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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동상 철거를...

황보윤식 기자 (기사입력: 2005/05/30 00:18)  

맥아더 동상을 우리가 철거함이 옳지 않겠는가

1998년 인하대 서규환 교수가 인천지역 청소년 1170명을 대상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역사인물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 결과, 맥아더는 20.3%, 비류(沸流)백제 시조는 4.3%로 인천과 관련된 역사인물 중 맥아더가 1위를 차지했다. 충격적이다. 또 1964년 맥아더가 사망했을 때 <조선일보>는 ‘추도사설’을 내보냈다. 여기서 “한국통일의 절호의 찬스가 맥아더의 해임으로 유실되었다”면서 맥아더의 죽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그리고 정규학교에서 ‘반공교육’을 받아온 40대 이후 남한 거주민들은 6.25민족전쟁이 한창인 1951년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맥아더의 주장대로 만주를 폭격했더라면 통일이 되었을 거라는 아쉬움을 품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1996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이 전방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맥아더가 트루먼에 의해 해임된 사건을 매우 애석해 했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이렇게 미국인 맥아더를 영웅으로 만든 것은 우리 스스로 역사를 왜곡시키고 정체성을 확시키지 못한 결과이다.

인천 중구 응봉산(應鳳山)에 1888년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 있다. 당시 이 공원은 외국인거류민단(居留民團)에서 관리하였고 만국공원(萬國公園)이라 불렸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 외국인거류지가 철폐되고 공원관리권이 인천부(仁川府)로 이관되면서 일인들은 서공원(西公園)이라 불렀다. 이 만국공원에 전쟁시대의 잔유물이요, 동서이념의 찌꺼기요, 더러운 분단점령군의 상징물인 동상 맥아더가 북녘 땅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거만하게 서 있다. 이곳 맥아더 동상 제작비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1950년 6월 25일 공산도배가 북으로부터 민국을 침입하였을 때 즉시 미국 정부는 한국구원을 결정하고 맥아더 장군에게 공산침략 항전에 참가한 모든 군대를 지휘하도록 명령하였다. 그의 탁월한 천재가 발휘된 것은 바로 이곳 인천에서였다. 그 호매한 식견으로 안출된 거의 기적적인 상륙작전을 1950년 9월 15일에 장군의 진두지휘 하에 결행하여 그 결과로 전세가 일전하여 자유의 승리와 민국의 구원을 가져왔었으니 이것은 영원히 기념할 일이며 이것은 영원히 기념할 사람인 것이다.

그리하여 감격에 넘치는 우리 국민의 명의와 의연으로 각계각층 대표를 망라한 맥아더 장군 동상 건립위원회가 김경승 교수의 손에 의하여 빚어진 장군의 용자가 영겁을 통하여 이 거룩한 지역을 부감하도록 이 동상을 세운 것이다. 장군과 그 휘하 용감한 유엔군 장병들이 우리와 자유를 위하여 이곳에서 취한 행동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유독한 침투에 대한 최후 투쟁에 승리를 거둘 때까지 전쟁에는 승리에 대신할 것은 없다라고 말한 분이 역시 장군이었다는 사실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맥아더 동상은 ‘공산주의를 분쇄한 자유수호자의 상징물’로 건립되었다. 그리고 1957년 10월 3일(개천절)부터 자유주의를 수호한 맥아더 동상이 있다는 의미에서 민국공원을 ‘자유공원’으로 개칭하였다.(동상이 세워진 것은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인 1957년 9월 15일이다.)

21세기의 국제사회는 미국을 제외하고 반성과 화해의 시대, 협력과 통일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남북화해와 민족통일의 최대 걸림돌인 미국의 상징 - 맥아더 동상을 우리가 철거함이 옳지 않겠는가. 이러던 차 맥아더 동상을 이 땅에 세운 세대 중에서 양심이 있는〈우리민족 련방제통일 추진회의(련방통추)〉,〈주한미군 철수운동 본부〉,〈민족정기 구현회〉, 〈사회개혁운동 연합〉 등 사회단체 소속 회원 20여명이 지난 5월 10일 노구를 이끌고 자유공원에서 "온 민족이 맥아더 동상 철거에 떨쳐나서자"고 촉구하며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팔순에 가까운 이들이 왜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자고 그 불편한 몸을 가지고 노숙농성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맥아더 동상의 철거 당위성은 민족사회 분단의 원인, 6.25민족전쟁의 원인, 맥아더의 인간품성에서 찾아진다.

