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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무기 보유 선언의 파장 (19)

인도-파키스탄-북한의 핵개발 비교 ③

김승국 기자 (기사입력: 2005/05/24 21:33)  

Ⅲ. 핵개발의 배경

1. 인도

1) 국내의 배경

인도의 핵무장 추진에는 강력한 국내적 요구가 존재하고 있다...훌륭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인도가 국제사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년간의 식민통치는 인도인들에게 상당한 치욕감을 가지게 하였다. 따라서 인도인들은 치욕감과 독립 이후에도 지속되어 온 열등감을 극복하려하고 있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들은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인도의 이미지를 불식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인도인들은 인도의 힘과 능력, 그리고 위대함을 과시하는 수단으로써 핵기술과 우주과학 기술을 획득하기를 염원하고 있다.
엘리트들 역시 국제사회에서 인도의 위상과 흥정력을 강화시키는 데 핵무장화가 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도인들은 핵 프로그램, 특히 핵무장 프로그램을 그들의 국가능력과 기술발달의 척도로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시급한 경제발전 프로그램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인도 국민 대다수는 경제개발보다는 핵무장 프로그램에 더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1998년 핵실험 직후 수행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인도인들의 87%가 핵실험을 지지하고 있으며, 인도의 매중매체들도 핵실험을 위대한 과학적 성과라고 부추겼던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인도의 핵실험 추진에는 당시 인도 인민당 정권의 정치적 계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핵정책은 인도 인민당[BJP; 1998년 핵실험 당시의 집권 정당]이 내세웠던 가장 중요한 공약 중 하나로 연립세력 내에서도 이에 대한 상당한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핵무장에 대한 공약과 의지는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었고, 실제로 인도 인민당은 이를 추진함으로써 국민들의 합의와 지지를 획득하며 정권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고경희 2003, 94~97쪽)

1998년 당시 BJP의 국민적 지지기반은 매우 취약하였다. 핵실험은 BJP의 선거공약 사항이기도 했다. 따라서 핵실험은 이러한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인도의 핵실험은 정권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권 정수 1999, 54쪽)

BJP 정부가 핵을 선택하는 중요한 동기로 지적된 모든 요인들은 새로운 정부의 특징을 강조한 것들이다. 인도 내에서 카스트 제도를 둘러싼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갈등, 분파주의 운동, 실권과, 구조적 경제 침체 등은 파키스탄과 중국에 의한 핵무기 위협 못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바지파이[BJP 정권의 수상] 정부가 국내적 응집력을 획득하기 위해 핵실험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구병기 1999, 37쪽)

1973년 BJP 정당의 대변인은 “우리는 협박을 원하지 않는다. 핵무기는 우리에게 위신과 권력과 안정을 가져다 줄 것이다. 우리가 핵을 가지게 되면, 올바른 것을 말하고 올바른 길을 갈 수 있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적 요인으로 국내정치적 응집력을 획득하기 위한 움직임을 분명히 나타내며 핵실험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담고 있다. 결국 국내 정치적 혼란과 갈등 속에 핵실험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 흐름으로 등장하였고, 새로운 정부는 이를 충분히 이용했다는 것이다. 즉, 새로운 정부의 정치적 동기가 국내 정치적 구조 속에서 핵실험이라는 정책 결정을 낳았다는 것이다. 인도가 핵실험을 실시하게 된 이면의 동기는 국내 정치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BJP의 의도가 숨어 있다. 이는 인도의 핵실험이 국내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말한다. 핵실험은 국내 정치적 현안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바지파이의 취임 당시 인도는 국제적, 지역적, 국내적 혼란에 직면하고 있었다. 모든 문제를 국내 정치적 목적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보면, 새로운 정치 지도자가 등장한 이 시기가 핵실험을 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때였다. 핵실험에 대한 결정은 기술적 자신감의 성장과 더불어 지지자에 대한 응집력을 획득하기 위한 BJP의 정치적 뒷받침이 정당화의 근거로 작용했다. 현재 인도 정부는 외교정책에 있어 간디의 평화주의 이데올로기나 네루의 평화주의적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가장 큰 정치 연합인 BJP는 인도의 군사적 무장을 강하게 주장한다. 인도가 핵실험에 대해 이전보다 옹호하는 분위기로 변화한 것은 바지파이가 이끄는 정당이 1998년 3월 선거에서 지배연합으로 등장하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핵실험은 새로운 정부의 합의 결과였고 핵무기가 안보와 국제적인 인정을 획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대중의 지지를 토대로 한 것이다.(구병기 1999, 37~38쪽)

