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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평화에 대한 중국의 입장과 전략

참여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관련

신상진 (기사입력: 2005/05/14 18:45)  

Ⅰ. 머리말

남북한과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역외국가인 미국 등으로 구성된 동북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시현하고 있는 지역으로 지칭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미국을 위협할만한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였으며, 러시아는 대내 혼란 극복과 국제 원유가격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아시아에서 강대국 지위 회복을 모색하고 있다. 남북한도 2000년 정상회담 이후 개성공단 개발사업 추진과 도로와 철도연결을 모색하는 등 경제교류·협력을 적극화 하고 있다. 세계경제 총량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에게 유럽 보다 한, 중, 일 등 동아시아국가가 경제적으로 더 중요한 상대가 되었다. 동북아 지역국 간 경제적 상호의존관계가 심화되고 있고, 아세안+3와 아·태 경제협력체(APEC) 등 다자 경제기구 내에서도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경제영역에서는 지역 국가간 교류·협력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으나, 동북아는 안보 면에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분쟁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남아 있다. 미국은 세계 군사비 총액의 50% 가까이를 지출하고 있는 군사 초강대국으로서 역내 동맹국과 안보관계를 강화하여 지역질서를 주도하고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려 하고 있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군사 강대국 상호간에 영토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정치적·역사적 불신관계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다. 2002년 10월 북한이 미국 특사에게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시인한 후 북핵문제가 세계 및 지역안정을 위협하고 있으며, 대만의 민진당 정부의 독립지향 노선과 중국의 「반분열국가법」제정 등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으로 대만해협에서도 언제 군사적 충돌이 폭발할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한·일 및 중·일 사이에 제기되고 있는 영토분쟁과 역사 갈등이 동북아 안보질서의 불안정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상호의존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긴밀한 경제관계가 지역국가 간 정치적 신뢰형성과 안정을 담보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그런데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종합국력을 강화하게 되면서 중국이 동북아 평화와 발전에 미치는 영향력이 현저하게 증대되고 있다. 2004년 중국의 국내 생산총액이 1조억 달러를 돌파하여 중국은 세계 6대 경제국으로 도약하였고, 대외 교역규모 면에서는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3대국이 되었다. 중국경제 규모의 확대는 동북아국가 경제에서 중국경제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중국경제는 아시아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작용하고 있고, 심지어는 10여년 간의 침체기에 처한 일본경제를 회복시키는 요인으로까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을 정도다. 1997년 동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 당시에 중국이 보여 준 책임 있는 경제정책은 지역경제 회복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으며, 2004년 4월 원쟈바오 총리가 경제긴축정책 필요성을 밝힌 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국가의 금융계가 큰 충격을 받았던 것처럼 중국은 지역경제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국가가 되었다.

동북아에서 중국의 정치·안보적 역할도 급속도로 증대되고 있다. 9.11사태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등 일방주의 외교를 전개하는 동안 중국은 과거 분쟁을 겪었던 지역국가들과 국경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 상하이협력기구(SCO)와 아세안지역포럼(ARF) 등 지역 다자안보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현상유지를 지향하는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북핵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3자회담과 6자회담이라는 다자회담 구도를 마련하여 위기관리가 가능하게 한 것도 중국의 외교적 노력 때문이었다.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이 중국에 대한 무기금수조치 해제를 추진하고 있다든가, 2005년 3월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동아시아 순방을 전후하여 미국의 동맹국인 호주와 싱가폴이 대만해협의 무력분쟁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동아시아에서 강화되고 있는 중국의 정치·안보적 영향력을 잘 나타내 주는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동북아에서는 여타 지역과 달리 갈등요인이 적지 않게 상존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에너지와 원자재 확보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참여정부가 미래 한국의 외교안보정책 지향점으로 밝히고 있는 ‘동북아균형자 역할론’은 변화되고 있는 동북아의 국제환경에 자주적으로 대응하고 북한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구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동북아질서에서 점차 비중이 증대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아 평화에 대한 입장과 전략을 분석하는 바탕 위에서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에 대한 중국의 입장과 예상반응을 전망하고자 한다.

