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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평화 (78)

무위론 비판

기세춘 기자 (기사입력: 2005/05/25 19:49)  

漢 初의 회남자는 노장의 無爲를 비판하고 진정한 무위는 順理 혹은 無慾이라고 주장한다. 반역사건으로 죽임을 당한 이상주의자였던 淮南子 劉安은 大同社會의 “大道”를 노자의 玄道라고 주장했으나 노장의 ‘무위’는 반대했다. 그들은 노자의 무위는 야만으로 돌아가자는 반문명주의적 은둔 철학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자의 무위론을 비판한 『淮南子』의 <修務訓> 편은 회남자 유안의 사상이 아니라 후기 묵가들의 글을 인용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淮南子/修務訓):
或曰 無爲者寂然無聲 漠然不動
혹자는 말하기를 “無爲”란 적막하여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것이라서
引之不來 推之不往
끌어도 오지 않고 밀어도 가지 않는다고 한다.
如此者乃得道之像.
또한 이와 같은 것을 득도의 모습이라고 하나
吾以爲不然.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嘗試問之矣
한번 물어보자.
若夫神農堯舜禹湯 可謂聖人乎.
그들도 신농씨와 요 순 우 탕을 성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以五聖觀之 則莫得無爲明矣.
그런데 이들 성인들도 무위를 취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
(淮南子/修務訓):
此五聖者天下盛主
신농씨와 요 순 우 탕 등 성자들은 천하의 위대한 군주였으나
勞形盡慮爲民
몸을 수고롭게 하고 사려를 다해 백성을 위해
興利除害 而不懈.
이익을 일으키고 재해를 제거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聖人憂民 如此其明矣
이처럼 성인이 백성을 사랑한 것이 분명하거늘
而稱以無爲 豈不悖哉.
그것을 무위라고 말한다면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淮南子/修務訓):
吾所謂無爲者
내가 말하는 “無爲”라 함은
私志不得入公道
사사로운 뜻이 공공의 도리에 끼어들지 않고,
嗜慾不得枉正術.
탐욕이 바른 방도를 굽히게 하지 않고,
循理而擧事
도리를 따라 일을 거행하고,
因資而立功
자품대로 공을 세우게 함으로써,
推自然之勢
자연의 추세를 따라 추구하여
而曲故不得容者.
굽힘이 용납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若夫以火熯井 以淮灌山 주:熯(한)=말린다.
만약 불로 우물을 말리고 강물을 산으로 흐르게 하려 한다면
此用己而背自然
자기를 위하여 자연을 거역하는 것이다.
故謂之有爲.
그러므로 그것을 일러 “有爲”라고 하는 것이다.
若夫水之用舟 沙之用鳩 주: 鳩(구) =낙타.
만약 물에서 배를 사용하고, 사막에서 낙타를 사용하고,
泥之用輴 山之用蔂 주: 輴(순)=썰매. 蔂(류)=삼태기.
갯벌에서는 썰매를 사용하고, 산에서는 삼태기를 사용하고,
夏瀆而冬陂
여름에는 물을 트고, 겨울에는 물을 가두고,
因高爲田 因下爲池
높은 데는 밭을 만들고, 낮은 데는 연못을 만든다면,
此非吾所謂爲之
나는 이것을 “유위”라고 말하지 않는다.
聖人之從事也.
성왕들도 따른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간됨의 특성은 완전 직립이며 이로 인해 자유로워진 손이 도구를 만들고 문명을 이루었다는데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장은 기계를 거부하고 문명과 국가를 부정했다.

과연 국가 없이도 살 수 있으며 기계를 거부하고 원시사회로 돌아가야 하는가? 국가에 대한 문제는 아나키즘도 마르크시즘도 무국가 무정부를 지향했으므로 그것을 상기하는 것으로 그치고 기계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늘날 인간의 문명은 기계가 사람을 지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구상의 인류가 모두 기계 인간 로봇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공상 영화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한마디로 자본주의는 인류를 기계의 노예로 만드는 문명이다. 이러한 주장을 반대하는 사람도 오늘날 그 누구도 기계를 따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로 우리는 기계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국민학교 5학년에 편입하기 전까지 해방 후에도 한동안 서당에 다녔는데 어쩌다 어머니를 따라 장터를 구경하는 날이면 얼마나 놀라고 신기했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중에서도 호미와 낫을 사려고 대장간에 들렸을 때 쇠를 벌겋게 굽는 풀무와 장단에 맞는 망치질 소리에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다. 아마 이런 대장간이 우리 정읍군에는 두 세 개 더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정말 우리가 어릴 때는 기계라는 것이 농사짓는 농기구, 밥 짓고 먹는 그릇, 옷 짜는 베틀, 집짓는 연장 등이 전부였다. 이처럼 기계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도구로 그쳤다. 그런데 지금은 온천지가 공장이고 기계들 차지가 되고 말았다. 이제 기계는 인간의 도구가 아니라 저 스스로 목적이 되었다. 탱크와 폭격기와 잠수함과 미사일 원자탄 수소탄 등 놀라운 무기들은 고사하고 수없이 쏟아내는 수많은 기계는 분명 인간을 편리하게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정작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2400여 년 전 노장은 기계가 생기면 기계의 일이 생기고, 기계의 일이 있으면 기계의 마음이 생기며, 인간의 자연스런 품성을 잃어버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결과 천년 후에는 사람이 사람을 서로 잡아먹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과연 그의 예언대로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난 오늘날 지구전체가 살인경쟁의 정글이 되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보았던 대장간은 공장으로 변모하였고 로봇들이 일하는 리바이어던(leviathan)의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기계문명은 이른바 서구의 산업혁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765년 영국의 왓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것을 계기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1784년 카트라이트가 방직기를 발명하고 1801년 철도가 개통됨으로써 19세기는 자본주의시대의 막을 올렸다.

이에 농장 소유주들은 농토를 농민에게서 빼앗아 양치는 목장으로 만드는 이른바 엥클로우즈(enclose)운동이 일어났다. 농민들은 기계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영국에서는 1811년에 숙련 노동자들에 의한 기계 파괴운동(Luddite)이 전국적으로 일어나 7년여 동안 계속되었다. 노장이 기계 거부를 주장한지 2000년이 지난 후에 실재로 기계파괴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오늘날은 인간은 기계에 순응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기계 숭배주의자들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2천 4백 년 전에 기계에 대해 고민했던 노장을 읽고 있다. 지금 우리 인류는 가공할 만큼 커져버린 기계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가? 얼마가지 않아 인류는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공상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그칠 것인가? 과연 기계를 거부한 노장을 어리석다고 비웃기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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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기대승 선생의 후손으로 1937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남. 전주사범학교 졸업. 전남대 법과 대학 입학. 4.19 혁명 적극 가담. {동학혁명 연구회} 창립.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창립. 저서로는 『천하에 남이란 없다-묵자』『우리는 왜 묵자인가』『예수와 묵자』『신세대를 위한 동양사상 새로 읽기』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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