2) 국외의 배경

① NPT와의 관련

인도의 핵프로그램은 핵 확산금지의 차별적인 국제레짐에 대한 도전의 의미가 있다.(구병기 1999, 46쪽)

핵확산 금지 조약[NPT]은 1995년 무조건적으로 확장되었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5개국의 핵무기의 존재는 유지되었다. 1996년 대략 2000여개의 실험 이후에 포괄적 실험금지 조약이 제시되었고, 인도는 1년 반 이상의 협상을 지속했다. 인도는 이 조약이 포괄적이거나 비무장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의 현상유지를 비준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인도가 핵확산 금지조약과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의 강한 옹호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거부하게 된 것은 핵현상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도의 주된 주장은 비차별적 국제적 합의는 핵국가나 비핵국가 모두를 포괄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가 마지막까지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시기내에 핵무기를 제거한다는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처럼 국제적 불평등이 증가함에 따라 인도는 오랫동안 스스로 제약해오던 핵국가의 지위를 선택한다. 1974년 이후 인도가 실험을 하지 않는 동안 다른 핵국가들은 실험을 계속했다. 결국 인도의 권고는 주목받지 못했고 세계가 부주의하게 그들의 핵기술에 대해 논쟁하는 동안에 인도는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평화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핵을 선택한다.(구병기 1999, 27~28쪽)

인도는 동맹을 추구한 파키스탄과 달리 안보면에서 독자적인 노선을 고집해왔다. 냉전기간 동안 다른 국가들이 현실주의적인 전략적 목적을 위해 핵문제를 접근할 때 인도는 오히려 도덕적 관점에서 핵의 비무장화를 추구했다. 인도는 핵시대에는 모든 국가들이 지닌 권리와 의무간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며, 핵의 무기화에 대한 제한과 기존의 핵 보유국과 핵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간에 불평등한 분할을 끝낼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1995년 NPT의 무제한적 확장은 기존의 핵무기의 존재를 정당화함으로써 사실상 불평등한 핵 레짐을 형성하였다.(구병기 1999, 30~31쪽)

이어 1996년 제네바에서 CTBT[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 회담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이 회담 역시 인도의 핵무장 프로그램의 추진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NPT와 연이은 CTBT의 확대로 인도는 더욱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되었으며, 향후 CTBT 가입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실제 핵실험의 필요성이 없는 기술단계를 획득하기 위한 핵실험 수행이 절실하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위와 같은 국제환경의 변화에 더하여 남아시아 역내 환경의 변화 역시 인도의 핵무장을 촉진시켰다.(고경희 2003, 90쪽)

② 중국과의 관련

제3세계 지도 국가로서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인도는 중국의 핵무장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중국의 핵보유를 기정 사실화하는 NPT체제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적대관계에 있는 인접국인 파키스탄의 핵개발 의혹과 중국과의 공조관계로 인하여 자국의 안보를 위해 인도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핵무장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경희 2003, 98쪽)

파키스탄에 대한 중국의 지원은 우라늄 농축부터 핵실험, 탄도 미사일 개발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권정수 1999, 48쪽)

파키스탄의 핵개발에 도움을 준 중국은 인도를 목표로 하는 핵미사일을 티베트에 배치했다. 여기에 1962년 중국에 패배한 인도의 치욕과 상처가 인도의 핵 프로그램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1998년의 실험에서도 인도는 자국의 핵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당위로서 중국으로부터의 실제적인 위협을 강조하였다.(고경희 2003, 92~93쪽)

인도는 더 나아가 핵 개발을 통해 중국과 동등한 위치에 서고자 하였다.(권정수 1999, 50쪽 참조)

한편 냉전의 종식으로 미국과 중국을 견제해 주던 소련 세력이 쇠퇴함으로써 인도는 자국의 안보를 위하여 핵실험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주장하게 되었고, 특히 인도 외무부는 국가의 힘은 핵무기의 보유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기에 실제로 인도가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중국이나 미국으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고경희 2003, 93~94쪽)

2. 파키스탄

1971년 인도와 전쟁에서 패전한 파키스탄은 동맹국인 미국으로 전혀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 이후 인도와의 군사력 균형이 점점 불리해가는 경향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인도가 1974년에 핵실험을 함으로써 적대관계에 있는 파키스탄은 인도의 핵위협을 매우 현실성 있는 것으로 느끼게 되었다. 이에 파키스탄 정부는 초강대국으로부터 핵공격에 대한 방어보장을 얻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인도와의 전쟁경험에서 얻은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핵무장을 통한 자주국방으로 국토와 주권을 지키겠다’고 선언하였다.