Ⅱ. 중국의 동북아 안보질서 인식과 평화전략

1. 동북아 안보질서 인식

중국의 지도자들과 안보문제 전략가들은 동북아를 포함한 국제질서가 중국의 경제발전을 추구하는데 근본적 장애를 미치지는 않고 있지만, 불안정 요인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제질서의 다극화와 국가간 경제적 상호의존도의 심화가 국제질서 안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정책과 국제테러, 민족·종교 갈등, 에너지, 환경문제 등 비전통적 안보위협이 국제질서 불안정요인이 되고 있다고 판단한다.

지역국들이 경제발전을 최우선시 하고 있고 역내 경제적 활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동북아지역 정세악화를 방지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중국은 보고 있으며, 상하이협력기구와 아세안+3, 아세안지역포럼, 북핵 6자회담 등 다자안보기구들이 지역분쟁 예방외교 메카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이 참여하지 않고 있는 상하이협력기구와 아세안+3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역 다자안보대화를 주도해 나가고 있다. 중국은 이들 다자안보기구를 역내에서 미국의 양자 동맹외교를 약화·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동북아지역 안보환경에 대해 낙관적으로만 보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패권주의 정책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의 반테러전 이후 중·미관계가 현저하게 개선되었지만, 중국은 여전히 미국이 중국에 대해 견제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미·일동맹 강화와 역내 미군의 재배치 및 기동군으로의 역할전환은 다분히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중국의 안보문제 전문가들은 이해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2005년 2월 미·일 국방장관과 국무장관 간 2+2회담 결과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 사태를 공동전략 목표로 설정한데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해협 사태에 주일 미군이 직접 개입하고 일본이 이를 지원하는 상황이 가능해지게 됨으로써 대만의 분리 독립주의자들을 자극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 구축 정책도 기본적으로는 중국의 핵능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으로 중국은 판단하고 있다.

둘째, 중국은 일본정부의 정치·군사대국화 움직임과 일본 정치의 보수 우익화 경향이 동북아질서의 또 다른 핵심적인 불안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는 이미 미국의 반테러전 지원을 구실로 인도양과 중동지역에까지 활동범위를 확대하였고,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2004년 일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444.7억 달러에 달하는 군사예산을 지출하고 있는 등 군사대국으로 부상한지 오래되었다. 중국은 아직 보유하지 못한 이지스급 구축함도 일본은 4척이나 가지고 있다. 군사 강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은 2004년 11월 ‘신방위계획대강’에서 중국을 안보위협으로 명시하였다. 중국이 특히 일본의 정치·군사 대국으로의 부상을 우려하는 이유는 일본이 진정으로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인하여 중국과 일본 간에는 2001년 이래 정상 간 교환방문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중국은 일본을 신뢰할만한 상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일 간에는 과거사문제로 인한 갈등뿐만 아니라 지역질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 그리고 에너지 확보를 둘러싼 이해대립 때문에 긴밀한 경제교류에도 불구하고 정치·안보적 마찰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정부가 우익의 입장을 대변한 역사교과서를 검정해 주고 민간인에게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을 허용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중·일 간 갈등은 역사문제 뿐만 아니라 영토문제와 경제적 영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히 급속한 경제성장과 국제 유가의 상승으로 인하여 원유를 비롯한 자원 확보가 시급한 과제인 중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본 해상자위대의 활동범위 확대와 조어도와 동중국해에 대한 일본정부의 영유권과 관할권 주장은 중국의 안보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일부 중국의 안보전략가들은 동북아질서가 기존의 미국에 의한 패권질서에서 중·일에 의한 2강 체제로 변화되고 있다고 본다. 중국은 중·일간 대립구도가 동북아 안보질서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셋째, 중국은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 북·일간 대립과 갈등도 동북아의 중요한 안보위협이라고 본다. 북한체제 붕괴를 원하지 않고 있는 중국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안보위협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우려를 해소해 주어야만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지지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다. 북한의 핵무장이 일본의 군사력 증강의 구실로 작용할 수 있고 심지어는 대만의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2003년 1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였을 때에도, 쟝쩌민 주석은 북한의 행동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부시 미 대통령에게 분명하게 전달한 바 있다. 북한 핵위기가 발생한 이후 중국은 일관되게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 핵문제가 경제제재나 군사적 압박 수단 등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대북 압박정책은 북한의 체제안정을 위협하고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대내 경제건설과 정치·사회 안정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넷째, 대만 천수이볜 정권의 독립지향적 정책과 미·일의 대만문제 개입정책도 중국 지도부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안보위협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1980년대 덩샤오핑 시대부터 중국은 대내 경제건설과 반패권주의와 함께 대만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국가통합을 3대 국가정책 목표로 설정해 왔다. 신강과 서장지역에서 분리독립운동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지도부는 대만 천수이볜 정부의 독립 프로그램을 용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중국은 대만에 대한 미국의 군사무기 판매와 「대만관계법」등 대만에 대한 안보공약은 다분히 대만을 중국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최근 미국이 역내 주둔 미군의 기동군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도 대만해협 사태에 투입하기 위한 의도로 판단하여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2. 동북아 평화전략

