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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도시의 전략

지역 중립화-서해 바다의 평화지대에 관한 제안

김승국 (기사입력: 2014/08/09 14:20)  

Ⅰ. 전쟁의 파고가 높아지는 군산 앞바다


현재의 미국 對 중국, 한-미-일 3각 군사공동체 對 북한-중국-러시아의 군사적 대립이 극단적으로 격화되면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그 전쟁의 장소는 한반도의 서해안이 유력하다.<이와 관련된 자료는, 이 글의 맨 뒤에 있는 ‘참고 자료’에 있음>


예컨대 제2의 동학농민 전쟁(민중봉기)이 한반도에서 발생하면, 1894년의 동학농민 전쟁을 진압하기 위해 일본 군대를 불렀던 지배계급의 사대근성이 재발될 수 있다. 1894년 당시에는 일본 군대이었지만, 21세기에는 미-일 동맹의 군대, 즉 주일미군과 일본 자위대를 불러들여 한국민중의 봉기를 진압할 것이다. 이럴 경우 중국 군대가 개입하여 서해의 공해상에 중국군 항공모함이 진입하므로, 중국 군대와 미-일 동맹군(여기에 합세한 한국군대)의 대결이 서해상(군산 앞바다)에서 발생할 것이다.


한편 센카쿠 섬을 에워싼 중국-일본의 치열한 외교전이 전쟁으로 비화될 경우 미국이 적극개입하게 되면 대만 또는 한반도의 서해안(군산 앞바다)에서 미-일 동맹군과 중국군의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필자가 보기에 대만 보다 한반도의 서해안이 더 유력한 전쟁터가 될 것이다.


대만이 독립을 결행할 경우 이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중국군이 대만을 공격할 것이다. 이를 빌미 삼아 주일미군이 일본 자위대의 후방지원(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을 받으며 대만 해역•상공에서 중국군과의 전투행위에 돌입하게 된다. 이 때 주한미군 역시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따라 대만 해역•상공을 향하여 출동하는 데, 이를 좌시하지 않을 중국군이 주한미군 기지를 공격하기 위하여 서해상에 진입하여 한•미 동맹군과 격전을 벌임으로써, 서해 바다가 전쟁의 불바다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이 군산 앞바다(서해안)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한-미-일 연합군과 중국군(최악의 경우 러시아•북한 군대가 중국군에 합류함) 사이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서해 바다(군산 앞바다)를 평화지대로 만드는’ 운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성은 군산시가 평화도시가 될 필요성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군산시내에서 제아무리 평화마을을 여러 개 만들어 평화도시를 지향해도 군산 앞바다가 전쟁의 파고에 휩쓸리면 허사가 되므로, 군산시의 평화도시 만들기 운동과 군산 앞바다(서해) 평화지대 운동을 동시에 전개해야한다. 해양도시 군산의 평화로운 발전을 위해 바다의 평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서해 바다의 평화지대’ 구상이 요청된다.


이러한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 나오는 여순 평화지대안을 거론한다.


Ⅱ. 안중근의 여순 평화지대안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1910년 3월 26일)은 대한제국의 교육가, 독립운동가, 대한의병 참모중장이다. 1905년에 조선을 사실상 일본의 속국으로 만든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 운동에 투신한 그는 1909년 10월 26일에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침략 수괴)를 저격•사살했다. 그 때문에 일본 등에서는 테러리스트로 소개되지만, 남북한에서는 의사(義士)로 숭앙받고 있다.


사형집행 날짜를 받은 안중근은, 영하 20도가 오르내리는 혹한의 감방 안에서『동양 평화론』을 쓰기 시작하여 끝을 맺지 못한 채 요절했다. 그는 1910년 2월 14일 여순(旅順) 고등법원 원장인 히라이시 우지히토(平石氏人)와 행한 면담에서, 5가지의 동양 평화안을 3시간에 걸쳐 설파했는데 첫 번째 항목은 다음과 같다; “일본은 여순(旅順)을 중국에 돌려주고 중립화하여 그곳에 한ㆍ중ㆍ일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항(軍港)을 만들고 3국이 그곳에 대표를 파견하여 동양평화 회의를 조직하도록 한다. 재정확보를 위해 회비를 모금하면 수억 명의 인민이 가입할 것이다. 각국 각 지역에 동양평화 회의의 지부를 두도록 한다.”