3. 북한

1) 2.10 선언에 대한 비망록

북한의 외무성이 2005년 3월 2일 발표한 2.10선언에 관한 아래의 비망록을 보면, 북한의 핵개발 배경을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미국과 교전관계,기술적으로는 전쟁상태에 놓여있다. 그러므로 핵무기를 휘두르며 우리를 선제타격 하겠다는 부쉬 행정부의 정책기도에 맞서 정당방위를 위해 우리가 핵무기를 만들었고 또 만드는 것은 너무나도 응당한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핵압살 정책에 대처하여 자위를 위해 2003년 1월 10일 핵무기 전파 방지조약[NPT]에서 탈퇴하였고 국제조약 밖에서 정정당당하게 핵무기를 만들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로 하여금 자위적 핵무기고를 강화하도록 떠밀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다."

2) 내우 외환

미국의 북한 적대시 정책은 북한의 핵개발을 초래한 외환(外患)이다. 그런데 외환이 내우(內憂; 전인민의 빈곤의 일상화)를 낳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이 핵무기 보유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내우외환이 핵무기를 보유케 하여 다시금 외환을 불러 일으킨 다음 또 다시 내우를 증폭시키는 ‘내우외환의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에서 끊어내는냐의 전략이 민족통일의 차원에서 절실하게 요청된다.

3) 군사적인 배경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 건설이라는 군비경쟁에서 한 · 미 연합 전력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였을 것이다. 또한 1980년대 들어 러시아나 중국의 현대식 무기제공이 감소하고, 북한 내부적으로도 경제난으로 인해 추가적인 군사력 건설에 많은 부담을 안게 되었다. 게다가 1980년대 들어 남북 군사력 지출격차가 더욱 벌어지자 북한으로서는 핵무장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식이 존재하였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 입장에서는 비록 조잡하고 불완전한 핵무기라 할지라도 남한과 미국에 대한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결국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 건설을 위한 경제적 부담을 해결하고, 한 · 미 연합전력에 대한 군사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저렴한 수단으로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겠다.(최재혁 2003, 90쪽)

북한이 만일 핵을 보유하게 된다면 대미, 대남 우위인식을 바탕으로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군사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전략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고슴도치의 행동처럼-핵무기의 효용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북한의 핵개발에 있어 타당한 이유는 한 · 미 연합전력에 대해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군사행동에 있어 보다 나은 자율성을 갖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최재혁 2003, 91쪽)

북한의 체제를 위협하는 미국(미국의 경제 · 군사적 압력으로 북한의 체제붕괴 위기 봉착)과 상대하지 않고는 생존조차 불확실해지는 모순된 상황 속에서 ‘핵개발을 통해 미국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이 나올 법하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가장 희망했던 1989년 전후로 핵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역리(逆理)속에서 북한 핵개발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주1)

북한의 입장은 미국을 배척하는게 아니라 미국과의 평등한 관계 속에서 북미관계의 정상화(북미 수교,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불량국가 중에서 가장 미국과의 친교를 원하는 나라가 북한이다. 미국과 친하게 지내며 생존을 모색하려는 북한을 향해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등의 저주를 퍼부어대는 부시 정권을 향해 한방 먹이기 위해 핵무기 개발중이다. 북한의 지도부가 미국을 향해 열린 마음인데, 부시가 북한에 대하여 닫힌 마음으로 북한 붕괴를 위한 갖은 노력을 하니 북한으로서는 핵무기 개발을 통한 극약처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핵무기 보유하는 극약을 마신 북한이 극적으로 살아날 수도 있으나, 극약의 독성을 이지기 못하면 자살(핵무기를 베고 자멸)할 수도 있다.

