세계적 차원에서 그리고 지역적 수준에서 “지도적” 역할을 해야 할 국가로 간주한다. 미국은 탈냉전기에 접어들면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일본과의 협력 체제를 거듭 강조해 왔다. 일본의 정상국가론 주장을 지지하고 있으며 일본도 이에 부응하여 1994년 이후 급속히 미국에 경사하는 전략을 유지하면서 동북아에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유엔 안보리 진출에 대해 미국이 지지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도 미일협력의 표상이다. 요컨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의 운용원칙과 그것에 기초한 평화추구의 방법에 가장 선두에서 추종하는 국가가 일본이다. 일본은 동북아 지역에서 일본의 안보에 가장 위협적 요소로써 중국과 북한을 들고 있다. 이러한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국의 군사력에 편승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동북아에서 동맹전략에 기반한 지역질서의 안정과 평화추구전략에 관하여 미국이 또 하나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동맹국은 한국이다. 최근 50년의 한미동맹은 성공적 동맹이라고 평가 받아 왔다. 그러나 현재 한미동맹은 재조정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50년 동안 두 국가관계에서 변화된 환경을 어떤 형태로든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재조정 국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한국의 괄목할만한 국력성장이 재조정을 불가피하게 만든 하나의 요인이며 이에 따른 인식적 요인의 변화, 즉 한국 국민의 자긍심 고양이 한미동맹에 존재해 왔던 제도적 불평등 요소를 재조정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한편,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9-11 사태 이후 군사변환전략을 통한 동맹운용전략이 변화하게 되면서 그것에 상응한 한미동맹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 결과, 용산 주한미군기지의 한강이남 이전과 인계철선 개념을 토대로 했던 붙박이형 주한 미군의 운용개념을 수정하려 하고 있다. 아울러 해외 주둔 미군의 운용개념 변화에 따라 주한미군의 한국 입-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을 요구하고 있다. 냉전기동안 주한미군은 동북아 전진기지로서 한반도에서 북한의 남침을 억지하는 것에 주안점이 두어져 왔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전략이 봉쇄나 억지개념에서 안보위협에 대한 선제공격론으로 바뀌게 되면서 주한 미군의 역할에 대한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대량살상무기 확산이나 테러의 배후 집단으로 북한을 보는 인식경향이 강화되면 주한미군의 운용이나 한미동맹의 역할도 그것에 맞추어 변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작계 5029와 관련된 한미간 논란이 나타난 이유도 향후 주한 미군의 역할이나 한미동맹의 적용 범위와 관련하여 논의와 조정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관련된 또 하나의 문제는 한미동맹이 지역적 안정에 일정정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논리로 확대될 때 주한미군은 물론 한미연합군이 지역분쟁 (예컨대 중국-대만간 무력분쟁)에 개입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원치 않는 지역분쟁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과 미국 양국이 동맹유지의 전반적 틀에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으나 지역안정 및 평화를 위한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 한국의 전략적 이익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바로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 문제다.

동북아에서 또 하나의 강대국, 중국에 대해서는 미국은 협력과 긴장의 두 가지의 정책기조를 운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양국의 외교적 관계에 있어서는 외형적으로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외교정책 관계자의 표현을 빌면 미국은 “지난 30년 동안 어떻게 하면 중국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기반 한) 국제체제 안으로 유도하느냐를 고민해 왔고” 마침내 중국은 그 체제 “안으로 들어 왔다”는 것이다. 중국은 마오이즘 (Maoism)의 교조주의를 시장경제로 대체하였고, “공산주의 대신 컴퓨터를 수출하는”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자유무역질서에 중국이 통합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미국은 중국이 세계질서 강화에 건설적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는 아직 유보조항이 존재한다. 미국이 내세우는 현존 세계질서의 원칙과 가치에 아직 중국이 “충분하게” 통합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지 않다. 이를테면 인권신장 문제나 “법치주의 원칙” (the rule of law), 그리고 관세인하나 투자 장벽의 해소 등이 그러한 조건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협력과 견제의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의 원칙에 불만족국가, 혹은 잠재적 불만족 국가로 남아 있는 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중국이 장기적으로 세계평화 및 지역질서의 안정적 유지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국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제적 태도는 중국의 경제적 급성장에 대한 우려와도 맞물려 있다. 현재의 페이스대로 중국이 경제성장을 계속하게 될 경우 미국의 지배적 위치에 강력한 도전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동북아에서 미국아 추진하는 미일동맹전략이나 미사일 방어 전략은 기본적으로 대중 견제책의 일환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는 대만 문제와도 직접 관련되어 있다. 미국은 대만에 대한 지지구도를 계속하면서 중국의 무력통합 가능성을 견제하고 있다.

Ⅵ. 결론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동북아 평화, 즉 현존 국제질서의 안정적 유지에 대한 위협요소는 단기적 관점에서 북한과 관련된 것이다. 우선, 북한 핵문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체제에의 도전이며, 김정일 정권의 정치적 폭정은 민주주의, 자유의 확산에 게반한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아울러 대내외적 위기에 직면한 북한의 붕괴 가능성도 불안정 요소 중의 하나이다. 북한이 내폭(implosion)이건 외폭(explosion)이건 간에 김정일 정권의 붕괴가 시작되면,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붕괴가 임박한 시점이나 혹은 정권 붕괴라고 판단되는 시점에 미국은 북한 지역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개입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생기는 난민문제는 동북아 지역에 중요한 불안정 요소가 될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당면한 문제는 북한 핵문제다. 군사적 우위에 패권적 질서를 유지하고 있고, 유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군사적 해결 방법을 결코 배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러한 코스를 선택할 경우, 미국이 구상하는 “평화”의 개념과 방도에 대한 각국의 이해 차이가 동북아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미국의 관점에서 동북아 지역의 중장기적 불안정 요인은 중국과 관련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은 현재 중국에 대해 협력유도와 견제의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현시점에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의 제반 원칙에 대해 도전한다기보다 적절한 속도로 편승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적 국제질서의 원칙에 대해 중국이 저항적 태도를 견지하는 가운데 국력을 성장시켜 나간다면 협력유도보다는 견제의 방향으로 무게추가 점차 옮겨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현재로선 이러한 점은 양국관계의 외교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현시점에서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책은 중국-대만간 군사적 긴장관계가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으며, 일본과 한국을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체제 속에 결속시키려는 태도가 다른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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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다.
* 이 글은, 아시아 사회과학 연구원이 4월 29일 개최한 ‘동북아 균형자론’ 관련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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