1. 안중근의 ‘지역 중립론’의 의미


여순(旅順)을 중국에 돌려주고 중립화하여 그곳에 한ㆍ청(중)ㆍ일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항(軍港)을 만들자는 안중근의 제안은, 여순이라는 요충지ㆍ분쟁지역ㆍ전쟁터를 중립화함으로써 동양평화에 이바지하자는 ‘지역 중립론’이다. 어떤 국가를 중립화하자는 ‘국가 중립론’이 일반적인데, 안중근이 지역 중립론을 펼친 것이 돋보인다.


여순과 같은 요충지ㆍ분쟁지역을 중립지역으로 만들어 관련 당사국들(한ㆍ중ㆍ일)이 공동이용하는 군항으로 사용하자는 제안은 그 실현여부를 떠나 매우 참신한 발상이다. 여순을 중립공간으로 만들자는 단순한 지역 중립론을 넘어 그 중립지대의 무장은 허용하되, 동양평화의 당사국인 한ㆍ중ㆍ일이 여순의 군사ㆍ경제적 자원을 공동이용하며 동양평화의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협력안보-평화경제-평화공동체’의 발상이 탁월하다.


[안중근이 보기에] 여순 군항을 동양평화의 근거지로 만들려면 첫째, 한ㆍ청ㆍ일 3국이 공동 관리하는 군항을 만들어 3국 청년들로 군단을 편성하여 지키게 하고, 그들에게는 2개국 이상의 어학을 배우게 하여 우방 또는 형제의 관념이 높아지게 우애를 다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의 군비는 여순항의 유지를 위하여 군함 5,6척 정도만 정박시켜도 족할 것이라고 하였다.


둘째, 여순에 한ㆍ청ㆍ일이 먼저 동양평화 회의를 조직하여 동양평화의 방략을 세우고 실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평화회의는 장차 인도ㆍ태국ㆍ버마 등 동양제국이 다 참여하는 회의로 발전시키면 동양평화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 출처= 안중근 의사 기념 사업회 엮음『안중근과 그 시대』(서울, 경인 문화사, 2009) 393~394쪽


안[안중근] 의사가 뤼순[여순]을 중립화하여 동북아 평화의 거점으로 삼자고 한 것은 유럽의 철과 석탄의 산지 루르ㆍ자르 지역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루르ㆍ자르 지역에 대한 장악경쟁이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으나, 2차 대전 후 유럽 철강석탄 동맹으로 공동 관리한 결과, 유럽경제공동체(EEC)로, 유럽연합(EU)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20세기 초 뤼순은 러시아의 해양진출 기지이면서, 일본의 대륙침략의 거점이기도 했다. 그러한 중국 역시 구 만주지역 전체의 향방과도 맞물린 뤼순 반도의 소유권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동북아 분쟁의 도화선이었다. 이 지역을 중립화하고 공동 관리함으로써 동북아의 평화와 연대의 길을 열자는 게 안 의사의 주장이었다. 지금 이러한 뤼순에 해당하는 지역이 한반도인 셈이고, 한반도가 동북아 평화와 균형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 출처= 김영호「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동북아 경제통합론」『2000年』제261호(2005.1) 49쪽


2. 안중근 ‘지역 중립론’의 재해석


안중근의 여순발(發) 지역 중립론을 유럽의 평화경제ㆍ경제통합, 한반도 평화론으로 재해석하려는 김영호 선생의 뜻을 이어 받아 슈만 플랜(유럽석탄 철강 공동체 계획)을 먼저 설명한 뒤에 군산 지역의 중립화-군산 앞바다의 평화지대안을 제시한다.


