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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명렬의 군 개혁 (14)

사관학교 개혁 ⑧

표명렬 기자 (기사입력: 2005/05/29 23:04)  

사관학교 조직은 2개 부분으로 대별된다. 학사 자격을 부여하는 학문을 담당하는 교수부와 군 지도자로서 인격과 품성 그리고 가치관을 갖추도록 훈육하는 생도대가 있다. 전자는 인지적(認知的)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로서 여느 대학이나 마찬가지다. 교수들의 자세가 생도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생도대는 정의적(情誼的)인 교육을 전담하는 부서로서 생도들에게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철학과 신념을 불어 넣어주는데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지만, 인사관리의 특성상 이런 막중한 업무를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훈육관들은 자신의 진급을 위해서 한 부대에 오래 동안 머물러 근무할 수 없고 전후방교류와 순환보직 등 경력 관리를 해야하기 때문에 나그네같이 들렀다가 그냥 지나가는 손님처럼 되어있기 때문이다.

교수부의 인원은 거의가 박사들로 구성되어 있고 계급에 상관없이 60세 넘도록 사관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게 법으로 보장되어 있어서 사실상 학교를 움직이는 주인처럼 되어있다.

안 모 여자강사가 사관생도들에게 제주 4.3사건 등 현대사 부분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대로 강의를 했다가 교수부장(준장)에게 불려가서 “당신은 파랗게 되어 있는 우리 생도들을 뻘겋게 만들 셈이냐?”고 꾸중을 듣고 쫓겨난 일이 있었다. 사관생도들에 대한 훈육은 아직도 군사독재 시대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나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의식, 자주의식이 없는 사관학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교수부에서의 강의는 학문적인 체계를 가지고 실시하기 때문에 논외로 하더라도 생도대 훈육의 비전이 그냥 브리핑용으로만 되어있지 않나 심히 염려된다.

전회에 이어 사관학교 훈육개혁을 위해 대만 정치작전 유학시절의 몇 가지 경험을 추가하고자 안다.

자전거 타는 3성 장군 교장 님

대만의 정치 심리전 학교는 이 분야의 전문 요원을 양성하는 국방부 산하 대학과정의 교육 기관으로 이곳 출신들이 대만 정부의 요소 요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필자가 이 학교에 두 번째 유학시절의 교장님은 자주 자전거를 타고 교내를 순시했다. 생도들이 교장 선생님과 마주치면 반가워하며 “교장님 안녕!”하고 손을 흔들었다. 교장님이 한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을 흔들며 웃음 띈 얼굴로 답하는 모습이 너무나 평화롭고 다정해 보였다.

그가 학생대의 식당을 순시할 때는 꼭 맨 먼저 취사장에 들려 더운 날씨에 밥짓느라 땀흘리며 고생하고 있는 취사병들의 등을 어루만져 위로한다. 언제나 가장 힘들고 그늘진 곳에서 일하고 있는 병사들을 찾아가 칭찬 위로하고 격려한다. 나를 더욱 놀래게 했던 것은 졸업기념 촬영이 끝난 다음 학생들은 마치 친 형님이나 다정한 친구를 대하듯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어깨동무도 하면서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이었다. 삼성(三星) 장군을 대하는 모습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후배 장교들을 대하는 장군의 모습도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목에 힘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았다.

학생들은 교육기간 동안에 바로 이런 것을 배운다. 계급이 아주 높아지면 부하들을 어떤 자세로 대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말이다. 군인답다는 말이 장군의 모습과 위관 장교와는 어떤 면이, 무엇이 다른지를 윗분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터득한다.

필자가 사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우리 교장 님은 늘 품위 있는 검정 세단을 타고 교내를 순시하였다. 미끄러지듯 움직이던 차가 조심스럽게 정지하면, 전속부관이 재빠르게 내려 문을 열어 주었다. 지휘봉을 들고 차에서 내릴 때 교장 님의 금테 안경은 더욱 빛나 보였다. 위압적인 모습으로 뭐라고 한마디 말하면 뒤 따라 오던 참모들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받아 적곤 했었다.