4. 파키스탄과 북한의 핵개발 비교

미국은 친미정권인 파키스탄의 핵개발 묵인하고 반미정권인 북한의 핵개발은 결사 저지하고 있다.

파키스탄 사례는 미국이 핵확산 방지 원칙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나 융통성 있게 바꿀 수 있는가를 실증한다. 미국은 1981년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파키스탄에 대한 우라늄 농축 제재 조치 적용을 6년간 유예했다. 오히려 미국은 위험천만한 장난을 즐겨온 파키스탄에 대해 경제 · 군사 원조를 더 확대했다. 1980년대 파키스탄은 미국이 은근히 돕는 분위기에서 핵개발 프로그램을 더욱 진전시켰다. 그러나 1990년 10월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격 철수하자 미국은 중단했던 경제제재를 다시 시작했다. 당시 파키스탄은 미국에 최신예 전투기 F16을 주문해 놓고 있었는데, 이 또한 ‘없던 일’이 되었다.
미국의 이중행동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연달아 핵실험을 실시해 전세계를 핵확산 공포로 몰아 넣었던 1998년 이후에도 되풀이 되었다. 1998년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한 데 대한 보복으로 미국은 또 한번 경제 제재를 가했지만, 2000년 9.11 테러 참사가 터지자 슬그머니 풀어주었다. 오히려 미국은 파키스탄이 ‘탈레반 토벌’에 필요한 군사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그해 말 국제통화기금을 통해 차관선물 20억 달러를 쿠테타로 집권한 무샤라프 장군에 안겨주었다.
미국이 국제정치 상황에 따라 재제와 원조, 즉 채찍과 당근이라는 극과 극의 처방을 내린 파키스탄 사례는 북한 핵의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미국 부시 정부는 북한에 대해 한때 ‘적대적 무시’ 전술을 폈다. 그러나 부시 정부가 더 큰 전략적 이익이 걸렸는데도 이 전술을 끝까지 유지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더욱이 상황은 점점 미국이 파키스탄의 핵문제를 다둘 때와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 파키스탄에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주었을 때 파키스탄은 미국와 옛 소련 중간에 끼어 있었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떠오르는 용’ 중국을 장래 최대의 라이벌로 지목하고 있는 오늘날, 북한은 바로 그 미국과 중국의 중간에 끼여 있다.<『시사저널』 699호(2003.3.20) 25~26쪽>

파키스탄 모델은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및 보유를 용인할 경우, 북한이 가까운 시일 안에 도달할 ‘미래의 모습’으로까지 일각에서는 간주하고 있다. 북한과 파키스탄은 핵개발에 관한 한 여러 가지 비슷한 점을 갖고 있다; ① 자국 국민의 상당수가 기아나 최빈곤선에서 헤어나지 못할 만큼 경제적으로 실패한 나라이다 ② 주변에 심각한 안보 위협이 상존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으로 핵개발을 고려해 왔다 ③ 핵개발 과정에서 미국이 심한 압박을 가했다.

파키스탄과 북한은 공통적인 안보환경과 핵무장 동기를 지니고 있다. 즉 양국은 상대적으로 강한 적대세력과 대치하고 있고[파키스탄의 적대세력은 인도, 북한의 적대세력은 미국] 그 적대세력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양국은 적대세력과 전면전쟁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양국은 세계적 빈국으로서 재래식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건설하기에 충분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양국은 근본적으로 안보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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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1) 원수나라인 미국으로부터 체제의 생존을 보장 받아야 살 수 있는 북한이, 체제생존을 보장받는 수단으로서 자폭 가능성이 있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군사적 모험주의를 강행한 게 비극의 씨앗이다. 한반도 민중을 절멸시킬지 모를 핵무기를 통해 북한이 생존을 도모하는 사실 자체가 비극의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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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고경희 『인도의 외교정책과 국제관계』(고양, 인간사랑, 2003)
* 권정수「탈냉전기 핵 확산과 통제에 관한 연구」(국방대학원 석사논문, 1999)
* 구병기「인디아-파키스탄 핵 실험과 NPT 체제」(고려대 대학원 석사논문, 1999)
* 최재혁「파키스탄과 북한의 핵개발에 관한 연구」(국방대학원 석사논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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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평화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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