21세기 중국의 국가전략의 핵심 목표는 대내 경제발전을 통해 ‘전면적 소강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국민들의 생활수준 향상과 중국의 국력증강을 통해 중국사회의 안정을 도모하고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중국이 실현하고자 하는 ‘전면적 소강사회’는 중국 국민의 소득수준을 2,000~3,000 달러 정도로 향상시키는 것을 상정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내 안정도 중요하지만 평화적인 주변환경 유지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동북아에서 중국의 외교안보전략은 자국의 경제발전에 유리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지역질서를 유지하고 창출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적어도 2050년까지는 경제발전에 국가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두면서 패권국인 미국과 관계악화를 방지하고, 국경을 접하고 있는 주변지역 국가들과 선린우호관계를 강화하며, 지역 다자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역내 분쟁 가능성을 예방해 나간다는 것이다.

동북아 평화와 안정유지를 위한 중국의 지역 외교안보전략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첫째, 중국은 대미관계를 대외관계의 핵심이라고 보고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행태를 비판하면서도 미국과의 관계악화 방지에 역점을 두고 있다. 중국 수출상품의 30% 가까이를 미국시장이 소화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의 관계강화가 중국의 경제발전에 불가피하며, 중국은 경제발전에 국력을 집중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중·미관계가 대립구도로 변화되면 중국은 군사부문에 많은 재원을 투입해야 하고 대만의 독립을 저지하는 데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전쟁 이후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군사기지를 구축하고 필리핀과 싱가폴 등 동남아지역에 군사력을 배치하여 중국을 서부와 남부로부터 위협을 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반테러전에 적극적으로 협력함으로써 대미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전에 대해서도 중국은 내심으로는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미국의 군사행동을 공개적으로는 반대하지 않고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중국은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위협을 느끼고 있지만, 이들 동맹이 지역 안정유지 기능도 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면서 양자관계에 국한하여 가능한 한 용인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중국은 역내에서 미국의 지위를 부정하는 현상타파 세력으로 비쳐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03년 이후 중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3자회담과 6자회담에 북한을 참여하도록 대북 설득외교를 적극 전개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도 대만관계에 대한 고려 때문이었다. 다자회담 구도를 제시하여 북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한 것은 한반도 안정유지와 중국의 지역 안보역할 강화를 위한 의도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중재요청을 수용하는 대가로 중국은 미국에게 대만의 독립을 저지해 주도록 요구하였던 것이다. 중국은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미국에게 협력함으로써 대만독립 저지에 대한 중·미간 공감대 형성을 모색하고 있다.

