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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기본합의서의 의미와 활용방안

장영수 (기사입력: 2005/10/19 23:41)  

Ⅰ. 출발점: 남북관계의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나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통일된 국가로 수천년의 역사를 공유해 왔으며, - 비록 해방 후 미군과 소련군에 의하여 한반도가 분단되었고, 심지어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기도 했지만 - 같은 핏줄, 같은 언어를 가지고 있는 형제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현실은 그러한 통일에의 열망으로만 설명될 수는 없는 냉엄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최근 북핵위기 및 이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의 진행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아직은 한반도의 긴장이 상당히 높은 상황일 뿐만 아니라, 그밖에도 남북 간의 갈등구조가 상존하고 있으며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남북관계의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전제 위에서 우리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및 이를 기초로 한 평화적 통일을 향한 전진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Ⅱ. 한반도 평화체제는 누가 어떻게 구축하여야 하는가

한반도의 평화는 아직 확고한 것이 아니다. 현재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평화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만, 법적으로는 아직도 남북한은 정전상태이며, 사실적으로도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들은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체제의 구축은 더욱 절실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주체는 당연히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 민족, 즉 남북한이다.

그러나 과거 수십년의 적대적 대립, 그리고 비극적인 전쟁의 경험 등으로 인하여 남북한은 상호불신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화해와 협력, 교류의 필요성은 서로가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믿어도 되는지에 대한 불안이 계속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은 (적어도 국민들의 상당수는) 북한이 언제 다시 전쟁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으며, 북한은 (적어도 북한의 지도부는) 남한이 북한체제를 전복시키고 흡수통일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고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외부적 보장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하여 2+4의 국제협력체제를 통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확보하는 것이 시도되었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6자회담은 그와 같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담보하기 위한 국제적 장치의 시험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Ⅲ. 한반도 평화체제의 기초로서의 남북기본합의서

남북한은 이미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서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중요한 기초를 마련한 바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북핵문제가 터져나오면서 남북기본합의서의 시행은 사실상 유보되고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의 해결이 점차 가시화되어 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규범적 기초로서 남북기본합의서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남북기본합의서의 형식적 효력과 관련하여 볼 때, 북한에서 남북기본합의서는 1991년 12월 26일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와 중앙인민위원회 연합회의에서 승인절차를 받았고, 당시 북한헌법(1972년 헌법) 제96조에 근거하여 김일성 주석이 비준을 함으로써 구속력 있는 법규범으로서의 형식을 갖추었다. 또한 남한에서도 국회가 남북기본합의서에 찬성하는 결의를 한 바 있으므로 이를 무시할 수 없다.

둘째,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남북한이 통일을 전제로 상호존중의 기초 위에서 교류와 협력의 증진에 노력한다는 원칙 및 이를 구체화하는 내용들에 관하여 상당히 진전된 합의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

셋째, 이미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이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고 유사한 내용의 합의를 다시금 반복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못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남북한 평화체제의 확립과 관련하여 남북기본합의서에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Ⅳ.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효력과 이를 강화시키는 방안

문제는 남북기본합의서가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지 못해서 현재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신사협정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헌재 2000.7.20. 98헌바63 결정에서 “1992.2.19. 발효된 ‘남북사이의화해와불가침및교류협력에관한합의서’는 일종의 공동성명 또는 신사협정에 준하는 성격을 가짐에 불과하여 법률이 아님은 물론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있는 조약이나 이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은 남북기본합의서에 기초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국회가 비준동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비록 뒤늦은 감이 있지만 국회가 이제라도 비준동의를 함으로써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효력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효력이 확보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첫째, 남북기본합의서를 독자적으로 상정하여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둘째, 현재 입법이 추진 중인 남북한관계기본법을 통하여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효력을 확보하는 방법이 모색될 수 있다.

셋째, 남북한이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그 부속문서의 형식으로 남북기본합의서를 포함시키고 이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는 방법이 있다.

각각의 방법은 나름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떤 방법이 이상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여 남한 내의 법적 효력을 먼저 확보한 후에 이에 기초한 북한과의 평화조약 체결로 진전시키는 방법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Ⅴ. 남북문제에 관한 정치권의 갈등 및 국민들 사이의 이견과 그 원인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효력을 확보하는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는 남북관계의 발전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이다. 국민적 지지에 근거하지 못한 대북정책은 언제라도 그 기초부터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권 내에서 남북문제에 대한 갈등이 수시로 표출되는 것은 대북정책의 방향에 대한 확고한 국민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록 평화적 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동의한다 하더라도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에 있어서는 상당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 대립은 크게 두 가지 원인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사이에 나타나는 북한에 대한 불신의 차이를 들 수 있으며, 둘째로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는 남북관계의 발전방향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그것이다.

이러한 세대 간의 시각차 및 보혁 간의 시각차가 적정한 방식으로 해소되지 않을 경우에는 남북한의 통일은 물론 남한 내에서의 통일방향조차 제대로 합의되기 어려운 것이 현재의 기본적인 문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Ⅵ. 맺으면서: 진정한 통일은 통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15년 전에 동서독이 통일되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통일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그것은 외부적 통일만으로 내부적 통합까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우리도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위해서는 정치적 통일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을 통해 진정한 사회적․경제적 통합까지 가능하게 하는 통일국가의 모델을 구상하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남북기본합의서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고, 이를 활용하여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지 못할 경우에는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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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고려대 법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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