1) 슈만 플랜


미국은 1948년부터 루르 지역을 다른 유럽 국가들의 석탄철광 산업과 함께 공동의 기구 아래 통합할 것을 프랑스에게 요구하였다. 프랑스는 2년 가까이 이 요구를 거부하다가 슈만 플랜을 통해 이 요구를 수용했다. 1950년 5월 9일 오후 [프랑스의 외무부 장관인] 슈만은 역사적인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슈만은 프랑스와 서독의 석탄철강 산업을 초국가적 기구 아래 통합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할 것과 초국가주의에 동의하는 모든 유럽 국가들은 이 회의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통합의 목적은 다음과 같은 점에 있다. 즉 양국의 “석탄과 철강 산업의 통합은…오랫동안 전쟁물자 생산에 사용되었던 이 지역들의 운명을 바꿀 것이다.…이제 탄생할 생산의 연대(solidarité de production)는 프랑스와 독일의 장차 모든 전쟁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들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이 공동체는 평화를 위한 유럽통합의 제1보이며, 앞으로 유럽통합은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슈만은 강조하였다.
* 출처= 김승렬「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생산의 연대’?」『프랑스사 연구』 제6호(2002.2), 47쪽


위의 슈만 플랜과 ‘안중근 플랜’은 유사한 점이 많다. ‘전쟁용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많은 루르 지역의 자원을 유럽이 공동이용하여 평화경제 공동체를 만들자’는 슈만 플랜과 ‘중국ㆍ일본ㆍ러시아의 패권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많은 여순을 중립화하여 동북아 평화의 거점으로 삼자’는 안중근 플랜이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 출처= 김승국「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37)-안중근의 동양 평화론과 중립」『평화만들기(http://peacemaking.kr)』475호(2011.8.10.)


3. 군산 지역의 중립화


안중근의 여순발(發) 지역 중립론을 군산지역에 적용하는 가운데 군산 앞바다의 전쟁 위기를 예방하는 길은 없을까? 안중근이 여순을 동양평화의 중심축으로 생각했듯이, 중립화된 군산 지역을 동북아 평화의 중심축으로 만들 수 없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응답이라도 하듯이 남북한의 정상이 2007년 10월 4일에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하 ‘10ㆍ4 선언’)을 발표했다. 생각건대 10ㆍ4 선언 제3항ㆍ5항을 군산 앞바다에 원용하여 ‘군산-서해 바다(인천-군산-목포를 잇는 서해바다)를 중립지대화 하는 지역중립 구상을 가다듬을 수 있다.


안중근이 여순을 중립화하여 분쟁 당사국들(중국ㆍ일본ㆍ러시아)이 공동이용하는 군항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듯이, 군산-서해 바다(인천-군산-목포를 잇는 서해바다)를 중립화(지역 중립화)하여 분쟁 당사국들(미국-중국-남북한)이 비군사적•경제적으로 공동이용하는 경제공동체의 터전으로 만드는 ‘군산판(版) 슈만 플랜’을 제안한다.


이러한 ‘군산판(版) 슈만 플랜’을 한반도•동북아시사 차원으로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유럽의 전쟁 유발지였던 알자스-로렌 지역을 유럽 통합의 근거지로 삼았듯이, 한반도의 새로운 전쟁 후보지인 서해 바다를 ‘군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 중립화’ 구상으로 엮어내어 한반도 통일•동북 아시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발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3. 올랜드 섬의 지역 중립화


이러한 발상을 키우기 위하여 핀란드의 올랜드 섬(올랜드 諸島)의 지역 중립화 성공사례를 소개한다. 올랜드 섬의 중심도시가 해양을 끼고 있기 때문에 서해 바다의 중심도시 군산의 지역 중립화 발상과 어울린다.