둘째, 중국은 주변국에 대해 선린우호협력 정책을 전개하여 역내 국가들과 관계개선에 힘쓰고 있다. 2002년 16차 당대회 정치보고에서 인접국과 ‘선린외교, 동반자관계 강화’ 방침을 천명한 바 있는 데, 이는 주변국과의 관계강화를 통해 주변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도모하고 중국에 대한 역내 국가들의 위협인식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중국이 주변국과의 선린관계 강화를 도모하려는 또 다른 목적은 중국의 주변국들이 미국의 반중국 봉쇄망에 편입되는 것을 예방하려는 데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동북아지역을 중국의 안보에 가장 중요한 전략지대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중 일본은 동북아에서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강대국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주요한 안보전략 상대다. 현재 중·일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조어도(센카쿠열도) 영유권문제와 동중국해 자원개발문제 및 일본의 대만해협 사태개입 입장 표명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지만, 중국 지도자들은 대일관계가 파국으로 발전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일본은 중국의 최대 교역국이며 일본기업은 중국시장에 666억 달러나 되는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등 중·일간 경제관계는 매우 긴밀하기 때문에 중국이 경제발전 기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대일관계 악화 일변도의 정책을 지속하기는 곤란하다. 또한 중국은 일본과 동아시아 지역 주도권 확보 경쟁을 벌이는 위치에 있지만, 안보전략 면에서도 일본과 관계악화가 중국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본다. 미·일이 동맹을 강화하여 중국과 대결을 벌이는 전략구도가 고착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일본과 안보대화를 전개하여 불신완화 노력을 추구할 것이다.

미국의 대중 견제전략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구축함으로써 미·일동맹에 대응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관계강화가 제3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중·러는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공유하고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주장하고 있다. 2003년 후진타오가 국가주석에 취임한 후 최초의 순방지로 러시아를 선택한 것도 중국이 그만큼 러시아가 가진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중국이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중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의 지속적 경제발전에 필요한 에너지와 원자재 확보 필요성 때문이다. 앙가르스크 유전의 송유관 부설문제에 있어 러시아는 내부적으로 일본이 요구한 나홋트카 노선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중국은 지선확보 노력을 진행 중에 있다. 보다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수입하기 위한 중국의 대러 외교공세는 지속될 것이다.

중국은 주변국 외교를 추진하면서 특히 동남아와 한반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중국은 2002년 10월 동남아국가들과 ‘남중국해 행동선언’을 채택하여 분쟁을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데 합의하였으며, 2003년에는 동남아우호협력조약에 비동남아국가로서 최초로 가입하는 등 동남아국가연합과 정치·안보적 신뢰를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중국은 일본에 앞서 동남아국가연합과 자유무역지대 창설에 합의하는 등 아세안+1과 아세안+3를 기반으로 하여 동아시아 통합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외교안보정책 기조는 북한정권의 안정유지, 한반도 긴장완화 그리고 한국과의 정치·안보관계 확대를 통한 영향력 강화에 있다. 중국과 한반도는 긴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정권의 붕괴와 같은 한반도의 불안정 상황은 중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에게 전략물자를 제공해 줌으로써 북한에서 혼란이 야기되는 것을 방지하고, 북한 핵문제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도록 외교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의 현상유지와 평화를 바라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한반도 안보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2개의 한국정책을 통해 남북한 모두에 대해 발언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6자회담 구도를 마련하여 북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관리하는 조정자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남북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서도 책임 있는 강대국으로서 평가를 받고 있다.

셋째, 중국은 지역 다자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역내 분쟁요인을 사전에 예방하고 갈등을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신안보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미·일동맹과 한·미동맹과 같은 양자 동맹을 통한 안보를 냉전시기의 안보개념으로 폄하하고 유엔과 지역 다자안보기구 등을 통한 협력안보를 탈냉전기의 새로운 안보개념으로 강조한다. 1994년 이래 중국은 아세안지역포럼, 상하이협력기구(당시에는 상하이 5개국회의) 그리고 아세안+3 등 지역 다자안보대화를 통해 지역국간 정치·안보적 신뢰를 강화하고 공동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북핵 6자회담도 지역분쟁을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협력안보의 한 사례로 간주하고 있다.