먼저 민족사회의 분단원인을 살펴보자. 한민족 분단의 민족사회 내적 요인은 일제의 식민통치, 즉각적 독립만 주장한 국민감정, 그리고 분단국가나마 권력을 장악해보려고 자기목적에만 충실했던 이승만과 같은 분단세력의 정치책동과 권모술수에서 찾아진다.

그리고 민족사회 외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1) 당시 소련의 한반도 전체 점령을 방지하려는 미국의 전략과 한반도를 미끼로 다른 지역의 이권을 확보하려는 소련의 책략. 2)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폐기하고 한반도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간 미국의 비열한 짓거리. 3) 한반도 민족사회의 생존적 가치와는 무관하게 동아시아에서 미국을 대신하여 중국에 대응하는 세력을 양성할 자기목적만을 가지고, 일본을 자유진영으로 남게 하려는 미국의 전략 등이다. 특히 미국이 자기네 이해관계만을 앞세운 책략과 전략 때문에 우리 민족공동체가 분단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두드러진다.

다음은 6.25민족전쟁에 대하여 알아보자. 1945년 미국 등 이해관계국들에 의해 민족이 분단된 이후, 우리 민족사회는 민족의 영구한 이익을 배반한 채 각자의 분단지역에서 분단국가 대한민국(이하 남)과 분단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을 수립하고 각각 이념을 달리하는 민족사회를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의 상부구조는 북에서 축출되어 남으로 도망 나온 친일분자와 일본에 그랬던 것처럼 미국에 사쿠라차럼 충성을 맹세한 자발적 친미사대주의자들이 합세하여 친미반공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날마다 터무니없는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북을 끊임없이 공격하였다. 그러자 북의 김일성은 무모한 이승만의 북진을 우려하여 사회주의 동맹 즉, 소련 및 중국과 각각 군사비밀협정(1949.3.18)을 맺고 군사력을 급격히 증강해 나갔다. 그리고 항일독립투사였던 김일성은 민주기지론에 기반한 국토완정론(國土完整論)을 내세워 남진통일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면서 남한정부를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집단으로 규정하였다.

이렇듯 6.25민족전쟁은 민족내부의 정통성과 이념의 대립이 근본원인이 되었다. 여기에 각 분단국가 내부의 사회상황도 작용하였다. 남은 계속되는 군부반란과 정치ㆍ경제적 불안으로 정권의 불안전성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북은 다방면에 걸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비교적 안정된 정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승만은 국내의 불안한 정치상황을 밖으로 돌리고자 했다.

여기에 분단국가 외적 요인도 6.25민족전쟁을 부채질하였다. 이 무렵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반공전략 기지로 일본을 설정하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일본의 자본주의 급성장을 서둘렀다. 이 전략에 따라 일본의 군수산업 발전을 위해 한반도에 이념전쟁을 획책하였다.

이러한 음모에서 나온 미국의 정책적 수단이 사회주의 동맹국들에게 미국의 한반도정책의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에치슨라인(1950. 1.12)이다. 미국의 계획은 맞아떨어졌고 사회주의 동맹은 이에 자극되어 총공세로 나왔다. 이렇게 6.25민족전쟁은 민족공동체 내부의 친일과 반일의 정통성문제, 냉전의 산물인 이념의 대립, 미국의 동아시아에서 전략 등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어났다. 결국 6.25 민족전쟁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과 소련 측의 휴전협정 제안으로 민족통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분단만 더욱 고착시키고 말았다.

다음으로 맥아더의 존재에 대하여 알아보자. 맥아더는 한국전쟁기간 동안에 입헌군주국의 부활, 다량의 원자폭탄 투하(26곳) 등 반역사적이고 반인륜적인 발언과 그의 실천을 적극 주장하여왔다. 만약 맥아더의 주장대로 원자폭탄에 의한 만주폭격이 진행되었다면 당시 상황으로 보아서 한반도의 통일은 고사하고 즉각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더 켰다.