1) ‘비무장•중립’의 올랜드 섬


발트 해(海)의 올랜드 제도(핀란드 소속)는 비무장•중립•자치의 섬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의 비무장 지대와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아 주변국의 승인 아래에 있는 '평화의 섬'이다. 올랜드 섬이 핀란드 영토이지만, 독자적인 중립 정책을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① 올랜드 섬이 중립의 섬이 된 경과


17세기의 스웨덴은 ‘발트의 제국’이라고 불릴 정도의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올랜드 섬은 당시에 스웨덴 영토이었고, 스웨덴어를 말하는 스웨덴인(人)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18세기 초에 러시아가 스웨덴에 공격을 퍼부어 핀란드와 올랜드 섬을 차지했다. 그 이후 올랜드 섬은 핀란드의 일부로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올랜드 섬은 발트해의 안쪽, 보스니아 만의 입구에 있기 때문에 발트 해역 국가들에게 요충지이다. 러시아는 1850년대에 올랜드 섬에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어 1853년에 러시아와 터키의 크림 전쟁이 시작되자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 봉쇄를 위해 터키 쪽에 붙었다. 1854년에 영국•프랑스 함대는 올랜드 섬의 거대한 요새에 총공격을 가했다.


이어 1856년에 영국과 스웨덴이 중심이 된 파리 강화협정은, 올랜드 섬의 비무장화를 결정 했다. 이것이 올랜드 비무장•중립화의 첫 번째 단계이다.


1915년, 제1차 대전의 와중에 러시아는 다시 올랜드에 군사시설을 건설하려고 했다. 여기에서도 이해가 엇갈린다. 러시아는 독일 진출을 두려워했다. 올랜드는 스톡홀름의 외곽에 있기 때문에, 스웨덴에게는 러시아 군의 존재가 위협이 된다. 핀란드에서 보면 스웨덴 군대가 위협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가운데 올랜드 섬 사람들은 당시의 민족 자결권이 고양되는 추세의 영향을 받아, 핀란드에서 분리하여 스웨덴 쪽으로 편입될 것을 요구했다. 이로써 올랜드 섬 주민들은 스웨덴 인(人)이 되었다.


러시아의 요새 건설은 러시아 혁명 때문에 끝났지만 올랜드 귀속 문제가 남았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대립이 심해지자. (민족 자결권을 앞세워 스웨덴에 맞선) 핀란드는 1920년에 올랜드 자치법을 제정하고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면서 주민자치를 인정했다. 그러나 올랜드의 주민들은 주민자치 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규를 지켜본 영국이 개입하여, 올랜드 섬을 에워싼 스웨덴-핀란드 분쟁의 해결을 국제연맹에 회부한 끝에 두 나라(스웨덴•핀란드)는 국제연맹의 결정을 수용했다.


이제 무대는 제네바의 국제연맹으로 옮겨진다. 국제연맹 이사회는 ① 올랜드의 주권은 핀란드에 있다 ② 올랜드에 자치권이 인정된다 ③ 올랜드를 비무장•중립으로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핀란드 정부는 올랜드 섬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스웨덴어와 전통•문화를 존중하기로 한 한편 올랜도 섬 주민들도 올랜드 자치법을 받아들였다.


1921년에 스웨덴•핀란드•독일•프랑스•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이 올랜드 섬의 비무장 중립화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① 핀란드는 올랜드에 군사시설을 두지 않고 무기•탄약의 제조•반입 •반출을 금지한다 ② 특별한 경우에 해군이 일시 기항하는 예외를 제외하고 육•해•공군의 주둔을 금지한다 ③ 올랜드는 중립지대이며, 어떠한 군사 이용도 금지한다는 것이 협정 내용이다. 그리하여 핀란드는 분쟁시에도 올랜드를 전쟁의 제삼자(第三者)로 두게 되었다. 러시아 혁명정부는 처음에 ​​인정하지 않았지만, 결국 1940년의 핀란드-소련 조약에서 이를 확인했다. 이것이 올랜드 비무장•중립화의 두 번째 단계이다.