중국이 지역 다자안보대화에 적극 참여하고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시 인민폐 가치를 평가절하 하지 않고 태국을 비롯한 위기를 겪고 있었던 나라에게 차관을 공여해 주는 등 책임 강대국으로서의 이미지 창출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는 ‘중국위협론’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은 발전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지역 안보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평화정착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과거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신흥 강대국과는 달리 평화적인 방식으로 발전을 추구한다는 ‘평화굴기’ 또는 ‘평화발전’ 전략을 주창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력 증강과 평화지향 정책은 지역국들에게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개선시키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4년 헤샤쯔섬 영유권문제를 타결지음으로써 러시아와의 영토문제를 완전 해결하고, 2005년 4월 원쟈바오 총리의 인도방문 시 국경문제 해결에 관한 정치지도원칙에 합의하는 등 중국이 접경국들과 영토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유연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중국에 대한 주변국들의 위협인식이 크게 완화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신장된 경제력을 이용하여 주변지역 국가들을 중국경제에 의존하도록 만들어 이들을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편입시키고 있다. 동남아와 한국에서 특히 중국에 대한 이미지와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Ⅲ. 참여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정책

한반도는 중국대륙과 1,300 킬로미터가 넘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의 안보에 매우 중요한 전략지역이다. 따라서 중국은 중국과 한반도와의 관계를 ‘이와 입술의 관계’로 보고 1950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년 만에 연인원 백만 명이 넘는 인민해방군을 파병하여 북한정권을 유지시켜 준 바 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해양세력이 중국대륙을 침략하는 경로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에 중국은 한반도를 중국의 안보와 평화에 대한 ‘완충지대’로 인식하고 있다. 한반도가 미·일의 대중국 위협을 완화시키는 완충역할 또는 조정역할을 해주기를 중국은 희망한다. 주변 4강 모두 한반도의 역학구도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만, 중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한반도의 안보상황 변화에 대해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강대국이라고 하겠다. 주변 4강 중 중국이 가장 먼저 참여정부가 밝힌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에 대해 원칙적 지지입장을 밝히고 나선 이유도 한반도 안보문제에 대한 중국의 깊은 이해관계 때문으로 볼 수 있다.

3월 22일 노무현 대통령이 육군 3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밝힌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은 참여정부 출범 직후 제기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 구상에 이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구상의 연장선 상에서 제기된 것이라는 점에서, 우선 한국의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구상과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구상에 대한 기존 중국의 입장과 반응을 살펴 볼 필요가 있겠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의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구상에 대해 중국은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이는 당시 중국이 이미 동북지역의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는 북한(경제)을 포함한 동북아경제 통합과정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나름대로의 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2003년부터 중국이 본격적으로 ‘동북공정’을 추진해 왔다거나, 후진타오가 국가주석 취임 이후 러시아를 최초의 해외 순방국으로 선택하여 러시아 극동지역의 에너지 확보를 위한 외교노력을 전개하였던 사실들은 동북아의 전략적 가치를 중국이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4년 4월 김정일의 중국방문 이후 중국기업인들이 북한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이 북한을 중국의 경제적 영향권에 더욱 밀착시켜 중국 동북지역을 동북아경제권의 중심으로 발전시키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이 참여정부가 제기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구상을 적극 지지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동북아 경제공동체 건설 보다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의 경제통합에 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고 미국의 영향력이 강력한 동북아 보다는 동남아국가들이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통합에 대해 반대가 적고 중국에게 실익이 있다는 고려 때문에 2002년 11월 주룽지 총리가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하였을 때 아세안과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적극 제기하여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결국 한국은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구상을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동북아 경제허브’ 개념으로 설명하게 되었다. ‘화평굴기’를 통해 동아시아의 맹주로 다시 일어서려는 중국은 동아시아 시대를 변방에 위치한 한국이 주도해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7월 중국 칭화대학 강연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구상을 제시하였다.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북한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남북한간 교류협력을 확대하여 궁극적으로 남북한을 격리시키고 있는 38선이 한국에서 중국 그리고 러시아로 진출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미·일 공조체제를 바탕으로 중국, 러시아와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한다는 구상이다. 동북아 차원에서는 지역경제공동체와 평화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중국도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참여정부의 정책구상에 대해 원칙적으로 공감하는 입장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관변학자들과 지도자들은 참여정부의 구상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공개적인 지지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는데, 이는 다분히 북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간 힘의 균형이 한국에게 일방적으로 기운 상황에서, 한국의 통일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게 될 경우 한국에 의한 북한 (흡수)통일을 간접적으로 용인하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였을 것이다.

