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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에 한반도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제국주의 없는 한반도의 평화를 개척하자!!

사회화와 노동 (기사입력: 2005/07/27 23:22)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13개월만의 6자회담 재개

북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국제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은 1991년 걸프전 이후부터인데 이는 현실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그에 따른 정치·경제적 고립이라는 북한체제의 위기를 그 배경으로 한다. 즉 한반도에서의 명실상부한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군사적 대치상황과 함께 舊소련을 통해 값싸게 들여오던 1차연료 공급이 대폭 감소하자 북한은 에너지 체계를 원자력 발전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1991년 12월 31일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듯이 보였다.〈비핵화공동선언〉은 ①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配備)·사용의 금지, ②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③핵재처리시설 및 우라늄 농축시설 보유 금지, ④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해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에 대한 상호 사찰, ⑤공동선언 발효 후 1개월 이내에 남북핵통제공동위의 구성 등을 주된 골자로 하고 있는데, 남·북이 이러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이전(12월 3일)에 〈남북 사이의 화해와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되는 등의 화해무드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은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 舊공산권 국가들과 차례로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한반도 주변 열강의 남북 각각에 대한 '교차승인', 즉 소련·중국과 남한의 관계 정상화 및 미국·일본과 북한의 관계정상화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화해무드는 안정적일 수는 없었는데, '비핵화 선언'에 포함되지 않은 미국의 한반도 핵무기 배치를 둘러싼 쟁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고 게다가 미국은 여전히 북한을 대화의 상대자로조차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이니셔티브를 전제하는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은 호전적인 대북정책으로 얼마든지 전환될 수 있었다.

실제로 남북대화에 후속적인 북·미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자 북한이 NPT(핵비확산 조약)를 탈퇴하면서 대응하자, 김영삼 정권은 미국과 함께 북한을 압박하는 세계 최대의 군사훈련 '팀스피리트 훈련'을 실시한다. 바로 이때가 '1차 북핵위기'라고 알려진 1993-94년 동안의 시기였는데, 당시 미국에서는 심각하게 북한에 대한 '제한폭격'이 고려되었다. 핵무기 장착이 가능한 미국의 군함과 폭격기, 배낭용 핵무기 등이 동원되는 '팀스피리트 훈련'의 실시는 여전히 북한을 겨냥한 미국의 핵공격을 포함한 군사적 위협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미국은 결코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오늘날까지 결코 포기한 적이 없는데 1998년 6월 원자력과학자 회보에 따르면 펜타곤은 여전히 노스 캐롤라이나의 공군기지에서 북한을 겨냥한 장거리 핵공격 모의훈련을 실시하고 있었으며, 9·11 테러 이후 등장한 '예방적 반확산(preventive counter-proliferation)' 개념에 따라 작성된 2001년 「핵태세 검토」에서 북한은 중국, 러시아,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과 함께 핵 선제공격이 가능한 국가에 포함되었다. 핵선제공격이 가능하다는(배제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새로운 반확산 전략은 핵무기 보유국은 핵무기 비보유국에 대해 핵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약속'(1968년 UN총회에서 NPT가 통과될 당시 소련과 미국, 영국 등의 '핵보유국'은 제3세계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러한 약속을 하였다)을 파기하고 국제적인 핵확산 억지의 기본전제를 무너뜨리고 있다. 여기서 미국의 이른바 '반확산'이란 미국을 위시로 한 몇몇 강대국의 핵독점을 정당화하는 것에 다름아님을 알 수 있다.

미국의 핵전력에 무력화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북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국제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은 1991년 걸프전 이후부터인데 이는 현실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그에 따른 정치·경제적 고립이라는 북한체제의 위기를 그 배경으로 한다. 즉 한반도에서의 명실상부한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군사적 대치상황과 함께 舊소련을 통해 값싸게 들여오던 1차연료 공급이 대폭 감소하자 북한은 에너지 체계를 원자력 발전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한 것이다.

의심과 불신 속에 지연된 '제네바 합의'의 이행

1994년 제네바에서 체결된 북·미 간 〈제네바 합의서〉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동결과 NPT에 규정된 사찰을 수용하는 대신, 미국은 200만 kw급 경수로 건설(연료공급을 통제함으로써 핵이 무기용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감시할 수 있다) 및 경수로가 건설되기 전까지 난방용 중유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북한의 핵시설을 해체하고 과거 핵 프로그램의 진행 정도를 조사하기 위한 작업은 미국의 경수로 건설작업과 병행하여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최종적으로 경수로의 핵심 부품이 인도되기 전에 북한 내 핵시설에 대한 IAEA의 조사 및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조치를 완전히 이행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통신 및 금융거래·무역 및 투자에 대한 제한을 완화시켜나가며,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양국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네바 합의'의 내용이 알려지자 미국이 북한에 사기 당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북한의 과거 핵무기 개발이 어느 정도나 진전되었는지, 혹시 북한이 이미 핵미사일을 만들어 놓고 숨겨놓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등을 '투명하게' 규명할 수 없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과거 핵 개발을 포함하여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철저하고 투명한 공개·조사가 전제(선행)되지 않는 이상 중유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이러한 논란의 와중에 미국은 '제네바 합의'에 규정된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위협 또는 불사용에 관한 공식 보장"(3조)과 "완전한 관계 정상화"(2조)를 유보하며 1998년을 거치면서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문제삼기 시작했다. 1999년 채택된 《페리 보고서》는 대북제재 해제의 조건으로 미사일 실험과 중동으로의 미사일 수출 중단을 요구하였는데 이는 대북 안전보장·북·미 관계정상화를 약속한 '제네바 합의'에 대해 추가적인 조건을 내세운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의심과 불신은 미국에서 공화당 정권이 출범하고(2000),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침략전쟁이 개시되면서(2001, 2003) 정점에 달하여, '제네바 합의' 무용론 등이 제기되기 시작한다. 2002년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이 비밀리에 핵 프로그램을 재개했는 지 여부를 추궁하는 켈리 미국무부 차관보는 미국의 안전보장(불가침 조약의 체결)과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타결하자는 북한의 '대담한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된다. 북한은 1994년 이후 봉인되었던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기로 하고 IAEA 감시요원들을 추방하는 동시에 급기야 지난 2월 10일에는 대외적으로 자신이 '핵보유국'임을 선언한다.