또한 올랜도 섬 사람들은 병역이 면제되었다. 1920년의 자치법에서 이미 섬 주민들의 병역 대체 제도를 인정했다. 병역 면제는 비무장의 귀결임과 동시에 자치권으로서의 거주권과 결부된다


스웨덴의 귀속을 요구한 올랜드 주민들은 처음에는 불만을 가졌지만, 그 이후 ‘비무장•중립• 자치’라는 올랜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면서 '평화의 섬'을 주창하게 되었고 ‘분쟁예방•분쟁 조정의 올랜드 모델’을 언급하게 되었다. 지금도 올랜드 자치 정부와 평화연구소가 세계를 향해 평화연구의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 출처=http://maeda-akira.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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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1. 한국 전작권 없는 상태서 일 집단자위권 행사 땐
일본 자위대, 미 요청으로 한반도 진주 가능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이 여전히 미국의 손에 있는 상황에서, 유사시에 일본이 한반도와 인근에서 미국과 공동작전을 펼치는 형식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경우 한국의 주권과 국익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미 간 힘의 불균형뿐 아니라 제도적 측면에서도 미국이 ‘운전대’를 잡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이를 저지할 명분이 없다는 얘기다. 한-미는 지난 4월 말 정상회담에서 2015년으로 돼 있는 전작권 전환 시기를 재연기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집단적 자위권을 추진한다는 ‘기본적 방향성’을 발표하자 정부는 같은 날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한반도, 그리고 우리의 국익과 관련된 사항은 우리 동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일본이 아무리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 대한민국 영토와 영해에 군사력을 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영토·영해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게 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국제법적으로도 집단적 자위권 발동을 위해서는 피해국이 피해사실을 공표한 뒤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이런 요건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파병 등의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는 것은 집단적 자위권으로 인정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는 우려할 만한 요소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틈새가 있다. 미국이 이른바 ‘선제적 자위권’을 취하는 경우다. 이를테면 북한이 핵위협을 고조시킬 때 미국이 ‘위협을 느낀다’는 ‘피해’를 공표하면서 방어 차원에서 영변 핵시설 등에 원점 타격을 하면, 일본은 여기에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 발진 기지를 제공하는 식으로 손을 보탤 수 있다. 물론 국제법상으로 선제적 자위권은 방어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선제적 자위권도 방어용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전작권이 없는 상황에선 오로지 힘의 논리에 따라 밀릴 수밖에 없다. 신창훈 아산정책연구원 글로벌거버넌스센터장은 “요즘의 일본이라면, 이런 경우 미국과 궤를 같이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유사시에 주한미군의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에도 미국이 ‘피해’를 공표하고 도움을 청하면, 이를 전쟁 상황으로 간주한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이유로 미군시설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미국이 전작권을 가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한반도 내 미군의 작전지역에서 일본의 무장력이 미군에 ‘협조’할 수도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 병력의 본격적인 한반도 진주도 이론적으로는 엉뚱한 상상이 아니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한국이 전작권을 확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물론 전작권을 갖는다고 해서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순 없겠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와 운신의 폭이 너무 좁아진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선 한국의 뜨뜻미지근한 대응은 한참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직 외교안보분야 고위당국자는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작전을 전개하기 원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그 밑에서 미국과 일본의 지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륙작전을 할 때 미-일이 공동 작전을 하면 그 밑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으로 한국의 전작권 전환이 더욱 중요해진 셈이다.(2014.5.22)
* 출처=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638585.html


