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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길

김낙영 기자 (기사입력: 2005/10/24 10:22)  

인생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이런 의문을 깊게, 지속적으로 갖게 된다면
그야말로 인생의 큰 늪에 빠지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이 그리 간단치 만은 않으니 그 누가
쉽게 답 할 수 있으며 그 누가 쉽게 그 답을 얻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을 얻기 위해 깨달음의 길을 걷겠다고 나서서 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길을 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해답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석가모니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영화와 부귀를
버리고 갠지스강을 7년이나 배회하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지만 부라만으로부터 이단으로 몰려 시련을 겪어야
했다.

석가모니는 과연 그 깨달음을 얻음으로 해서 영화와
부귀를 버린 대가만큼 행복을 느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를 인생의 스승으로 삼고 그의 길을 가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고요한 산사에서 얼마나 정진을 하며 성과를
얻어내는 지 모를 일이다.

불교가 한국에 들어와 대중들과 함께 하기보다 힘있는
자들과 함께 하며 민중의 고단함을 외면한 시간이 너무도
길었다. 명분은 호국불교라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힘있는
자 편에 붙어서 부귀 영화를 꾀했으니 석가모니 부처의 본
뜻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기독교 목사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힘의 본 뜻과
그 고통을 외면하고 독재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조찬
기도회를 가졌던 것과 같이..)

산사에 묻혀서 목탁이나 두들기며 시간을 죽여도 누가
뭐라 할 것인가. 속세를 떠나 깨달음의 길을 가며
중생구제를 한다는데...

민중의 아픔과 함께 하지 않는 깨달음이 과연 진정한
깨달음일까?

만해는 일제시대의 민중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일제에 대항해 싸웠고 사명당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조직해 싸웠다. 뿐만 아니라 대종교의 나철 선생은 대종교
신도들을 이끌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의 70%가 대종교
신도들이었을 정도로 민중 속에서 그 본뜻을 찾으려 했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고요한 산사에서 신도들에 둘러 싸여 그들의 보시를
탐하거나 불사를 일으켜 절이나 크게 지을 궁리를 하는
승려들이 깨달은 자의 길을 가는 것일까......
(신도들의 고통은 외면하고 교회나 크게 지을 망상에
빠져 있거나 외국에 선교사나 많이 파송하려는 허영심에
빠진 목사들도 똑 같은 물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 시대의 진정 깨달은 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이런 화두를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우리 민족문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위기의 상황에서 저마다
애국자요 저마다 똑똑하다며 상대를 비판하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우리의 현실.
우리의 이런 현상을 진단하는 사람들은 구 한말의 위기의
상황과 똑 같다고 한다.

진정 깨달은 자라면 만해나 사명당, 나철처럼 현실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빡빡 머리에 승복을 입고 워싱턴에 자주 나타나는
법륜에게서 만해나 사명당, 안창호 선생, 서재필 선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니........

승복을 입은 법륜.
법륜은 만해나 사명당의 길을 이어가는 승려요 불가에서
말하는 지장보살의 뜻을 실현하는 실천가가 아닐까.....

지옥불에 떨어진 모든 중생을 다 구하고 나서야
성불하겠다는 지장보살.

피안의 세계로 가기 전 이승을 먼저 구하는 것을
소명으로 알고 행하는 것이 바로 지장 보살이 말한 대승적
불교가 아닐까......
(예수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림으로 세상의 죄를 씻었듯이......)

법륜은 민중들 앞에서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승려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어떻게 해야만 이 위기의 상황을 넘길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불교 전도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평화와 세계
평화를 전도하는 평화 전도사로 나선 것이다.

또한 북한 인민들의 배고픔이나 북한의 붕괴가 어떤
상황을 불러 올 것인가 하는 그 나름의 예측을 설파하는
민족문제 연구가이기도 하다.

그의 현실 진단은 참으로 설득력이 있다. 일제와 6.25를
거치며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이고 죽는 과정에서 생긴
원한의 치유를 말하기도 한다.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며 생긴 증오를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만 진정으로 하나되어 내일을 향해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고찰을 통해 우리 민족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만 민족이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우리의 현실적 문제를 화두로 삼은 승려, 그가 가는
길에서 진정한 깨달은 자의 길을 발견 할 수 있다.

추상적 개념으로 현실감이 멀기만 한 그 깨달음이란
모호한 인식에 갇혀서 저 홀로 고고한 척하는 산사의
유희적 삶보다도 얼마나 생동감 있으며 실질적 중생
구조활동인가.

그럴듯한 언설을 일삼아 깨달음이란 실체를 보여주지도
못하며 중생들을 현혹하기 보다 명징스러운 언행으로 이
시대적 과업을 수행해 가는 그의 행적에서 진정 깨달음의
실체를 발견 할 수 있으니 이 시대의 보배라 아니 할 수
없다.

깨달음이란 추상적 모호성으로 중생들을 현혹하여
중생들에게서 생동감을 잃게 하는 것은 이승의 삶을
오히려 피폐하게 만들뿐이다.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깨달음이 이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이 종교에 의해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인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낸 사람이 가는 길이 바로
법륜이 가는 길일 것이다.

붓두막에 소금도 입에 넣어야 짜다는 말이 있듯이 이승의
삶에서 깨달음의 진정성이 바로 중생들에게 은혜로운
길잡이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무슨 죄를 그리도 많이 지으며 사는지 매일 같이 죄
타령에 세월이 다 가고, 복을 얼마나 받아야만 하는지 복
타령으로 시간을 다 보내는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 하셨듯이 각자의 가슴속에 천국이 있음을
상기한다면 천국타령도 싱겁기만 한 것이다. 천국이
없다고 해서 막 살 것도 아니요, 지옥이 없다해서 되는
대로 살 것도 아닌 것이 참인간의 길이 아니겠는가.

세계 최강대국 그 심장에 살면서 현실을 살지 못하고 전
근대적인 사고체계로 사는 것은 현대를 살면서도 과거
속에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극락이나 천국타령 보다도 현실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민중과 함께 선각의 길을 가는 법륜의 앞길에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성인들의 은총이 있기를 바란다.
--------
* 필자는 워싱턴에서 살면서 평화통일을 위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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