또한 2000년 민진당 집권 이후 중국은 대만의 독립을 저지하는데 대외정책의 큰 비중을 두어 왔는데, 대만독립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당시 국내 언론들이 참여정부의 동북아시대 구상을 한·미동맹에서 벗어나 외교적 독자성을 추구하기 위한 것으로 비판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중국은 미국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참여정부의 동북아시대 구상에 대해 공개적인 입장표명을 회피해 왔다.

그러면 중국은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외교안보정책 구상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구상은 ‘협력적 자주국방’(자강)과 ‘균형적 실용외교’(균세)를 양대 축으로 삼고 있는데, 중국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외교안보 구상이 일방적인 한·미동맹 관계로부터 어느 정도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과의 협력을 카드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평가한다. 미국이 북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문제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어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으로부터 자주적 공간을 확보하려 한다고 해석한다. 중국은 노무현 정부의 구상이 한국의 국익실현에 최선의 선택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며 조만간 미국이 한국에 대해 군사 및 외교적 압박을 가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은 중장기적으로 한반도가 적어도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중립화의 방향으로 변화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한국이 동북아에서 중·일 갈등을 조정하는 균형외교정책을 전개하는데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역사문제로 인하여 한·일이 갈등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볼 때, 중·일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은 정치적으로 일본보다는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윤광웅 국방장관이 서해상에서 해상 공동 수색훈련을 실시하고 군사핫라인 설치방안을 밝히는 등 중국과의 안보협력을 일본과의 협력관계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것도 중국의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사실일 것이다.