2. 중-일 동중국해 상공 일촉즉발 위기


중국과 러시아가 해상 합동 군사훈련을 하고 있던 동중국해 공해상 상공에 일본 자위대의 정보 수집용 군용기 2대가 들어가자 중국 전투기가 30m 거리까지 접근해 위협 비행을 하는 일촉즉발의 사태가 벌어졌다. 일본 당국은 “조금만 잘못했으면 우발적인 사고로 연결될 수 있었던 위험한 행동”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중국은 일본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침입하고 중-러 훈련을 방해해 필요한 조처를 했다며 맞섰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은 25일 오전 도쿄 방위성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4일 오전 중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동중국해 상공에서 중국 공군 전투기가 일본 자위대기에 최단 30m까지 접근해 위협 비행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평범하게 공해상에서 비행하는 타국기에 접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궤에서 벗어난 일”이라고 중국을 맹비난했다. 이에 앞서 일본 방위성은 24일 밤 긴급 자료를 내어 이날 오전 11시와 12시께 동중국해 공해상에서 중국군 SU-27 전투기 2대가 공중 정보수집 활동을 벌이고 있던 일본 해상자위대의 OP-3C(영상정보기록기)와 항공자위대의 YS-11EB(전자측정기)에 이상 접근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중국이 일방적으로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뒤, 중국 공군이 이런 위협 비행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방위성은 이번 사건이 발생한 정확한 지점을 밝히지 않았지만, 일본 언론들은 20일부터 26일까지 중국과 러시아가 합동 군사훈련을 진행하던 해역 상공이었다고 보도했다. 일본 자위대기가 중-러 군사훈련을 엿보려고 해당 상공에 접근하자 중국군 전투기가 이를 저지하려 위협 비행을 한 셈이다.


오노데라 방위상은 “조종사의 보고에 따르면 중국 전투기에 미사일도 탑재돼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위협 비행에 나선 중국 군용기는 4세대 전투기 SU-27로 최고 속도는 마하 2.3에 달한다. 양쪽 비행사들이 조금만 실수를 했다면 중-일 관계를 심각한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셈이다.


일본 정부는 중국 쪽에 외교 루트를 통해 공식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중국 국방부는 “일본 군용기가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침입해 중-러 해상연합훈련을 정찰하고 방해해 중국군 항공기가 긴급 출동해 필요한 방어조처를 취했다”며 맞섰다. 또 “일본 군용기가 제멋대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침입해 위험한 행동을 한 것은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미국이 최첨단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를 일본에 배치해 중국, 북한에 대한 감시에 나서는 등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24일 미국의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가 일본 아오모리현 미사와 기지에 처음 배치됐으며 북한의 핵개발과 중국의 해양 진출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글로벌호크는 1만8000m 이상의 고고도에서 지상의 30㎝ 크기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 일본은 글로벌호크를 3대, 한국은 4대 도입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2014.5.26.)
* 출처=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638946.html


3. 미-중 함정, 이달 초 남중국해서 충돌할 뻔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해 긴장이 고조되던 동안,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미국 해군 함정들이 충돌 직전까지 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중국 함정이 미군 함정에 의도적으로 돌진해 충돌을 야기하려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쪽에선 중국이 남중국해의 영유권 문제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적 도발을 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5일 남중국해의 공해상에서 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호의 활동을 감시하던 미 해군 미사일 적재 순양함 카우펀스호를 향해 중국 해군 함정이 약 180m 거리까지 근접 돌진했다고 미군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13일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 첫 항모인 랴오닝호는 처음으로 남중국해에서 훈련 중이었고, 카우펀스호는 공해상에서 국제관례를 지키는 가운데 작전 중이었다고 미국 관리들은 밝혔다. 하지만, 랴오닝호를 호위하던 중국 해군 함정이 카오펀스호와 나란히 항해하다가 갑자기 앞머리 쪽을 가로질러 나서기 시작해 충돌 위기가 조성됐다고 미국 관리들은 설명했다.이 중국 함정이 카우펀스호의 앞머리로 돌진했고, 카우펀스호가 급히 항로를 변경해 충돌을 피했다는 게 미국 쪽의 설명이다. 미 국방부 관리는 그 중국 함정이 “매우 공격적이었으며, 두 나라 해군의 협력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중국은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상공을 포함한 동중국해 일대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고, 미국은 이를 무시하고 전폭기를 이 일대에 발진해 긴장이 한창 고조되던 상황이었다. 또 한·중·일 3개국 순방에 나선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 중이던 시각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중국이 동중국해에 이어 남중국해에서도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2차 대전 이후 태평양에서 제해권을 장악한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현 상황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가 미국 전문가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앞서 2009년에도 이 지역에서 중국 함정이 미군 초계함 임페커블호에 근접 돌진했다. 2001년에는 이 지역의 공해상을 비행하던 미국 정찰기 EP-3이 중국 전투기와 충돌해, 양국 관계가 얼어붙는 사건도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 중국 쪽은 중국 해역에서 미국 군용기들이 정찰 활동을 벌이는 것은 중국을 적으로 취급하는 행위라며 항의했다고 미국 관리들은 최근 밝혔다.


