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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을 중심으로 한 반기지 평화운동

강상원 (기사입력: 2009/05/25 22:40)  

1. 평택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기지(시설) 개요
평택은 경기도 최남단에 위치한 인구 40만명의 도농 복합지역이다.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이 한국전쟁이후에는 미군이 장기간 주둔해오면서 ‘군사도시 평택’, ‘기지촌 평택’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평택에는 크고 작은 미군시설들이 주둔해있다. 미 7공군산하 51전투비행단이 주둔해있는 송탄공군기지(Osan Air Base)는 주한미군의 전술항공기지이고 (참고:Osan Air Base is one of two major airfields operated by the U.S. Air Force in the Republic of Korea-송탄공군기지 홈페이지에서 인용), 미 8군 산하 안정리기지(Camp Humphreys)는 주한미군의 핵심 전력인 휴전선 인근의 미 2사단이 이전해온다. 이밖에도 대형 탄약고와 전술훈련기지등이 위치해 있다.

송탄공군기지의 규모는 9.6㎢ 안정리기지는 5.5㎢이며, 연합토지관리계획(Land Partnership Plan)과 용산기지 및 미2사단의 평택이전으로 인해 11.5㎢가 강제수용되어 앞으로 총 26.6㎢의 부지(평택시 전체면적의 약10%)가 주한미군의 공여지로 사용될 예정이다. 평택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은 현재 9천명 가량이지만 앞으로 약2만 2천명으로 늘어나며 주한미군의 주둔기간이 현행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되면서 주한미군의 가족수도 14,810명으로 700% 증가할 전망이다.

2. 평택 반기지-평화운동의 역사
1) 1990년대
1990년 3월 서울 용산에 위치한 주한미군사령부가 평택으로 이전된다는 계획이 발표된 후 평택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용산미군기지평택이전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용산공대위)>를 결성하여 용산 주한미군사령부 이전부지로 알려진 평택시 고덕면 주민들과 공동투쟁을 전개한다. 이를 통해 용산미군기지 평택이전계획은 철회되었으며, 용산공대위는 평택미군기지의 전면반환운동을 천명하였지만 대중운동으로 확산되지 못하였다.
2) 2000년대
주한미군은 2001년 제3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Security Consultative Meeting)에서 한국에 산개해있는 미군기지를 평택과 2〜レ개의 핵심지역(Hub Region)으로 통합운영하겠다는 연합토지관리계획(LPP:Land Partnership Plan)을, 2004년엔 휴전선 인근에 위치한 미 2사단등 주한미군의 핵심시설등 약 5천만평을 반환하고 대신 평택 등지에 349만평을 확장하겠다는 개정LPP계획을 발표한다.

용산기지 및 미 사단 등의 주한미군 재배치는 2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무엇의
이니셜을 따온것인지 알지 못합니다)에 따른 것으로 용산기지와 미2사단을 평택으로 옮겨 북의 장사정포 위협에서 벗어나 대북 선제공격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고, 인접한 공항과 항만 등을 이용하여 대중국 봉쇄 및 아시아태평양신속기동군의 역할을 수행하려 하고 있다.

선제공격과 신속기동군화를 위해 추진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재배치는 국제평화주의, 평화통일원칙을 천명한 대한민국 헌법을 위배하는 것이며 대한민국이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을 받을 때만 적용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범위(제3조)와 발동요건(제2조)을 위반하는 것이다. 결국 선제공격전략과 GPR에 따라 주한미군 재배치가 이뤄지면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는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되고 남북 화해 및 평화와 통일에 결정적 걸림돌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수천만평을 반환하고 고작 수백만평의 추가공여지를 요구한다면서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있지만 철저히 그들의 필요에 의해 추진되는 세계 군사패권전략일 뿐이다.

평택시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회비준을 강행하였고 2004년 12월 9일 국회에서 개정LPP협정을 비준받게 된다. 당시 쟁점사항이었던 미군기지이전비용은 언급되지 않았고, 주민들의 의견 또한 전혀 수렴하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에 평택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미군기지확장반대평택대책위원회(이하 평택대책위)를 결성하고 투쟁에 돌입하였고, 대규모 토지 수용이 불가피해진 대추리, 도두리등 마을 주민들을 중심으로 미군기지확장반대팽성주민대책위원회(이하 주민대책위원회)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가 결성되어 길고긴 범국민적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미군기지이전계획이 발표될 당시만 하더라도 평택시민들의 여론조사는 반대 여론이 70%일 정도로 미군기지이전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월등히 높았다. 그 이유는 군사도시는 각종 개발행위에 제약을 받고, 주한미군으로 인한 각종 범죄, 환경오염, 교육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전라북도 부안에 핵폐기장 설치를 놓고 커다란 정치적 타격을 입었던 노무현정부는 평택미군기지이전이 제2의 부안 항쟁으로 확대될 것을 염려하였고 이에 대한 궁여지책으로 제시한 것이 <미군기지이전에따른 평택지원특별법(이하 특별법)>제정이었다. 이는 미군기지이전의 댓가로 평택시에 1조 4천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미군기지만 이전만 되면 평택에는 찬란한 미래가 펼쳐질것이라는 선전을 하였고 이를 통해 점차 찬반여론이 반전되기 시작한다.