동북아에서 중·미간 대립구도를 감안해 볼 때,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한국이 역내 균형자 역할을 지향한다는 것은 미국이 한국을 중국견제 전략에 활용하기 어렵게 되는 상황 출현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국은 안보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특히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동북아지역 안정을 위한 기동군으로의 역할전환에 대해 한국이 분명하게 반대 입장을 보이게 될 것으로 보고 내심으로 고무적으로 판단하게 될 것이다. 지난 2월 일본이 미국과 함께 대만해협사태를 공동 전략목표로 설정한 후 중국이 일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한국의 ‘균형자 역할론’과 주한 미군의 대만해협 사태개입에 대한 반대 입장은 중국에게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참여정부의 외교안보정책 사령탑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와 동북아시대위원회는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은 한국이 한·미동맹을 기초로 하여 다자안보협력체제를 지향해 나가려는 구상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중국도 궁극적으로는 동북아에서 다자안보협력체 형성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 구상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문정인 위원장은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는 6자회담을 모태로 하여 6자 정상회담과 6자 외무·국방장관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중국은 6자회담 틀을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로 확대시키는 방안에 대해 원칙적으로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을 중국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6자회담을 모태로 한 다자안보협력체가 중국을 고립시키는 메카니즘으로 작동할 수 없다는 점과 6자회담이 참가국 전체의 합의에 의해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신안보개념에도 부합되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 다자안보협력은 아세안지역포럼과 아세안+3의 구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 기구는 미국에 의해서 주도되지 않고 동남아국가연합과 중국의 주도에 의해서 작동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다자안보협력체는 아세안지역포럼에 의해서 주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중국은 당분간 구속력을 가진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 형성에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한·미동맹을 기초로 하여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가 형성·운용될 경우 중국은 이를 미국이 주도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동북아균형자 역할론’에 대해 미·일이 비판적으로 반응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할 때, 미국은 한국에 대해 압력을 강화하고 일본과의 동맹을 더욱 중시하게 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일동맹의 강화를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에 따른 미·일동맹 강화 가능성을 우려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참여정부의 ‘동북아 균형자’ 구상을 내심으로 반기면서도 대미 및 대일관계를 대립구도로 고착화하려는 전략목표를 추구하지 않는 한 한국의 외교전략 구상에 대해 관망자세(靜觀其成)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Ⅳ. 맺는말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6·4 천안문사건과 동유럽과 소련 사회주의 붕괴라는 엄청난 위기상황에 직면한 후, 중국은 ‘韜光養晦, 有所作爲’(의도를 감추고 힘을 기르며, 필요할 때 할일을 한다)의 외교안보전략 지침을 마련하여 추진해 왔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의 경제제재와 무기금수조치 그리고 ‘和平演變’(평화적인 방법으로 점진적으로 체제변화를 추구) 전략에 봉착하여 중국은 외교안보전략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국력을 기르는데 집중하였다. 결국 중국은 동아시아의 경제 및 정치군사대국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으며, 국제사회에서 ‘중국붕괴론’은 이제 힘을 잃고 있다. 현재 동아시아를 비롯한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중국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자제할 정도로 중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후진타오체제 등장 이후 중국에서 ‘和平崛起論’이 새로운 외교안보전략의 담론으로 제기되었지만, ‘굴기’라는 개념이 주변국에게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중국의 지도자들은 곧바로 ‘和平崛起’ 대신 ‘和平發展’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중국의 이러한 신중한 외교안보전략을 원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서 중, 미, 일이 서로 역내 질서를 주도하기 위해 치열하게 각축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변국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구상 보다는 외교안보전략에서 모호성을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안보전략을 공개하는 국가는 대체적으로 미국 등 강대국들이다. 그 것도 대외 공개용은 절제된 내용과 표현으로 되어 있다. 특히 한반도에서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주변 강대국의 이익이 교차하기 때문에 세련된 외교안보전략을 필요로 한다. 자주적 외교안보정책 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좋지만, 미국 등 강대국과 달리 한국이 국제질서를 변화시킬 능력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국가간 이해관계가 심각하게 대립하는 경우 소프트파워가 가지는 효용성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한국이 국제질서를 리드해 나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한국이 지향해야 할 외교안보정책 방향은 주변 4강간의 갈등에 연루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은 주변 4강간 대립구도 속에서 외교안보 활동공간을 넓혀 나가야 한다.

현재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문제는 북한 핵문제다. 중·미, 중·일 갈등은 상호간에 경제적 의존도가 높고 외교안보 협력 필요성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교안보 실무자간 전략대화와 정상 간 회담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만독립 문제를 둘러싼 양안 간 갈등도 대만경제의 대중 의존도가 증대되고 있고 양안 간 정치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만해협에서 무력충돌이 발발하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반면 북한 핵문제를 다루기 위한 6자회담은 1년 가까이 중단되고 있고 북한은 계속 위기국면을 고조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북핵문제는 한국의 외교 활동공간을 확대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이 지연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미, 중 등 관련국들이 조기해결을 바라지 않고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핵문제로 인하여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므로 북핵문제의 조기 해결을 위한 관련국의 협력을 유도하는데 외교안보정책의 중점이 두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참여정부의 ‘동북아 균형자역할’은 동북아 지역차원의 문제보다는 일차적으로 북핵문제 등 한반도 안보문제 해결을 촉진하는데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중·미, 중·일간 갈등구조 속에서 균형자 역할을 추진한다고 할 때, 필연적으로 미, 일로부터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대미, 대일관계 악화를 바라지 않는 중국이 한국의 신외교안보 전략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나설 가능성도 높지 않다. 따라서 한국의 신외교안보전략 구상은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관련국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을 유도하는데 역점을 두고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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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광운대 중국학과 교수이다.
* 이 글은, 아시아 사회과학 연구원이 4월 29일 개최한 ‘동북아 균형자론’ 관련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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