'비핵화'의 범위와 의미, 반대급부를 둘러싼 6자회담의 쟁점

지금까지 6자회담은 모두 3차례(1차 2003.8.7-29, 2차 2004.2.25-28, 3차 2004.6.23-26) 열렸다. 미국은 이번 4차 6자회담을 '마지막 기회'로 못박고 있는데, 국제사찰을 받는 3개월 동안의 '동결기간'을 거쳐 북한에게 민간용 핵마저도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합의한 연후에야 미국은 북한이 안전보장과 테러지원국 명단삭제, 경제제재 및 봉쇄를 해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범위는 단지 북한의 핵무기 뿐 아니라 남한과 일본의 핵까지를 포함한다는 것, 그리고 민간용 핵개발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민간용·군사용을 불문하고) 핵폐기를 전제로 한 핵동결을 얼마나,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그리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는 무엇인가?(3차회담에서 북한은 그 대가로 200만 kw 에너지 지원, 대북 경제제재 및 봉쇄 해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요구했다)를 둘러싼 문제가 이번 6자회담의 최대 쟁점일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200만 kw의 전력을 제공하겠다는 남한의 '중대제안'으로 북한의 요구 중 하나는 형식적으로는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 이를 포함하여 3단계 해결방안(핵폐기와 병행하는 안전보장 제공, 북한의 핵동결과 핵폐기, 최종적으로 북미 관계정상화)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앞서보았듯이 미국이 주장하는 '다자간 협상'이라는 형식은 얼마든지 자신의 일방적 무력행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고려하면 6자회담의 한계는 분명하다. 또한 지난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을 '정권교체'가 필요한 '깡패국가'로 규정해왔음을 본다면 미국이 과연 이러한 대북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고 있는지, 수정할 용의가 있는 지도 불투명하다. 올해 2기를 맞는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국무부 장관으로서 라이스는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규정하였다. 비단 라이스 국무장관 뿐 아니라 평소에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 대부분의 인사들은 북한 정권에 대한 거침없는 증오와 적대적인 발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6자회담이 시작될 때부터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6개국의 합의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협상이 타결되지 못하는 데에는 이처럼 북한을 적대시하는 미국의 선입관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들어 이미 미국은 '인권 상황 개선'을 내세우며 대북 안전보장과 관계 정상화와 연계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번 6자회담의 타결 여부도 불투명하거니와 설혹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지 북한의 '핵 폐기'에 머무를 뿐 여전히 미국의 군사적 이니셔티브는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남아있을 공산이 크다. 노무현 정권은 이러한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향후 미국의 군사·안보전략에 더욱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고 이는 미국의 침략과 점령에 대한 지지, 그리고 평택에서 주민의 반대투쟁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 기지의 확장·이전을 강행할 것이다. 제국주의의 '선의'에 기대면서 지배계급이 양보하는 대가는 민중에게 또다른 희생과 고통을 불러올 뿐이다.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대 없이 한반도의 평화는 없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을 비롯한 중심부 국가들은 심대한 정치적 변화를 경험한다. '테러에 대한 공포', 잠재적 '테러리스트'로서 모든 이방인(주로 이슬람교도, 아랍계 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가 인종주의와 결합하며 폭력과 테러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 역시, 이른바 '깡패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테러를 예방하는 선제공격이라는 논리가 득세하면서 훨씬 강화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정치의 헤게모니 세력으로서 등장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예방전쟁'의 논리는 기존의 국제정치질서를 미국의 '의지'에 따라 재구성·활용하면서 기존의 국제법 및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의지연합'을 구성함으로써 미국의 안보전략을 세계적으로 관철하려 하고 있다. 한반도는 현재 미국의 세계전력의 시험대가 되고 있으며 사회운동이 제국주의와 침략전쟁을 비판하면서 평화에 대한 민중들 스스로의 발언과 조직화를 통해 개입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운동은 6자회담에 모든 기대를 걸면서 미국의 '선의'와 한국정부의 '설득'에 문제해결을 일임해서는 안 된다. 60년 전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선이 곧바로 38선으로 분할되고 미국에 '점령'된 이후 한국전쟁이라는 유래 없는 참화를 겪으면서 얻은 교훈은 제국주의의 '선의'로 한반도의 평화를 보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1945년 한반도의 통일된 임시정부를 세우자는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과 이를 이행하기 위한 미·소 공동위원회에 모든 사람들이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회담은 결렬되고 한반도는 분단되었던 것이다. 이번 6자회담이 결렬되면 이후에 더이상 대화는 없다는 공공연한 미국의 발언은 향후 대북제재를 위한 사전포석이기도 하다.

남한 사회운동의 과제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전략과 전세계적인 對테러전쟁에 대한 비판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미 평택에서는 용산으로부터 확장·이전될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투쟁이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민중들의 투쟁이 제국주의 속에서의 미봉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라, 제국주의 없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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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화와 노동} 272호(2005.7.27)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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