이로 볼 때 맥아더는 분명 인도주의, 평화주의, 인간평등과는 무관한 전쟁광이었다. 북진통일을 밤낮으로 부르짖던 이승만을 위시한 친미사대세력들은 맥아더의 만주지역 폭탄투하 주장에 길길이 뛰면서 좋아했다. 그 결과 이승만은 미제의 주구가 되어 맥아더에게 작전지휘권을 넘겨주고 조국의 주체적 방위권을 상실하는 반역적 과오를 저질렀다. 이리하여 미군이 한국의 군사작전권을 장악함으로써 이후 한국은 군사ㆍ정치적으로 미국의 종속국이 되어 자발적인 식민지로 전락되었다.

이 탓으로 남은 미국의 조종에 의하여 왜곡된 반공적 군사독재정권의 연속적 등장을 보게 되었다. 또 6.25민족전쟁 때 맥아더 지휘하의 미군은 영동 황간의 ‘노근리 양민 대량학살 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반도에서 수십만 우리 양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맥아더 군대는 빨치산을 소탕한다는 구실 아래 그들의 은신처가 되었던 우리문화유산지역을 마구 폭격하여 우리문화유산을 대량 파괴한 반달리스트들이다. 이렇게 우리에게서 미국은 민족분단의 원흉이자 우리 민족끼리 전쟁토록 만든 원수이다. 그리고 민족분단을 토착화시킨 마귀이자 민족통일을 방해하는 제웅이다 바로 우리의 원수요 제웅인 미국의 상징물로 우뚝 서 있는 더러운 조형물이 맥아더 동상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볼 때 인천 만국공원에 있는 맥아더동상을 철거해야 하는 당위성이 분명해진다. 첫째, 맥아더 동상을 왜곡된 이념을 가진 우리 앞 세대가 세웠지만 이 동상을 철거해야 할 책무는 올곧은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우리세대에 있다. 또 우리 세대는 민족분단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이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민족의 주체적 통일을 이룩하여 다음 세대에 물려줄 의무가 있다. 주체적인 민족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외세간섭의 상징인 맥아더 동상을 우리가 철거함이 옳지 않겠는가. 둘째, 주체적인 민족통일의 첫 단계는 남북화해와 협력에 있다.

우리 스스로 미국의 반공이데올로기에 현혹되어 같은 민족공동체의 한 쪽에 대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혹독한 비난을 일삼았다. 이렇게 우리민족끼리 싸우고 헐뜯게 만든 분단점령의 상징물이요, 동서이념의 기념물이요 미군의 합법적 한국점령의 상징물인 맥아더 동상을 우리 손으로 철거함이 옳지 않겠는가. 셋째, 이 나라 바른 역사와 올곧은 정체성을 세우는 것은 우리의 책무다. 바른 역사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 동안 거짓 역사를 강요하고 남북화해의 훼방꾼으로 군림하였던 미국의 상징인 맥아더 동상을 우리 손으로 끌어내림이 옳지 않겠는가.

끝으로 김남주 시인의 시에 인용된 한 농부의 꾸짖는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남의 나라 군대 끌어다 제 나라 형제 쳤는데 / 뭣이 신난다고 외국 장수 이름을 절(백제를 멸망시킨 중국 唐의 장수 蘇定方의 이름을 딴 부여의 定方寺과 변산의 來蘇寺를 말함)에까지 붙이겠소 / 하기야 인천 가니까 맥아더 동상이 서 있더라만 / 남의 나라 장수 동상이 서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더만.”

결국 과거 역사를 청산해야 하는 필연성, 미국으로부터 민족해방을 일궈내야 하는 숙명성, 민족통일시대를 열어가야 하는 당위성 때문에 분단 점령의 시대에 이념적 상징으로 건립된 맥아더 동상은 기필코 만국공원에서 끌어내어 내동이 쳐야 한다.(2005.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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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문학박사(동양사 전공)로서 한신대 연구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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