미국 해군군사대학의 릴 골드스타인 교수는 <뉴욕 타임스>에 “미-중 양국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며 “양쪽 모두 상대방의 금지선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타협책을 찾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2013.12.15.)
*출처=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615481.html


4. 뜨거워지는 이어도


한국이 이어도 상공을 방공식별구역(이하 방공구역)에 포함함으로써 이어도 주변 상공은 한국과 중국, 일본의 방공구역이 삼각형으로 겹치게 됐다. 이 구역이 세 나라의 갈등을 푸는 열쇠가 될지, 새로운 분쟁의 불씨가 될지 주목된다.


정부가 8일 발표한 새 방공구역은 제주도 남쪽의 북위 30도와 33도 사이 동중국해 상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동중국해 가운데 중국과 일본에 가까운 상공 한가운데를 역사다리꼴로 차지하고 있다. 특히 한국이 확장한 제주 남쪽 상공의 오른쪽 절반가량은 1969년 일본이 선포한 방공구역, 지난 11월23일 중국이 선포한 방공구역에도 모두 포함돼 있다. 이 세모꼴 구역은 세 나라의 방공구역 갈등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어도는 이름과 달리 섬이 아닌 공해상의 수중 암초다. 따라서 이 해역은 ‘영유권’이 있을 수 없고, 200해리(370㎞)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대상만 될 수 있다. 특히 이곳은 한국과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겹치는데, 아직 이를 조정하지 못한 상태여서 양국 간 갈등이 잠재해 있다. 중국은 지금껏 한국이 주장하는 ‘관할권’을 인정한 적이 없다. 당장 중국으로서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이 발등의 불이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거나 정리되면 언제든 이어도 해역의 관할권을 놓고 한국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이어도 남쪽 센카쿠열도에 대한 중국과의 영토 분쟁이 중요한데다, 이어도 자체에는 특별한 연고권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방공구역과 관련해서만 이어도와 관련이 있다.
이어도 관할권 문제에서 한국은 유리한 입장이다. 우선 이어도는 중국(287㎞)이나 일본(276㎞)보다 한국(149㎞)의 영토와 가장 가깝다. 2003년 한국은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설치했고, 군사적으로도 해상 초계기의 정기 비행을 통해 관할권을 확립하려 애쓰고 있다. 또 국제적으로 공인된 공중 경계인 비행정보구역(FIR)상으로도 이어도 상공은 한국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40년 넘게 이어도 상공을 방공구역으로 설정해온 일본과 세계 2대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이 순순히 이어도 상공을 한국에 양보하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한-중-일 3국간 갈등을 일으키는 방공구역은 군용기의 식별을 위해 설정한 임의의 선이다. 세 나라 사이에는 1951년 6·25전쟁에 참가한 미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했으며, 설정한 나라도 20여 개국에 불과하다. 반면 이번 방공구역 확대의 근거가 된 비행정보구역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전 세계에 설정한 구역으로 국제법적 위상이 있다. 한국 해군이 이어도에 설정한 ‘작전구역’은 영해나 공해상에서의 군사훈련 등을 위해 임의로 정한 선이다.(2013.12.8.)
* 출처=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144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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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군산 YMCA가 2014년 7월 9일에 연 [평화마을 학교]에서 필자가 강연한 내용이다.

* 필자는 평화도시•평화마을 연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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