평택에 미군기지 주둔의 역사가 반세기가 넘었고, 미군이라는 존재가 공산주의로부터 한국을 구원한 고마운 나라라는 왜곡된 역사 인식이 깊이 내재되어있고,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황에서 미군기지와 미군이라는 존재는 일자리와 먹을거리를 해결해주는 사막의 오아시스였다는 점,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지역유지세력들이 미군기지와 끈끈한 유착관계를 형성해온 점, 미군기지가 평택시내 중심이 아닌 외곽에 존재하는 지리적 특수성등이 특별법제정과 함께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운동을 어렵게 만든 객관적 조건이었다.

3. 평택미군기지투쟁의 성과와 한계
결국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군경 합동작전으로 정든 고향땅에서 강제로 쫓겨나야했지만 지난2002년부터 2006년까지의 투쟁과정은 잊을 수 없는 생생한 기억들을 남겨두었다. 우선 몇몇 운동권 단체의 운동이 아닌 해당 지역주민들이 투쟁의 중심에 섰다는데 있다. 이 것이 지난 4년간 투쟁이 완강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주된 원동력이었다. 2004년 9월1일부터 들기시작한 평화의 촛불이 비가오나 눈이오나 935일동안 꺼지지 않았던 것은 한국 민주화운동과정에서나 지난 평화운동에서 전례없는 투쟁이었다.

평생을 농부로 살아온 대추리, 도두리주민들의 유일한 소원은 ‘자손대대 이 땅에서 농사짓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다’란 호소처럼 과거 일본군으로부터 미군으로부터 몇차례씩 쫓겨나야했던 설움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으며, 수십년간 손이 발이되도록 바닷물을 막아 옥토를 만들어왔던 땅에 대한 한없는 사랑때문이었다. 곧 땅은 이들에게는 자식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둘째. 다양한 평화운동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2002년 미군기지확장을 막기위해 환경운동차원에서 진행되온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을 평화운동에 접목하여 미군기지확장예정지 2000.3㎡를 구입하여 평화의 땅을 만드는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 운동의 결과물로 평택평화센터가 만들어졌다.

935일간의 촛불에는 영화인, 가수에서부터 이름없는 평화운동가들까지 다양한 계급과 계층이 참여했고 일본, 오키나와, 미국, 프랑스등 국제무대로까지 확산되었다. 대추리, 도두리가 한국평화운동의 마중물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트랙터를 끌고 전국을 돌며 평택의 문제를 알려나간 것은 선언적운동이 아닌 주민들속에 들어가 투쟁을 조직하겠다는 의지였고 결국 그 힘이 시골마을에 수만명의 사람을 운집케 했던 힘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여명의 황새울’이라는 행정대집행을 단행하였고 결국 2006년 5월 4일 토지가 강제수용되고 미군기지확장예정지에 철조망이 세워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활동가들이 연행되고 부상당하였으며, 대추리는 일반 시민들의 접근이 차단된 고립무원의 섬이 되었다 정부의 . 압박은 더욱 심해졌고 주민대책위위원장의 구속등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이주대책등에 합의하고 지난 4년간의 투쟁은 종료되었다.

지금 현장에는 미군기지확장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미군기지이전비용의 문제, 방위비분담금의 미군기지전용문제, 성토로 인한 환경파괴문제, 무엇보다 미국의 군사적 야욕에 의해 왜 국민의 혈세와 옥토가 제공되어야하는지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국제대회를 통해 미국의 군사패권에 의해 한국민의 삶이 어떻게 유린되어왔는지 밝혀지고 오만한 미국의 자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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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강상원은 평택평화센터소장으로일하고있다. 2002년 미군기지확장계획 발표이후 평택지역 제시민사회단체의 연대조직으로 결성된 <미군기지확장 반대평택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미군기지확장예정지에 2000.3제곱미터(약605평)의 <평화의 논>을 구입하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연대하여 미군기지확장을 막아내고자 투쟁하였으나 대한민국정부는 경찰과 군대를 앞세워 생명의 땅을 강제수용하고 미군기지로 조성하였다. 그 <평화의 논> 평화지주들이 '미군기지확장반대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마음을 모아 초동주체가 되어 2007년 10월 20일 결성된 조직이다. tico103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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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9년 4월 16-18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한국조직위원회, 우주의 무기와 핵을 반대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동북아 무력 갈등 예방 위원회가 주최한 [아시아·태평양 MD 반대와 군비경쟁 종식을 위한 국제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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