그 위세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멋있었다. 교장 님은 언제나 우리들의 우상이었다. 항상 우리들이 최고라고 치켜세워 주었다. 우리를 어떻게 바르게 훈육할 것인가 보다는 우리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인기를 더 끌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많은 분처럼 보였다.

물론 그분은 만주 군관학교 출신으로서 나이가 너무 젊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한번도 민족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정의(正義)에 대해서 들은 적이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떤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역사의 현장에서 그런 문제를 두고 어떻게 처신해 왔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알지 못 했다. 다만 수식어가 좀 많기는 했지만 달변의 말솜씨와 멋있는 외모에 우리는 매료되어 있었다.

영예 단결 회의

다시 대만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한번은 대 강당에 피교육자들이 모두 모여 외부 인사 초청 특강이 있었다. 강사는 중공에서 귀순해 온 분으로 중국의 실태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쉬는 시간에 주위의 학우들에게 약간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만약 중공과 소련이 전쟁이 붙게 되면 너희들은 어느 나라를 지원할 것인가?”라고. 그들의 대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먼저 중공이 이길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역시 곧 죽어도 대륙기질은 여전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북한에 대해 이와 비슷한 대답을 했다면 아마 즉각 교육을 중단하고 소환되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강당 안에서는 금연이었다. 10분간 휴식시간에 한 중령 학생이 강당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연대장인 호 대령에게 발각되어 “강당은 금연 구역이니 반드시 밖에 나가서 흡연하라”는 주의를 받았다. 다음 시간의 휴식 시간에도 담배 연기가 뿜어 나왔다. 연대장은 노발대발하여 그 학생을 일으켜 세운 다음 큰소리로 야단 호통을 치며 꾸중을 했다. 내가 보기에는 연대장의 처사는 너무나 적절하고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 날 저녁 우리로 말하면 학생자치회와 비슷한 영예단결회의가 각 중대별로 긴급 소집되었다. 의제는 ‘연대장 호 대령의 리더십 결함’에 대한 성토였다. 피 교육생이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면박을 줄 수 있느냐, 그가 백 번 잘 못했으면 백 번이라도 조용히 불러서 타이르거나, 아니면 규정에 의해서 처벌하면 될 것 아닌가. 이것은 그가 간부로서 지녀야할 최소한의 인격과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 때문이라며 이구동성 분개하는 발언을 했다.

이 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은 가감 없이 그대로 종합해서 지휘 계통인 중대장, 대대장을 통해서 연대장 본인에게 보고되며 연대장은 이를 거울삼아 스스로를 반성하며 교육에 참고한다고 한다. 그들은 중국 대륙에서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렇게 집단 감시의 기능에 의해서 지휘관 자신도 견제 받도록 관련 지휘관리 시스템을 개혁하였다. 부대장을 위한 부대가 아닌, 부대를 위한 부대장이 되도록 하고 있음에 깊이 감탄했다.

교육기관이 아닌 일반 전투부대에서는 이렇게까지 지휘관을 성토할 수 없지만, 매월 「영예단결회의」라는 제도를 통하여 장병들이 자기의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하고 부대는 인사․포상․휴가․면회․재정․복지․급식 등 장병들의 관심 사항을 공개함으로써 부대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집단에 의한 감시 기능과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대만 군대 내에는 과거 우리 군에 거의 고질화되어 있었던 고참병의 횡포나 의문사와 같은 억울한 일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되어 있었다.

1973년에 내가 이 학교에 처음 유학을 다녀온 후 한때 이 제도를 원용하여 우리 군에 적용함으로써 군 의식개혁의 실마리를 찾으려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었다. ‘군대는 윗사람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조금도 바꾸려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부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군대개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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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전 육군 정훈감으로(준장 예편) 현재 군사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다. 필자는 또 {천주교 인권위원회}의 위원/ {민족문제 연구소}의 지도위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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